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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칼럼] 정치인을 향한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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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에 대한 팬덤 현상은 비단 어제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좋아하듯 정치인에 대한 팬덤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은 기본적으로 소속본능을 갖고 태어난다. 가족이 시작이며 그 다음이 또래들이다.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 환경에 따라 소속감을 만들어 간다. 니체(F.W. Nietzsche)는 르상티망(ressentiment: 시기심)이라고 하였다. 조직이 정한 가치 기준에 충성하면서 동질감을 느끼거나 아니면 반대의 가치 기준을 따르며 동질감을 만든다. 이도 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는 우월하고, 다른 사람은 열등하다는 믿음 속에서 우월감에 도취되기도 한다.

근대화 과정에서 시민의 권리와 자유는 자유주의, 시장경제, 합리성, 평등, 세속주의 등의 보편적 가치를 통해 강화되었고, 발전되었다. 보편적 가치는 개인적인 차원이 문제가 아니었다. 인류를 대상으로 한 계몽주의의 이상적 가치였다. 보편적 가치로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를 구조화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누군가에 의해 구조화된 사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잊고 순응하면서 살아왔다.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현대인의 마음속에서 보편적 가치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상주의는 보수, 진보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엘리트들의 산물이기에 배타주의가 내재되어 있다. 결국, 대다수 사회구성원들은 자신들의 취향, 감수성, 가치관뿐만 아니라 반복되는 실수와 책임회피까지 비슷한 정치인을 연예인처럼 우상하는 팬덤을 만들게 된다. 명백한 물질적 대가는 없다. 하지만 나의 정체성이 누군가에 의해 선택되는 순간 기쁨의 동질감을 갖게 된다.

미국 법률학자 추아(Amy Chua)는 정치적 부족주의라 정의를 내린다. 삶이 피곤한 현대사회에서 보편적 가치의 공유보다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차별의식이 강화되면서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모습에 마음이 끌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들이 잘해서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지하기 때문에 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그들을 매개로 자신은 정의롭다는 자기의식을 지속적인 자기증명으로 자존감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동시에 정치인은 계층, 계급, 성, 분파 등의 집단화로 응집력을 강화시킨다. 편 가르기를 통해 위기와 공포로 군중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이성적인 개인과는 다르게 선동에 휘둘리는 군중으로 만든다. 러시아 혁명에서 레닌은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자연 발생적 혁명은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한다. 레닌은 전위정당을 이용해 사회를 나누는 갈라치기 신공으로 공포를 표면화시켜 혁명에 성공한다. 이순신 장군의 말씀처럼 ‘공포’가 군중에게 ‘용기’를 만든 것이다. 결국 선동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죽음도 불사하는 팬덤이 된다.

정치공학은 우파건 좌파건 다르지 않게 편 가르기를 해대고 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팬덤은 사적 공간에서 자기 욕망을 해소할 뿐이다. 그러나 정치적 팬덤은 공적 공간을 변형시켜 사적 욕망을 충족한다. 반대 의견은 가짜뉴스고 반대파는 거대 악이 되고 만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민주적 규범의 핵심은 상호 존중과 권력의 절제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혼자 가는 것 보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라는 말이 있다. 길동무가 있어야 힘이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유럽 아프리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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