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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 복원, 그 방향을 찾다] 2.1980~2009년 복원 거북선

‘임진왜란 거북선’ 살펴보면… 임진강 거북선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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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거북선을 제작한 서울시의 한강거북선. 노를 저어운항하는 것이 아니라 디젤엔진을 추진동력으로 삼았다. 2005년 경남 통영시에임대돼 올해 만료를 앞두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거북선을 제작한 서울시의 한강거북선. 노를 저어운항하는 것이 아니라 디젤엔진을 추진동력으로 삼았다. 2005년 경남 통영시에임대돼 올해 만료를 앞두고 있다.

최근 파주시가 1413년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 복원사업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거북선 연구자들은 1592년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 거북선의 구조, 기능, 형태 등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고려 선박과 거북선 등을 복원했던 전통한선연구 권위자 이원식 박사는 “고려 때 배무이(선박건조) 기술이 조선시대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이순신장군 거북선 기록을 소홀히 할 수 없으며 당연히 살펴봐야 하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이순신장군 거북선 내부구조의 함포 배치 연구 결과로 주목을 끌었던 채연석 박사는 “태종실록에 임진강거북선이 튼튼함 등 일부 기록은 남아 있지만 구조나 크기 등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임진강거북선의 기능, 구조, 형태 등이 어떤 형태든지 이순신장군 거북선 제작에 영향을 끼쳤다”며 “임진왜란 거북선을 살펴보면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이 보인다”라고 강조했다.

이순신장군 거북선연구의 첫 시작과 발표는 1934년 연희전문학교 미국인 교수인 언더우드 교수다. 그는 1795년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를 토대로 △거북선은 내부구조 2층 △서양식 노 장착 등 연구결과를 영ㆍ미권에 발표했다. 언더우드 교수 연구는 현재의 학계 연구결과와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국내 연구자들에게는 각자 전문성을 무기로 지속적으로 거북선을 연구하며 서양식 노를 동양식 노로 수정하는 등 연구의 기폭제가 됐다.

■ 해군사관학교 1호 거북선, 한강거북선과 여수돌산거북선

언더우드 교수의 거북선이 첫 연구 이래 46년 만인 1980년 해군사관학교에서 첫 실물크기 1호 거북선을 복원했다. 이충무공전서를 완역한 노산 이은상 선생 등이 참여했다. 당시까지 연구된 거북선 내부구조를 토대로 2층으로 건조됐다. 1795년 이충무공전서 기록으로 길이 34.2m에 선체 높이 6.4m, 선 폭 10.3m, 홀수는 1.4m, 함포는 14문 등으로 좌우현 각각 6개 뱃머리 용두와 꼬리 등에 각각 1개씩이다. 승조원은 130명 정도다.

국가가 아닌 지자체로는 서울시가 처음으로 실물크기 거북선을 1990년에 제작했다. 길이 34m, 폭 10m, 높이 6.3m, 180t 등의 규모다. 해사 1호 거북선 영향을 받아 내부구조가 2층이다.

국가와 광역 지자체와는 달리 이 시기에 민간영역에서 주도한 거북선 첫 복원도 있다. 여수돌산거북선으로 1986년 4억여원을 들여 (유)전라좌수영문화개발이 건조했다. 해사1호거북선 영향을 받아 2층 구조에 길이 37m, 높이 6.8m, 넓이 8.20m, 150t 등의 규모로 탑승인원 130~150명 속도 6노트 수준으로 만들어졌다. 전라좌수영 거북선이 모델이다.

(유)전라좌수영문화개발이 처음으로 제작해 민간이 운영 중인 여수돌산거북선. 전라좌수영거북선이 복원모델이다.
(유)전라좌수영문화개발이 처음으로 제작해 민간이 운영 중인 여수돌산거북선. 전라좌수영거북선이 복원모델이다.

■ 복원된 거북선들은 1592년 이순신장군 거북선이 아니다

이순신장군 거북선의 특징은 선조에게 올린 그의 장계와 함께 해전에 참전했던 장조카 이분의 이충무공행록 등에 어느 정도 나와 있다.

이순신장군 장계는 용머리를 붙여 현자 철환을 쏘고, 등에 쇠못을 꽂았으며, 천ㆍ지ㆍ현ㆍ황자 총통을 쏘고, 안에선 밖을 볼 수 있으나 밖에선 안을 볼 수 없도록 했다고 기록됐다.

이분의 이충무공행록은 거북선 크기는 판옥선만 하고 위는 판자로 덮고 판자 위에 십자형세로를 두어 사람들이 지나다닐 수 있도록 했으며 그 나머지는 칼 송곳을 꽂아 사방으로 발붙일 곳이 없도록 했다고 기록했다. 앞에는 용머리를 붙이고 그 입은 총구멍이 됐고 뒤는 거북꼬리처럼 됐는데 꼬리 아래에 총구멍이 있고 좌우에 각각 6개의 총구멍이 있다고 기록했다.

이순신장군 거북선 등장 203년 뒤인 1795년 정조 때 편찬된 이충무공전서에는 통제영거북선이 당시 이순신장군 거북선과 수치에 약간 가감은 있지만 비슷하다고 기록돼 있다.

