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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식 칼럼] 덧칠해진 프레임의 껍데기를 벗겨라

최종식 미디어전략실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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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을 보는 시각이나 방향 등을 우리는 프레임(frame)이라고 한다. 창틀이나 뼈대 등 특정한 모양 등을 지칭하던 이 단어는 정치, 경제 등의 분야에서는 그 집단이 가지고 있는 속 뜻, 본질, 방향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프레임은 고정불변이 아니다. 오히려 고정화된 프레임을 거부하거나 새로운 프레임을 만드는 과정이 창조적 활동일 수 있다. 

하지만 프레임이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 종북, 좌파 등 정치권의 프레임으로 만들어질 경우는 전혀 다른 문제를 낳는다. 정치인들은 진실을 감추거나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기 위해 특정 프레임을 만들어 왔다. 역사적으로도 인종이나 종교, 계급 등의 프레임으로 전쟁을 일으켜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정치인은 부지기수다.

 

프레임을 왜곡시키는 방법도 교묘하다. 작은 우려를 확대하거나 소소한 원인을 전체인양 지목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처럼 교묘하게 덧칠해진 프레임을 벗기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사회에서 언론과 권력이 결합된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여기에 문화까지 덧칠해진 프레임은 혁명적인 담론이 나오기 전에는 그 껍데기가 벗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프레임을 바꾸는 여정은 길고 고단할 수밖에 없다.

 

국정농단의 핵심인물인 김기춘 전 대통령실장은 프레임을 만들어내는 귀재다. 그는 왜곡된 프레임으로 40년간 권력을 누려 왔다. 박정희 정권시절 젊은 검사 김기춘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침몰시키는 유신헌법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민주주의를 말살한 공로로 초고속 승진, 중앙정보부 대공국장을 맡아서는 재일유학생간첩단 사건을 조작했다. 

고국에서 공부하겠다고 온 젊은 유학생들에게 반공프레임을 뒤집어 씌웠다. 소수의 지식인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그가 만들어 낸 프레임을 부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가 덧붙인 프레임이 허구였다는 사실은 40년이 지나서야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확인됐다.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그는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 단죄를 내려할 시점이다. 십상시 문건이 터졌을 때도 김 전 실장은 문건 내용을 확인하고 사실을 밝혀내야 할 위치에 있었지만 오히려 문건 유출자를 처벌하는 프레임으로 본질을 왜곡시켰다. 

부산 초원복집 사건도 선거법 위반 문제가 아닌 도청의 위법성 문제만을 부각시켰다.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도 테블릿 PC의 내용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언론사의 습득과정을 문제 삼았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는 좌익 프레임을 덧붙였다. 역사의 심판대에서 그는 또 어떤 프레임을 들고 나올지 자못 궁금해진다.

 

묵자는 공자와 같은 춘추시대에 살면서 공자와는 전혀 다른 사회운동을 벌인 철학자이다. 영토 확장을 위한 전쟁에 반대하며 침략국을 직접 찾아가 설득하는 등 전쟁을 막는데 온 힘을 기울인 반전 평화주의자였던 묵자는 인의(仁義)로 이상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던 공자를 강하게 비판했다. 극기복례( 克己復禮), 술이부작(述而不作) 등 공자의 중요한 아젠다인 주례(周禮)로의 회귀가 계급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술책이라는 것. 

노동자, 농민, 천민들과 함께 대동사회를 주장한 묵자에게는 유자들이 만들어 낸 계급사회의 프레임을 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묵자는 현대의 민주주의에서도 참고해야 할 중요한 정치철학을 갖추었음에도 시대의 이단아로 2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고정화된 프레임을 벗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선거는 프레임 전쟁이다. 후보자들마다 각양각색의 프레임을 만들어 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프레임 모두가 진실은 아니다. 포장된 프레임은 그 껍질을 벗겨내야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특히 유력한 후보자들이 만들어 낸 프레임은 그 배경과 내용을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이런 연유로 10년 넘게 활동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프레임은 좀 더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국내 활동 정치인들은 그동안 사안에 따라 평가가 있었지만 반 총장은 객관적으로 평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공동 아젠다에 얼마만큼 기여했는가? 전쟁과 기근으로 국경을 넘다가 숨진 수많은 난민을 위해 무엇을 했는가? 왜 해외언론은 그에게 ‘우려총장’이라는 별명을 붙였는가? 기름장어는 또 무엇인가? 남북의 긴장과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등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평가는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이름에 대한 프레임이 아니다. 그가 국제사회를 위해 대한민국을 위해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덧칠해진 프레임을 찾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프레임 자체에 의문을 갖고 ‘왜’라는 질문을 통해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왜라는 질문 자체가 껍질을 벗기는 과정이다. 왜라는 질문과 사실에 대한 의문이 학문의 시작이기도 하다. 흔히들 인간은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큼만 보인다’고 한다. 바꿔 말하면 ‘더 보려고 하면 진실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역사적인 시험대에 서 있다. 더 이상 왜곡된 역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덧칠해진 프레임의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최종식 미디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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