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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섭 칼럼] 길에서 새해 각오를 건지다

이연섭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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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누구나 이런저런 계획들을 세운다. 작년에 했던 계획을 또 세우기도 하고, 벌써 몇년째 같은 계획을 세울 때도 있지만 새해가 되면 새롭게 마음을 다져 먹는다. 새해 계획이 작심삼일 된 것도 있고, 한 두달 간 것도 있고, 지금껏 하고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만큼 실행에 옮겼는가에 따라 아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365일이 지나면 새해를 맞게 되고, 또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지난해 말 10년 다이어리를 샀다. 이 다이어리는 매일의 일상을 간단하게 몇줄로 정리해 적을 수 있도록 꾸며졌다. 10년간의 자신의 삶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게 이 다이어리의 장점이다. 오늘의 일상을 메모하면서 작년 오늘, 그 작년 오늘을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재밌다. 5년 뒤, 10년 뒤 이 다이어리를 뒤적여보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도 궁금하다.

산 속 카페에서의 힐링

새해 이 다이어리에 올 한해 계획을 10여가지 적었다. 그리고 며칠전 조심스레 그 계획들을 들여다봤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지키지 못한 것이 더 많다. 책을 많이 읽겠다는 것도,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것도 한참 미달이다. 취미로 배우는 그림 그리기는 보통 수준, 열심은 아니지만 결석은 별로 안한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 중 잘 지킨 것은, 여행을 많이 다닌 것이다. 틈나는대로 혼자서도 다니고, 여럿이 어울려서도 다녔다. 그래서인가 올 한해, 좋았다는 생각이다.

12월 중순 휴일에 지인들과 평창의 산골에 위치한 호젓한 찻집에 다녀왔다. 산 속에 위치한 카페는, 이런 곳에 누가 커피를 마시러 올까 싶었는데 뜨문뜨문 입소문을 듣고 찾아 들었다. 좌석도 몇개 되지 않는 찻집에서 LP판 음악을 들으며 맛과 향이 다른 드립커피 몇잔에 취해 있으려니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았다. 카페 주인장 부부는 별 욕심없이, 하루 몇잔의 커피를 파는 것에 만족하며 거기 오는 이들이 즐거우면 자신들도 즐거운 양 그렇게 사는 것 같았다.

그집 화장실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

‘결심한 일이 잘 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강박관념을 버릴 것/ 사람이든 일이든 내쪽에 유리한 방향으로만 계산하면서 대하지 말 것/ 무엇에 대해서든 기대치는 항상 가장 낮은 쪽 가장 아래 쪽에 둘 것/ 나라는 한 개인보다 인간이라는 전체에 대해 보다 많이 생각하고 사고 할 것/ 음악, 미술, 문학, 예술들에 좀 더 깊어 질 것/ 모두에게 그리고 무슨일에나 진정성을 갖고 대할 것’

그 글 아래엔 ‘어느 심리학자의 새해 각오라는군요’라고 적혀 있었다. 화장실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 덮인 산 풍경을 그냥 멍하니 쳐다도 보고, 장작을 때 뜨끈한 의자에서 지지기도 하고, 수다도 떨고 그러다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하며 몇시간을 보냈다. 빈둥대며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잘 쉬고, 눈쌓인 길이 미끄러워 차를 못갖고 올라와 잠깐 걸어 내려가는데 마을에서 또 하나의 글을 만났다. 그 마을이 별천지마을이란 것도 그때 알았다.

여행에서 만난 좋은 글

별이 유난히 많아서 별천지인가? 아님 때묻지 않은 자연과 아름다운 풍광을 별천지라 한건가? 하며 글을 읽어 내렸다. ‘어느날 내가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나를 만난 다음에는/ 사는 일이 더 즐겁고 행복해져야 한다’.

그래야한다고, 단호함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찻집 화장실에서, 마을 길에서 만난 두 개의 글이 내 자신을, 내 삶을 들여다보게 했다. 오늘은 이래서 또 의미있는 시간이구나 생각했다. 저물녘 조심스레 산 속을 빠져나가며 그냥 엷은 미소가 지어졌다.

또 한해가 저물어 간다. 새해가 되면 또 이런 저런 계획들을 세우겠지. 난 내년엔 책을 한달에 몇권 읽겠다, 몸무게를 몇 kg 줄이겠다, 운동을 매일 얼마나 하겠다라는 식의 계획은 세우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 찻집 화장실에서 봤던 문구, 별천지 마을에서 만난 글귀를 맘에 새기는 것을 새해 계획으로 삼으려 한다. 이젠 삶의 의미, 삶의 가치 이런 걸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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