이들 기록을 토대로 1980~2009년 실물크기로 복원한 해사1호 거북선, 한강거북선, 여수돌산거북선 등이 전시된 장소를 방문, 확인한 결과 이순신장군 장계 등의 기록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국가 주도로 제작돼 거북선표준인 해사1호거북선은 1592년 당시 이순신장군 거북선이 아닌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기록을 토대로 건조됐고 개판을 철갑선으로 복원했다. 용두가 ‘- ’자형이 아닌 ‘ㄱ’자형으로 함포를 쏠 수 없는 구조였다. 용두 크기 또한 길이 1.34m에 넓이 93.9㎝ 기록과 다르게 축소됐다. 이 때문에 전라좌수영거북선이 아닌, 그렇다고 통제영 거북선도 아닌 어정쩡하게 이 둘을 합친 혼합형 거북선으로 만들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강거북선도 2층 구조로 제작됐는데 용두는 기록에도 없는 여의주를 물고 있었고 현자 철환이 발사되지 못하는 구조였다. 노는 앉아서 젓는 서양식에 가깝고 이마저도 전라좌수영(16개) 혹은 통제영거북선(20개)과는 노 숫자와는 다르게 건조됐다. 전통 노가 아닌 디젤엔진으로 추진동력을 삼은 것도 상업용으로 제작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모델로 복원됐던 여수돌산거북선도 옛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 나오는 전라좌수영거북선은 포 위치가 거북머리 아래 포혈이 2개, 방패에 각각 10개의 포혈이 있는 등 전체 36개로 기록돼 있으나 복원된 거북선은 이보다 한참 못 미친다. 2층에 노군과 포군이 한데 모여 노를 젓고 포를 쏘도록 재현한 것도 지금의 연구결과로 보면 포를 쏘는 공간이 확보돼야 하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용두에 유황ㆍ염초를 태워 연기를 내품었다는 기록을 토대로 용두를 복원했지만, 이는 통제영거북선 기능으로써 전라좌수영거북선과는 다른 기능이다.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장 제장명 교수는 “복원된 거북선들은 오래전에 설계되다 보니 당시의 연구 한계로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모습을 복원하지 못하고 있다. 용두가 기록과는 다르게 기능하고, 노군과 전투원이 같은 층에서 활동하는 등 기록과는 무관하게 만들어져 혼란을 겪기 때문이다. 원래 기록에 충실하게 복원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1980년 국내 첫 실 물크기로 복원된 해군사관학교1호 거북선. 현재 남해 충렬사앞 해상에 전시돼 있다.
1980년 국내 첫 실 물크기로 복원된 해군사관학교1호 거북선. 현재 남해 충렬사앞 해상에 전시돼 있다.

■ 북한 거북선은 통제영거북선모델

이 시기 북한에서 제작된 거북선을 확인하기 위해선 방문이 어려워 거북선 관련 북한서적을 입수해 전문가와 함께 분석했다. 2001년 북한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발간한 김흥규 저 ‘거북선’이다. 북한에선 거북선의 구조와 형태 등을 도해로 기술한 거북선 권위서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은 복원된 거북선을 목선에서 철선으로 가는 과도기적 함선구조형식으로 보고 있다. 노는 좌우현 20개로 이순신장군 거북선과 비슷한 것으로 기록된 1795년 통제영거북선 형태를 띠고 있다.

외형상으로 거북선 내부가 2층 구조로 개판이 철갑으로 완전히 둘러싸여 있는데 지붕에는 십자형 세로를 둬 2개의 돛을 세우고 눕히도록 했고 수군들이 이동하도록 길을 만들었다. 용두는 ‘-’자형으로 현자총통을 쏘도록 한 기록처럼 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채연석 박사 등 거북선 전문가들은 “일부 오류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복원개념을 통제영거북선 형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고 분석했다.

 

제장명 순천향대 교수 “거북선 세계 첫 철갑선 아닌, 쇠못 꽂은 형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당연시하는 1592년 이순신장군 거북선의 개판(지붕)이 철갑선인지 여부에 대해 남북 학자들 사이에서 견해가 갈리고 있다.

1934년 연희전문학교 언더우드 교수가 1795년 편찬된 이충무공전서를 토대로 한 첫 연구 발표 이후 국내 학자들의 거북선 연구가 80여년이 넘었지만 ‘거북선이 세계최초 철갑선이냐’라는 논란은 여전하다. 반면 북한은 세계 최초 철갑선은 거북선이라고 일관 되게 주장하고 있다.

거북선문헌연구자 권위자인 순천향대학교 이순신연구소장 제장명 교수는 “거북선의 등 부분은 철판으로 장갑 된 형태가 아니라 목판으로 장갑한 가운데 쇠못(또는 칼ㆍ송곳)을 꽂은 형태”라며 “이순신장군 장계와 이순신장군의 장조카인 이분의 ‘이충무공행록’ 등 옛 문헌을 뒤져 봐도 철갑선이란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어 “일본의 고문서인 정한위략(가와구치), 고려선 전기(도노오카) 등과 미국인 헐버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래서 국내 실물크기로 복원된 거북선 개판(지붕)이 고증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북한학자 김흥규는 자신의 저서 ‘거북선’에서 “임진란 발발 184년 전 ‘태종실록’ 태종 8년(1408년) 12월 정유조에 배무이((선박건조)용 철물을 수군에게 제련할 수 있게 해달라고 전라도 통제사가 왕에게 건의했다”며 “당시 거북선의 6각형 장갑철 주조는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의 임진란 기록인 ‘고려전전기’와 ‘정한위략’ 등에는 과장이 없다”며 “6각형의 철갑판 두께를 5㎜로 했을 때 개당 질량은 25㎏으로 거북선의 총철갑 질량은 7천385㎏”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이순신장군 거북선의 철갑선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크지만 이미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등장 5년 전 선박기술용 철을 확보해 달라고 건의한 전라도 통제사의 기록은 군선 관련 철사용에 대한 연구 필요성을 강력하게 제기하고 있다.

김요섭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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