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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와 고택을 찾아서] 11. 태묘산 자락 연안이씨 동관댁

남양주 진접읍 내 제일의 명당… 대대로 ‘복록’ 누려
이덕승의 8대조가 250년 전에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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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관댁 사랑채. 자연석을 적당히 다듬어 기단을 쌓고, 5단 돌계단을 두 개나 놓은 당당한 건물이다. 오른쪽에 안채를 가리는 곳간채가 보인다.
▲ 동관댁 사랑채. 자연석을 적당히 다듬어 기단을 쌓고, 5단 돌계단을 두 개나 놓은 당당한 건물이다. 오른쪽에 안채를 가리는 곳간채가 보인다.

남양주 진접읍 내곡리는 한밭들과 유연이들 두 너른 들이 왕숙천을 사이에 두고 펼쳐진 자리, 천견산(天見山:393m, 천겸산이라 된 지도도 있다) 줄기 남쪽 끝자락의 마을이다. 인터넷 검색창에 ‘한밭들’을 치면 진접을 비롯해 양평, 이천, 여주, 충청도 제천, 경상도 문경, 상주, 달성(화원, 옥포 2곳), 고령, 합천(가회, 초계, 관평 3곳), 밀양, 고성, 함안, 전라도 남원, 영광, 함평 등 전국에 모두 20군데가 넘는다. 고유명사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좀 넓어 보이면 ‘한밭들’이라 이름 붙인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해 ‘유연이들’은 전국에 단 한 군데 진접이다. 연안 이씨 동관댁은 내곡리에서 가장 큰 내동마을 맨 안쪽, 태묘산(372m, 지도에는 한자와 우리말의 병기인 태뫼산이라 돼 있다.) 기슭에 자리잡았다. 비탈진 산기슭에 용케 좌우로 길게 반듯한 터를 골라 들어앉았다. 동쪽과 북쪽 담밖에 고목이 여럿 둘렀지만 집 안은 큰 나무 단 한 그루가 없다. 수로도 없고 냇물도 집안으로 흐르지 않는다. 전저후고(前低後高) 지형이라 일조량도 넉넉하고 배수도 잘 될 것이다. 태묘산 기슭에 바짝 붙어 바람이 드세지 않고(장풍) 멀리 왕숙천이 왼쪽에서 흘러오는(득수) 명당이라 대대로 복록을 누려왔다고 한다.

좁은 땅에 효율적인 배… 잘 보존된 250년 고택

노거수 앞 표지판을 지나 가파른 언덕길을 한참 올라야 서남향 대문채에 닿는다. 여경구의 장인인 이덕승의 8대조가 약 250년 전에 지었는데, 대문채, 사랑채, 두 곳간채, 안채, 사당만 남아 있다. 전란이 끝이 없었던 서울 부근임을 감안하면 18세기 초의 기법과 형상을 용케 잘 간직하고 있다. 외양간과 행랑방이 좌우에 붙은 대문채 중앙, 서북향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너른 마당이 나온다. 정면에 곳간채가, 왼쪽 산기슭에 동남향한 사랑채가 있다.

사랑채를 받치는 기단과 주추, 산석(山石) 그대로의 자연석도 아니지만 깔끔하게 다듬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무사석(武士石)이란 표현을 썼는데, 큰 돌을 알맞게 깎고 쌓은 품새가 중후하고 활달하다. 사랑채는 당호나 현판은 없어도 5단 돌계단 위에 늠름한데, 사랑방, 마루, 작은 방이 차례로 들어서고 뒤쪽에 쪽마루와 벽장을 둘렀다. 사랑채 툇마루에 앉으니 시야가 탁트여 멀리 천마산이 달려가는 것이 보인다. 명당이다!

사랑채 뒤 경사지를 깎아 사당을 들였다. 터가 좁아서인지, 따로 담이나 문을 두지 않은 매우 개방적인 사당이다. 사당 양편 벽은 기와와 돌을 사용해 예쁜 꽃담을 꾸몄다. 대개 제대로 된 민간 건물은 도리를 5개 받치고 내부에 높이 고주(高柱)를 세우니 1고주 5량이 보통이다. 사랑채와 안채 모두 1고주 5량 구조, 곳간채는 고주 없는 3량가다. 그러나 사당은 1고주 4량이라 흔치 않고, 도리칸 2칸이라 사당으로서는 더욱 흔치 않다.

