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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가와 고택을 찾아서] 4. 구례 운조루(雲鳥樓)

길지 위 세운… 자연 품은 ‘박호대장의 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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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랑채 전경 왼쪽 누마루가 원래의 운조루인데, 처마 아래 분합문 하나가 위로 매달려 있다. 자연석을 쌓은 기단은 자연미가 돋보이며, 기단 오른쪽에 운조루가 자랑하는 낮은 굴뚝이 살짝 보인다.
큰사랑채 전경 왼쪽 누마루가 원래의 운조루인데, 처마 아래 분합문 하나가 위로 매달려 있다. 자연석을 쌓은 기단은 자연미가 돋보이며, 기단 오른쪽에 운조루가 자랑하는 낮은 굴뚝이 살짝 보인다.

오래전부터 아름답다고, 아름다운 사연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다. 벼르고 벼르던 구례 운조루(雲鳥樓)를 찾아 천 리 먼 길을 나섰다. 구례 오미동(五美洞), 큰길을 벗어나자 안온한 분위기의 기와 동네가 보인다. 동네 안쪽, 커다란 기와집이 눈에 들어온다. 행랑채는 솟을대문을 가운데 두고 18칸 길게 늘어서 가문의 권세와 부를 과시한다. 솟을대문에 걸린 동물뼈는 벽사(僻邪)용으로 입향조(入鄕祖, 한 씨족이 어떤 장소에 처음 자리잡게 만든 조상)인 류이주(柳爾)가 문경새재에서 물리친 호랑이뼈라 한다. 집 입구에 실개천이 흐르는데 실개천 앞에 인공 연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다. 5월 중순, 푸른 연잎 사이사이 홍련이 피어 아름답다. 한국의 집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작은 연못으로 만족할 뿐 집 안팎에 많은 물을 가두지 않는다. 습하면 음기가 강해진다. 충남지사 공관 앞의 습지와 갈대 때문에 안희정 지사가 몰락했다고 해석한 풍수도 있었다. 운조루 입구의 연못은 벽사(僻邪)가 목적이라지만, 거택의 해자(垓子)라고 볼 수 있다. 해자는 일본이나 유럽의 성에서는 필수지만 중국과 한국의 성에서는 흔치 않은 발상이다.

안채 벽면 그림 안채 건넌방 벽을 장식한 아름다운 벽화들. 위로 보이는 삐뚤빼뚤한 서까래가 정겹고 자연미가 넘친다.
안채 벽면 그림 안채 건넌방 벽을 장식한 아름다운 벽화들. 위로 보이는 삐뚤빼뚤한 서까래가 정겹고 자연미가 넘친다.

■ 무신이 짓고 관리하는 아름다운 집

아름다운 거택을 지은 이는 조선 영조 때 무관 류이주로, 호랑이를 물리쳐 임금으로부터 박호대장(拍虎大將, 호랑이를 때려잡은 대장)이라 칭찬을 들었다. 무관이 이 아름다운 건물을 설계하고 공사를 감독했다? 20여 년 동안 남한산성, 함흥성, 영남감영의 축성을 지휘 감독하고, 수원 능원(陵園)을 개·보수한 전문가라니 의문이 풀린다. 입구 연지도 류이주의 방어형 축성 지식이 발휘된 것인가? 원래 대구 출신인 류이주는 부근 낙안군수로 있으면서 운조루 터를 점찍었고, 99칸 큰 집을 지은 뒤 동생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큰사랑 서쪽 누마루(지금은 고택 전체를 운조루라 부르지만 원래는 이 누마루의 이름이었다)에 올라 종부(宗婦) 이지순 할머니가 미리 준비해둔 차를 마시며 더위와 갈증을 함께 씻는다. 운조루 당호(堂號)는 손자인 류억(柳億)이 깊이 교류하던 추사 김정희 선생으로부터 얻은 것 같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전원시인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온 글자들이다. 雲無心以出岫 鳥倦飛而知還 (운무심이출수 조권비이지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어떤 고택 소개 책자에서는 귀거래사를 ‘칠언율시’라 칭하는데, 여섯 글자 댓구를 보고도 칠언율시라니 한심한 일이다.

고택 앞 연지 연지 가운데 삼신산이 모셔져 있고 소나무도 자란다. 연지는 벽사의 목적으로 팠다고 하지만, 단순한 벽사라기에는 물이 깊고 폭도 만만찮다. 입향조며 건축주인 류이주가 무관 출신이고 무인 집안이라 방어 목적으로 판 연못일 가능성이 높다.
고택 앞 연지 연지 가운데 삼신산이 모셔져 있고 소나무도 자란다. 연지는 벽사의 목적으로 팠다고 하지만, 단순한 벽사라기에는 물이 깊고 폭도 만만찮다. 입향조며 건축주인 류이주가 무관 출신이고 무인 집안이라 방어 목적으로 판 연못일 가능성이 높다.

