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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야, 나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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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두운 사진 한 장이 있다. 그 속에서 대각선으로 나뉜 화면이 보인다. 사선 구도로 공간을 나눈 거친 표면의 시멘트 계단은 빛이 들어오는 부분과 먹먹한 어둠의 극적 대비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반다이크스티치(네덜란드 화가의 회화기법)’를 연상케 하는 좌측의 계단 아래 거친 질감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겨진 듯하다.

 

계단의 정체는 무엇일까. 여기서 어떤 음침하고 무시무시한 사건이 벌어졌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 재개발이 거론될 정도로 지어진지 오래된 한 상가의 지하실을 촬영한 것이다. 연일 신도시와 재개발 등의 단어가 쏟아지는 이 시대에 도심 어디서나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비록 그 대상은 평범하지만, 켜켜이 먼지가 쌓였던 지하실이 사진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의 과정은 의미있게 볼 만 하다.

 

이 사진은 사회와 도시, 사람 등을 주제로 특정 결과물 대신 작업 과정을 작품화하는 공공예술가 김새벽의 작품 중 일부다.

 

그는 수년전 뉴타운개발을 놓고 주민들의 찬반대립이 뜨거웠던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의 한 허름한 상가에 들어섰다. 거미줄과 먼지를 걷어내고 판도라의 상자처럼 온갖 재앙과 제악이 뛰쳐나올 것 같은 어두운 지하실 문을 열었다. 어둠은 인간의 시각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퀴퀴한 냄새만이 코끝을 후벼 파며 공간의 기억을 전했다.

그 냄새의 정체는 (주민 이야기에 따르면)버려진 생명체였다. 버려진 공간에는 길 잃은 고양이의 싸늘한 주검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는 저미는 악취와 고양이에 대한 주민의 기억, 지하공간 등을 촬영해 버려지고 외면당한 모든 것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앞서 지하실의 한 단면을 포착한 사진을 비롯해 그 과정을 담은 기록물을 전시하는 것은, 근현대사를 되새기고 미래를 바라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계단 아래 어둠속에서 죽어간 고양이를 생각해본다. 그것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철저한 계획하에 지어졌지만 새로운 ‘오벨리스크’의 등장으로 버려진 지하실과 묘하게 닮아 있다.

 

안양시는 이 건물이 있던 만안구의 석수 2동을 비롯해 인근 안양 2·3동, 박달1동 일대 177만6천여㎡를 재정비지구로 지정해 뉴타운 사업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개발을 요구하는 시민의 목소리에 사라질 처지에 놓였던 이 건물은 개발을 반대하는 또 다른 시민들에 의해 살아남았다.

 

언론을 통해 간간이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뉴타운 사업은 취소됐어도 재개발을 두고 여전히 주민 반목과 대립이 비슷한 양상이라고 한다.

 

결국 건물은 부서지지 않고 제 모습을 지켰지만 또 다시 주민들의 갈등과 외면속에 길 잃은 고양이를 불렀던 어둠만이 남았다.

 

재개발 여부를 놓고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차갑게 식어버린 지하공간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것은 적막한 고요함 때문만은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공간을 쓰다가 낡으면 버리는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한없이 가벼운 인식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뉴타운이든 재개발이든, 그 과정에서 철거 대상이든 재생 공간이든, 모든 건물과 공간은 그 외형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의 온기를 바탕으로 역사가 될 소중한 기억과 시간을 담고 있는 무형의 것이 더 큰 가치를 품고 있다. 정책 입안자나 시민, 개발자 등 도시를 공유하는 모든 주체가 이 공간에서 보존하고 복원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자세를 갖춰야 비로서 지하실의 짙은 어둠이 걷힐 듯싶다.

 

조두호 수원미술전시관 수석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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