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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의 도시이야기] 도시와 도시 주거의 방정식, 시장(市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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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가 인류의 정주(定住), 특히 주거의 정착으로 인해 성립하고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도시 내에 존재하는 일상적인 주거 즉 도시주거는 도시의 처음부터 지금 혹은 그 종말까지도 도시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파트너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렇듯 오래되고 중요한 도시의 파트너가 그동안 으리으리한 궁전이나 신전, 혹은 휘황찬란한 기념비나 갖가지 호사스러운 양식을 뒤집어 쓴 귀족의 저택 등에 가려 도시라는 조직 속에서 그다지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은 이상스럽기까지 하다. 하긴 도시라는 것도 일종의 살아있는 조직체이고 그 조직을 움직이는 힘 가운데 하나가 계층이나 계급이라고 본다면, 몇몇 사람들과 단촐한 주거들로 시작된 도시의 중심부가 점차 왕궁이나 신전 등으로 채워지고 일반인들의 도시주거는 도시 변방으로 밀려나게 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스의 페리스타일(peristyle) 주택, 로마의 도무스(domus)나 빌라(villa), 중세 이탈리아의 팔라쪼(palazzo) 같은 귀족 주택들이 당대의 세력을 등에 업고 궁전이나 신전과 대등한 힘을 발휘하는 동안 일반적인 도시인들은 화려하지도 않은 자그마한 주택에서 일상을 보냈다. 더러는 비싼 땅값을 견디지 못해 비좁고 혼탁한 도시의 한 구석에서 최소한의 도시생활을 영위했다. 파라오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근처에 지어진 주거들은 최소한의 공간만으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대역사를 위해 조용히 희생했다. 또 대저택을 소유하기 힘들었던 소시민들은 로마의 복작거리는 거리 한 켠에 인슐라(insula)를 짓고 수십세대가 중정 하나를 공유하면서 아등바등 살았다. 기독교적 교리가 사회를 지배하던 중세에는 수도원 한 쪽 구석에서 밭을 갈거나 가축을 키우면서 살았고, 상업 발전이 가져다 준 도시 성장에 순응하고자 후기 중세 도시민들은 길을 향해 좁은 얼굴을 삐죽이 내민 형태의 세장형(細長型) 주거에서 일도 하고 생활도 하면서 하루하루를 근근이 보냈다.

그렇다고 도시주거가 매번 보조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길이나 도로를 따라 도시 주거가 자연스럽게 들어서고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여기저기 생필품과 공산품을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게 된다. 이른바 시장(市場)이라는 것이다. 로마시대 집합주거의 1층 부분은 여지없이 회랑을 설치하여 상점이나 가게로 이용됐고, 이슬람 도시에서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형성된 도시주거 사이를 비집고 원시적인 시장인 바자(bazzar)가 등장했다. 중국의 사합원이나 일본의 신덴즈꾸리(寢殿造) 등의 무사계급 주택 혹은 우리나라의 반가 주택 등이 마을이나 도시의 중심을 이루며 유교적 질서와 경제적 부를 동시에 탐닉할 때도 일반인들은 성(城)이나 널찍한 공터 주변에 하나 둘 둥지를 틀고 나가야(長屋) 같은 특이한 형태의 도시주거 양식을 선보이면서 사람들이 바글바글 대는 시장이나 장터를 형성했다.

비로소 정치의 중심인 도(都)와 경제나 생활의 중심인 시(市)가 합체되는 순간이었다. 으리으리한 규모나 화려한 디자인이 없어도 도시 주거는 일상적인 우리들의 생활 그 자체를 담은 채 도시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활기를 보장하는 어엿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김영훈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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