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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식 칼럼] 시민이 나서 시대정신을 지켜야

최종식 미디어전략실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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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고전을 읽으면 자주 언급되는 인물 중에 하나가 백이숙제(伯夷叔齊)다. 백이숙제는 기원전 650년경에 망한 은나라의 제후국인 고죽국의 왕자들로 군주의 자리를 마다하고 숨어 지내다가 주(周) 문왕이 취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았으나 은나라를 징벌하러 가는 주공(周公)의 출정을 막지 못하자 수양산으로 들어가 고사리와 이슬만 먹고 아사했다는 인물이다. 당서(唐書)에는 고죽국이 지금의 베이징 근처이며 고려(고구려의 옛 이름)의 뿌리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 백이숙제는 고려인으로 보인다.

 

동양철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백이숙제라는 이름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의 핵심은 충절(忠節)로 상국인 은나라를 제후국인 주나라가 징벌하는 것이 예(禮)에 어긋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조선건국을 반대한 정몽주(鄭夢周)나 태조 이성계에게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벼슬을 거절한 길재(吉再), 세조를 몰아내려다 죽은 성삼문 등 사육신들은 백이숙제와 함께 충절이라는 의미로 남아 있다.

 

이처럼 백이숙제가 2천년 넘게 평가받는 것은 동양의 주류철학인 유학이 가지고 있는 기본 가치에 부합했기 때문이다. 공자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이 주공인 반면 백이숙제는 주공의 은나라 정벌에 반대해 수양산으로 들어갔다. ‘주공이 꿈속에 나타나지 않는다’며 한탄할 정도로 주공을 롤모델로 여긴 공자가 주공의 전쟁을 반대하며 아사한 백이숙제를 ‘만세에 칭송을 받고 있다’며 높이 평가한 것은 아이러니(irony)다.

 

반면 묵자는 공자처럼 충절로서의 백이숙제가 아니라 반전평화운동가로서 평가한다. 전쟁으로 피해를 입는 것은 지배층이 아니라 전쟁에 직접 참여하고 공물을 바쳐야 하는 백성들인 만큼 백이숙제가 이 같은 전쟁을 반대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반전평화주의자 백이숙제는 익숙하지 않다.

 

사기(史記) 백이열전에는 ‘폭력으로 폭력을 바꾸었는데 그 잘못을 모르는 구나’라며 백이숙제가 슬퍼했다고 표현돼 있다. 연암의 열하일기 이제묘기(夷齊廟記)에도 후대의 왕들이 쓴 백세지사(百世之師), 만세표준(萬世標準), 윤상사범(倫常師範)이라는 글 속에 충절이라는 지배가치를 소개하면서도 폭력이 폭력을 부른다는 이폭이폭(以暴易暴)에 대해 적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 백성들은 백이숙제를 어떻게 평가했을까? 제후국들의 영토전쟁이 시작돼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진 시기라는 점에서 평화가 시대정신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반전평화의 시대정신은 충절이라는 지배가치에 눌려 역사 속에 소멸됐다.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소산에 공통되는 인간의 정신이나 이념 등이다.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가치가 시대정신이 되길 원한다. 하지만 시대정신은 지배가치와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다. 지배자들은 종교와 예술, 문학 등을 통해 자신들의 가치를 공고히 하려 했지만 오히려 이 예술이 숨겨져 있던 시대정신을 고양시켜왔다. 중세봉건시대의 종교적 가치는 르네상스를 통해 무너졌고, 절대왕정은 신흥자본가에 의해 공화정으로 변화됐다.

 

우리 현대사도 마찬가지다. 조선말 민중들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요구하며 동학혁명운동을 벌였지만 지배자들은 기존 질서의 유지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였으며, 일제 강점기 민중들의 독립운동에 친일지배자들은 동북아공영을 주장했다. 유신시대는 경제발전이라는 지배가치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억눌렀으며 그 기저에는 반공이라는 괴물이 자리 잡았다. 지금 광장의 촛불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권력자들의 권위주의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항하는 시대정신의 표출이다.

 

‘이게 나라냐’고 외친 분노한 목소리가 곧 시대정신이다. 이게 민주주의공화정이냐의 목소리에는 우리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적폐를 없애고 구조적인 모순인 경제 양극화를 해소하고, 권력의 비민주적 행태를 막아내 자유와 평등, 인권이 지켜지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다.

 

탄핵정국이 길어지고 반대세력들의 움직임도 커지면서 시대정신에 대한 담론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언론도 진보와 보수, 각 진영 내 갈등 등 정치세력 간의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 시대정신이 빠진 논쟁은 과거로의 회귀다. 따라서 시민들 스스로 새로운 미래를 위해 민주주의의 가치를 더욱 확산시켜야 할 책임이 있다. 새로운 지도자를 찾는 것도 이 같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가? 시대정신을 잘 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한 평가와 공론화의 과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최종식 미디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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