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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의 도시이야기] 차탈 휘이크 ‘필요한 최소한’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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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의 코니카 근처에서 제임스 메라트(James Melaart)가 신석기 시대의 유물을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차탈 휘이크(Catal Huyuk)는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기원전 6천500년 정도에 건설되어 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원전 5천년 정도에 그 모습을 감춘 이 도시는 인구 약 6천명 정도가 함께 거주한 대규모 집락지이자 도시였다. 신석기 시대임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인구이자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삼각지 지역에 둥지를 틀고 비옥한 토지 위에 곡물과 견과류를 비롯한 농사를 지었다. 벌판에는 가축까지 키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곳에는 견고한 성벽도 없었고 그곳을 지키는 군사도 없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로 직사각형 주택을 짓고 살았으며 한 주택에서 약 100년 정도 사용한 후에 그것을 메우거나 부숴버리고 그 위에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는 식으로 긴 세월을 지내왔다. 같이 살던 가족이 죽기라도 하면 그들이 살던 집 바닥을 파고 사랑하는 사람을 순장하였다. 가족이라는 것이 죽어서도 끊을 수 없는 인연이었던 셈이다.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주택 사이의 간격은 점점 좁아지고 급기야는 이웃집과 벽을 맞대고 있는 모양으로 변해갔다. 집과 집에 오밀조밀 모이다 보니 길이나 도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마도 성벽도 없었던 곳이다 보니 포악한 짐승이나 적군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한 원초적인 수비 대형이었을지도 모른다. 특별하게 큰 주택이나 건물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아직은 살벌한 계급사회가 아니었을 것으로 보이며 원시 신앙을 섬기던 사원 또한 일반 주택과 그 모양이나 크기가 비슷했으니 어마어마한 권력을 지닌 제사장 같은 존재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모두들 고만고만한 크기의 집에 모여 살면서 지붕 위로 올라가 하루를 즐기고 또 고만고만한 사원에 모여 사냥에서 잡은 짐승을 제물 삼아 무병(無病)과 안위(安危)를 빌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차탈 휘이크에는 먹고 살고 사랑하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이 있었다. 서로에 대한 질투와 욕심도 없이 햇빛 따사한 옥상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나 하고 지낼 정도로 여유도 있었다. 서로 살 맞대가면서 사랑해야할 자연인과 가족이 있었다. 다른 곳을 침탈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자기 땅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와 그곳의 자연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버내큘러(vernacular)란 자연스러움 그 자체였다. 유토피아라는 단어도 필요 없었다.

한 웅큼 움켜쥐고도 욕심이 끝이 없는 ‘필요한 최대한(necessary maximum)’의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저 하루하루 넉넉히 먹고 살고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사는 일에만 충실한 이 도시는 다시금 ‘필요한 최소한(necessary minimum)’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묻고 있다.

김영훈 대진대 건축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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