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박 사이트

[이연섭 칼럼] 세종대왕 뿔 나시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기자페이지

카지노 도박 사이트

얼마전 잘 아는 병원장이 한 모임에서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말이라며 맞춰보라고 했다. 병원장은 간호사 등 젊은 친구들과 소통 하려면 줄임말을 알아야 할 것 같아 몇가지를 핸드폰에 적어다닌다고 했다.

그가 던진 단어는 ‘흠좀무’ ‘안습’ ‘금사빠’ ‘깜놀’ ‘냉무’ 같은 것들이었다. 자리를 같이했던 3명이 맞춘 단어는 ‘안습’과 ‘깜놀’ 정도였다. ‘안습’은 안구에 습기차다, 즉 눈물이 난다는 뜻으로 슬프거나 안타까울 때 쓰는 표현이란다. ‘깜놀’은 깜짝 놀라다의 줄임말이다.

나머지를 병원장이 설명해 주는데 그도 ‘흠좀무’는 생각이 안난다고 했다. 단어를 적어놓으면 생각이 날 줄 알았는데 자주 쓰지 않다보니 잊어버린 것이다.

홀대받고 파괴되고, 한글 수난

듣도 보지도 못한 ‘흠좀무’는 ‘흠… 이게 사실이라면 좀 무섭겠다’라는 뜻이란다. 세 글자만 보고는 상상이 되지 않는 생소한 뜻이다.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냉무’(내용이 없음)도 이상스럽기만 하다.

이런 단어는 생선(생일선물), 생파(생일파티), 버카충(버스카드충전), 멘붕(멘탈붕괴) 처럼 단어를 압축시킨 것부터 ㅊㅊ(친구 추천), ㄱㄱ싱(고고싱의 줄임), 즐~(즐겁다는 뜻), 즐(상대방을 무시하거나 비꼴 때), - -(황당하거나 어이없을 때) 등 뜻 모를 부호까지 부지기수다.

한글이 수난을 겪고 있다. 망가져가고 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래어, 비속어가 난무해 사회적 소통에 문제를 일으킨다. 문법에 맞지 않는 높임법과 줄임말도 한글 파괴의 주범이다.

과도한 높임법은 사람이 아닌 사물을 높여 부르는 것으로 많은 이들이 혼동해서 쓴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노 한잔 나오셨습니다’나 ‘이 옷은 30% 할인 되십니다’라는 식이다. 우스꽝스러운 사물 존칭은 흔히 ‘백화점 존칭’이라고 하는데 쇼핑센터 등에 가면 자주 듣게 된다. 높임말은 사람이 대상이 돼야지 엉뚱한 대상을 높이는 것은 잘못된 표현이다.

청소년들이 즐겨쓰는 과도한 줄임말, 외래어와 우리말을 섞어 만든 신조어, ‘쩐다’ ‘빡친다’ 등의 비속어, ‘조아’ ‘시러’ 등의 틀린 맞춤법 등 잘못쓰거나 비틀어쓰는 사례도 허다하다. 인터넷, 휴대폰을 통한 통신 사용이 늘면서 한글의 망가짐은 더욱 가속화 됐다. 이들의 언어는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해 ‘외계어’라고도 한다.

문제는 언어 습득력이 놓은 청소년들이 이런 언어를 빠르게 받아들이면서 정확한 한글 교육 및 보급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상당수 학생들이 맞춤법이 서툰 것도 줄임말의 남발 때문으로, 표준어와 구별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과 글을 보존·발전시켜야 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한글 파괴에 가세하고 있다. 정부 기관과 지자체의 상징이나 구호, 정책 이름, 공문 등에 영어가 남용되고 영어와 한자, 한글을 뒤섞은 국적 불명의 조어(造語)가 넘쳐나고 있다. ‘It’s 대전’ ‘Go~興! 온마을교육’ ‘내가 그린Green 희망Job氣’ 등 정체불명의 외래어가 범벅돼 있다. 국어기본법 제4조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국어의 발전과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안타깝다.

한글, 세계 공용문자로 키우자

한글은 전 세계 언어학자들로부터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문자라는 칭송을 받았고, 세계 각국에서 한글의 과학적인 체계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언어는 존재하되 문자가 없는 소수민족의 사라져가는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세계 언어학자들은 한글 채택을 권장하고 실제로 많은 소수민족이 한글 사용을 검토하는 상황이다. 최근 해외 세종학당에서 한국어와 한글교육 열풍이 일고 있기도 하다. 한글이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 공용문자가 될 것이라 예측도 나온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한글을 홀대하고 망가뜨리고 있다. 세종대왕이 뿔 나실 일이다. 한글 경시풍조를 보다 못한 사람들은 ‘국어 모독죄’라도 만들어 망가지는 우리 말과 글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내일은 한글 탄생 567주년 되는 날이다. 올해 한글날은 23년만에 공휴일로 돌아와 하루 쉰다. 쉬는 날 하루 더 생겨서 좋다가 아니라 한글의 오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날이었음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 경기일보(committingcarbicide.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