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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식 칼럼] 알려지지 않은 판결 그리고 표현의 자유

최종식 미디어전략실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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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본격적으로 거론되기 직전인 지난달 3일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판결이 있었다. 재야사학자로 ‘한국의 식민사학 카르텔을 끊겠다’며 자비를 들여 연구소를 설립해 후학을 가르치며 저술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덕일 한가람연구소장에 대한 판결이었다. 역사학계에서는 관심거리였지만 주류 언론들은 이 판결을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 소장은 강단사학계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책을 잇따라 출간하면서 단단한 독자층을 갖고 있는 사학자다. 이런 이 소장이 명예훼손이라는 형사소송에 휘말린 것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책을 통해 김 모 전 고려대교수를 식민사학자이자 친일파라고 비판하면서다.

 

이 소장은 김 교수가 쓴 책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라는 책의 내용이 우리 고 사서를 부정하고 일본서기에 나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거나 책 곳곳에서 일본학자나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인용해 사실상 임나일본부설을 따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김 교수와 같은 방식의 언설이 해방이후 친일사학자인 이병도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강단사학자들의 카르텔이라며 거칠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소장을 통해 임나일본부는 허구라고 책에서 밝혔기 때문에 이 소장이 내용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 논쟁과 관련 서울서부지방법원 제1형사부(재판장 지영난)는 이 소장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무죄 취지를 통해 ‘이 소장의 비판은 학자로서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 이 비판은 개인을 비방할 목적이 아니라 학문적인 경향과 행태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덧붙여 출판물을 이용한 의사소통의 경우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폭넓게 보장해야 하고 사법권이 신중한 고려 없이 학자들 사이의 학문적 비판과 논쟁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초부터 이 소송은 책의 본문 곳곳에 제시된 사례나 내용이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가가 논쟁거리였다. 당연히 학문적 비판의 대상이 됨에도 김 교수는 학문적 토론을 배제하고 소송의 대상으로 삼았다. 어쩌면 평소 주류사학계를 비판해 온 것을 못마땅해 오던 주류사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글이나 책을 통한 의견은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의 문제임에도 이를 소송으로 연결시킨 것 자체가 학자의 자기부정일 수 있다.

 

사실 글이란 전체가 아닌 본문 속의 단어나 작은 사례와 자료만으로도 그 자체의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제시하는 담론보다 오히려 작가의 의도가 소 담론에 더 강하게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 재판부도 친일사학자라 비판하면서 제시한 내용이나 근거가 학문적인 의미가 친일사학자 사실 자체를 떠나 학문적 논쟁으로서는 충분하다고 인정했다. 이는 글의 전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개별 문장이나 자료 자체에 대해서도 저자가 유한 책임을 져야함을 인정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글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사례와 근거를 제시해 독자들에게 동의 받는 과정이다. 대표적인 것이 기자들이 작성하는 기사로 객관적인 사실을 통해 그 주장에 공감을 받아낸다. 하지만 작가가 펼치는 의견이나 주장이 되는 근거가 부적절하거나 오히려 결론과 상반되는 사례들을 볼 수 있다. 읽고 나서도 뭔가 찜찜한 느낌을 지울 수 없고 오히려 그 주제를 부정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진다. 이쯤 되면 읽어서 독이 되는 글이 될 수 있다.

 

재판부의 판결문 중 주목되는 부분은 공공의 범위를 확대하고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공공의 이익이란 국가, 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적시했다. 이 표현은 대학교수로서 활동과 출판 자체가 공공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공인은 사인과 달리 당연히 비판을 수용할 자세를 갖추어야 하고 그 비판에 대해 학문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실 한국사회 주류들은 그동안 자신들을 향한 비판을 외면하거나 애써 무시해 왔다. 오히려 카르텔을 통해 비판자들을 매장시켰다. 이는 학문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정치, 예술 등 전 분야에 걸쳐 기득권자들의 자기존재방식이며 한국사회 전체의 적폐이기도 하다.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사회는 공공적인 사안임에도 자유로운 비판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사회는 사회적 공공선도 만들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국정농단도 어쩌면 대통령을 비롯한 권력자 스스로 자신이 공인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결과이기도 하다. 이래저래 널리 알리고 싶은 의미 있는 판결문이다.

 

최종식 미디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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