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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칼럼] 공정사회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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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9일은 제1회 청년의 날이었다. 행사의 주제는 ‘공정’이었다. 물론 이 시대의 화두 역시 ‘공정’이다.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과거의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던 사회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축하문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사회가 공정해지고 특권이 없어지는 사회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반칙과 특권은 누가 만들어 낼까. 청년들이 만들지는 않는다. 반칙과 특권을 없애야 한다는 명분이 오히려 자기들만의 특권과 반칙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최근 KBS가 의뢰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60% 이상이 공정성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다른 형태의 불공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국정감사 증인 채택 거부와 원칙도 없는 자기편 옹호가 그 연장선일 것이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러너(Melvin Lerner)는 ‘공정한 세상 가설’을 주장했다. 보이지 않는 노력이 언젠가 보상받을 것이라는 믿음 자체가 거짓말이라는 가설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만큼 노력했다는 논리를 뒤집어 보면 불행한 사람은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논리가 되기도 한다. 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멸시로 곤경에 처한 사람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 편견, 자업자득, 인과응보 등 을 생산할 수 있다.

살다 보면 노력과 보상은 비례하지 않는 경우를 훨씬 많이 보게 된다. 노력은 항상 보상받는다는 믿음만 있다면,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자기성찰보다는 원망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뿐 아니라 무엇 때문에 노력해야 할까 하는 회의론에도 빠지게 된다. 면죄부가 구원의 확신이 아니라 허구라는 종교개혁의 주장처럼 베버(Max Weber)는 신에게 선택된 인간이라는 증거를 얻으려고 더 열심히 일하는 소명의식이 사후 신과 함께 영생할 수 있다는 동기를 만들어 준다고 했다. 성실하고 근면한 노력의 과정이 축척과 투자라는 선순환 구조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등장하게 된 문화적 배경이었다고 주장한다. 노력에 대한 대가가 명백하게 수직적 관계를 보인다면 과연 노력하는 사람보다 불만에 차 있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노력했는데 왜 성공하지 못하지. 우리 사회는 ‘공정하지 못하며 균등하지 않아’라고 하면서, 불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생각의 전환이다. 역설적으로 사회는 공정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희망이 있는 것이다.

보상은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올 수 있다. 그런 보상은 엄청나게 큰 기쁨을 선사할 것이며 다음 단계로 달려가게 하는 동기부여가 된다. 만약 아무런 준비 없이 달콤한 선동가들의 속삭임처럼 남 탓과 구조 탓만 하면서, 누군가 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실패한 인생이 될 것이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따듯한 위로로 포장된 공정한 세상은 존재하지도 동기도 만들어 주지 않는다. 선동하는 언어들의 향연에 어떻게 느끼느냐에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 당당하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는 감사를 해야 하고 누군가에 분노하기보다는 존중해야 한다. 누군가를 비난하기보다는 사랑할 때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Friedrich Hayak)가 주장하듯 불확실성이 동기부여이다. 어려울 때 우리는 가장 많이 성장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남 탓도 하지 말고 절망도 하지 말고 항상 큰 기쁨을 맞이할 자아실현의 준비된 자세가 요구된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유럽 아프리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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