1고주 5량가, 흔치 않은 4량가

▲ 안채 날개채 안쪽에 들인 온돌골방과 뒷방, 그리고 부엌 뒷문 앞에 놓인 우물. 아직도 이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 안채 날개채 안쪽에 들인 온돌골방과 뒷방, 그리고 부엌 뒷문 앞에 놓인 우물. 아직도 이 물을 마실 수 있다고 한다.

한옥 건축에서는 무거운 기와 지붕의 하중을 분산시켜 받치는 문제가 가장 어렵다. 고급 건물은 무거운 기와를 세 겹 두니, 고민이 더 커진다. 도리, 보, 기둥 셋이 큰 하중을 받치는 삼대 가구(架構)다. 보는 지붕의 하중을 받아 기둥으로 전달하는, 건물의 앞뒤로 가로지른 구조물이며, 도리는 지붕의 하중을 기둥으로 전달하는 건물의 좌우로 가로지른 구조물이다.

이로써 한옥의 규모와 골조를 말하니, 도리와 보만 알아도 한옥의 큰 골조를 그릴 수 있다. 그래서 좀 아는 사람들은 한옥의 천장을 한참씩 올려다본다. 거기에 비밀이 있으니. 다음은 큰 하중을 나누는 다양한 부재들인데, 공포, 대공, 익공, 보아지, 장여, 주두, 첨차 등등 모양도 기능도 비슷해보이지만 다 제각각이고 이름도 달라 공부가 좀 필요하다.

각설하고, 정면 곳간채의 중문을 들어선다. ‘丁’자형 안채는 서쪽부터 건넌방, 두 칸 넓이의 대청, 안방, 골방, 뒷방, 광으로 이어진다. 중부 지방의 안채는 안방을 대청의 서편에 두는 것이 보통인데, 이 집은 사랑채가 서쪽이라 안방이 동편이다. 안방에서 동남에 날개채를 두고 부엌을 들였다. 골방과 뒷방 앞에 쪽마루가 붙어 안방으로 다니기 편하다. 부엌, 안방, 대청이 있는 주공간에 골방과 광이 부속 공간으로 덧붙였다. 안채 앞에 ‘ㄴ’자 곳간채가 또 있어 넉넉한 살림을 짐작케 하고, 대청 우물마루는 뒤틀린 판 하나 없이 잘 관리됐다. 안채와 날개채, 곳간채가 튼 ‘ㅁ’ 자 공간을 이룬다.

아직도 물맛 좋은 동관댁… 급제 250명의 높은 문명(文名)

▲ 대충 다듬어 기둥을 앉힌 주추. 돌은 다듬을수록 충격을 많이 받아 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둥을 단단히 얹을 수 있는 한, 덜 다듬는 것이 원래의 강도를 유지할 수 있을 터.
▲ 대충 다듬어 기둥을 앉힌 주추. 돌은 다듬을수록 충격을 많이 받아 강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둥을 단단히 얹을 수 있는 한, 덜 다듬는 것이 원래의 강도를 유지할 수 있을 터.

부엌 앞 마당, 담장과 회화나무 고목을 사이에 두고 안에 우물, 밖에 샘이 있다. 물맛이 아주 좋으니 산에서 내려와 목을 꼭 축일 것을 권한다. 6㎞ 떨어진 진산 천겸산은 정상에 샘이 있고 원래 ‘샘재’라 불렸다 한다. ‘샘재’의 이두식 표기인 천현(泉峴)이 천견(天見)을 거쳐, 천겸이 되지 않았나 추정한다고 한다. 물맛이 좋은 것이 당연하다 싶다.

집주인인 연안 이씨는 여러 파가 있는데, 조선조 문과 급제자만 250명을 배출했다 한다. 인구 비례로 보면 정말 대단한 숫자다. 중시조 이석형은 조선 전기, 왕명으로 발탁돼 대학(大學)에 사례와 주석을 덧붙인 <대학연의집략(大學衍義輯略)>을 편찬한 문인이었다. 그는 진사시와 생원시, 정시문과를 모두 장원 급제해, 왕만 통과할 수 있는 궁궐 삼문의 중문으로 입궁한 전무후무한 특혜를 누렸다 한다. 세종은 생전에 대학을 100번 이상 읽었고, 정조 역시 대학을 숙독하며 <대학유의>를 직접 편찬했다 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한 권으로 로마 천년 제국의 5현제에 꼽히고 서양 철학사에 이름을 남겼는데, 우리 세종이나 정조는 정말 대단한 성군이다. 동관댁을 경영한 이들의 이야기가 별로 없는 아쉬움에 이석형을 떠올려 봤다.

김구철 시민기자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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