■ 자연을 살리되 멋과 실용을 겸하다.

사랑채 문은 띠살무늬 분합문인데, 흔히 보이는 좌우 대칭의 사분합(四分閤)이 아니라 좌우 비대칭의 일종의 삼분합(三分閤)이라 변화와 파격이 느껴진다. 필요하면 모든 문을 들어 천장에 달린 고리에 고정시키고 공간을 여닫을 수 있다. 여름철 덥고 습한 남쪽 지방의 기후를 고려한 것일 게다. ‘구름과 새’(雲鳥)를 벗하는 주인의 자연 사랑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운조루는 자연을 살린 건축으로 관심을 둘 만하다. 주춧돌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했고, 기둥이나 보에도 굽은 나무의 원형을 살린 곳이 여럿 눈에 뜨인다.

안채 좌우의 날개는 낮은 2층으로 구성돼 공간 활용을 극대화했다. 오른쪽 다락은 난간이 없지만, 왼쪽 다락은 난간이 있어 안전하게 쓸 수 있겠다. 큰사랑채 뒤쪽에는 작은 책방이 있다. 안채와도 거리를 둔 뒤쪽 구석, 작은 출입문에 작은 창문과 쪽문이 하나씩, 창은 이중창이다. 철저히 외부와 단절시켜 공부에 집중하도록 한다. 그렇지만 일부 건축학자가 주장하듯 5대 ‘장원’ 급제는 사실과 다르다. 가문에 보관된 홍패(紅牌)는 무과급제 4장인데, 장원은 없다. 무과 급제 4장도 물론 대단하지만.

맷돌과 돌확 거북이를 닮은 안채 부엌 앞 맷돌과 돌확. 운조루터에서 이 돌이 나와서 일부 풍수는 금구몰니(金龜沒泥), 거북이 진흙에 묻힌 형세라 해석한다.
맷돌과 돌확 거북이를 닮은 안채 부엌 앞 맷돌과 돌확. 운조루터에서 이 돌이 나와서 일부 풍수는 금구몰니(金龜沒泥), 거북이 진흙에 묻힌 형세라 해석한다.

■ 성실하게 모으고 꼼꼼하게 기록하다. 타인능해(他人能解), 가풍은 영원하다.

이 집의 자랑은 급제보다, 짧은 기간 큰 부를 일구고 재산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과정을 ‘잘 기록’한데 있는 것은 아닌지? 유이주의 4세손 류제양(柳濟陽)은 문적(文蹟)마다 주(註)를 달고 목록을 붙여 봉투로 싸서 보관할 정도로 철저했다. 류제양은 손자 류형업(柳瑩業)에게도 기록 습관을 가르쳐 조손(祖孫·할아버지와 손자)이 1851년부터 1942년까지 90년간 농가일기 ‘시언(是言)’과 ‘기어(紀語)’를 남겼다. 민간에서 유례가 드문, 꼼꼼하게 기록하는 집에 장원 급제 문서를 놓칠 리 없다.

운조루 터를 놓고 금환락지(金環落地 금가락지 떨어진), 금구몰니(金龜沒泥, 금거북 진흙에 묻힌), 오보교취(五寶交聚, 다섯 보물 쌓인) 등등 형상과 해석이 다양한데, 공통점이 있다. 선대가 덕을 베풀어 명당을 차지했지만, 자만 말고 더 겸손하고 노력해야 복 받는다.

작은사랑채의 편액(扁額)도 암수재(闇修齋)다. 闇은 그냥 ‘어둡다[暗]’와 다르다. 어슴푸레한 상태며 몸을 숨긴다, 아랫대에 주는 교훈이겠다. 부엌의 타인능해(他人能解, 이집 사람 아닌 사람만 풀어라) 쌀뒤주는 너무나 유명해 소개할 필요조차 없다. 밥짓는 연기가 담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굴뚝도 낮게 달았다. 가난한 이웃에게 쌀을 나눠주고, 끼니 거르는 민촌 사람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누마루의 세련미 이상 감동적이다. 결과 운조루와 자손은 동학혁명, 6·25, 지리산 빨치산 등 혼란기마다 표적이 됨직 했지만, 단 한번도 화를 입지 않았다. 배려의 마음은 다기와 함께 차봉투를 담아두고, 큰 물통과 커피포트까지 누마루에 비치해 누구나 부담없이 차를 끓여 마시게 하는 오늘에도 살아있다. 명당은 바뀔지라도, 가풍은 의연하다.

 

안채 측칸 오르내리는 계단이 붙어 있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난간이 달려있다. 노인들의 공간이라는 일부 주장이 있으나 다락으로 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안채 측칸 오르내리는 계단이 붙어 있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난간이 달려있다. 노인들의 공간이라는 일부 주장이 있으나 다락으로 주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김구철 시민기자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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