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해 보이는 혁명의 공식은 간단하다. 깨달음에 이은 행동이다. 지나간 과오를 깨닫는 게 출발이고, 이를 신념으로 행동에 나가는 것이 완성이다. 나는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를 시민에 의한 혁명의 시작이라고 말하겠다.
누구도 시도해본 적 없다. ‘○○방문의 해’ ‘△△방문의 해’는 많았다. 그러나 이 때의 ○○, △△지역은 모두 광역 시도다. 기초자치단체(시군)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이번 일이다. ‘수원시는 울산만큼 크다’며 우기고, ‘문광부 선정 으뜸 명소’라고 비벼대며 풀어 가고 있다.
누구도 가 본 적 없는 길이다
순조롭다고 들린다. 하지만 화룡점정은 시민의 참여다. 우리는 엊그제 인구 4만5천명이 만들어낸 ‘Pyeong- chang!’의 기적을 지켜봤다. 4만5천명이 해낸 일을 105만명이 못할 이유가 없다. 기적이라 부르든 혁명이라 부르든 상관 없다. 우리도 그런 걸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돈 좀 벌어 보자는 일 아닌가. ‘돈 쓰는 華城’을 끝내고 ‘돈 버는 華城’으로 가자는 일 아닌가. 시민들이 그토록 원하던 방향이다. 1천억, 2천억씩 쏟아 부을 때마다 많은 시민들이 ‘제발 좀 그만하라’고 말렸다. 그러나 표에 눈먼 정치인들은 듣지 않았다. 결과는 화려한 투자에 초라한 수입뿐이다.
10년전 있었던 ‘2001 세계 도자기엑스포’가 끝나고 TV에 나온 한 도예인의 인터뷰가 기자들 사이에 화제였다. “지난 5년간 진 빚을 이번 행사로 다 갚았다.” 사업의 평가는 그 말 한마디로 끝났다. 이천 여주 광주의 500년짜리 자산, 이 자산을 돈으로 엮어낸 건 바로 도자기엑스포였다.
華城은 수원의 215년짜리 자산이다. 하지만 이 자산이 백성을 먹여살렸다는 기록은 여지껏 보지 못했다. 문화재 지구라며 규제하고, 복원한다며 돈 쏟아 부어 온 게 다다. 이제 그 華城을 장사밑천 삼아 좌판을 벌일 때가 왔다. 십수년간의 ‘공사중 푯말’을 걷어 치우고 ‘영업중 간판’으로 바꿔 달 때가 왔다.
여기에 정치가 무슨 소용있나. 華城 이 유독 정치에 휘둘려 온 건 사실이다. 시민의 표를 얻어 뭣 좀 해보려는 사람들마다 華城을 들먹였다. 시장들은 4년짜리 복원공사에 사활을 걸었다. 국회의원들도 화성특별법이니 뭐니 들먹이며 어지간히 써 먹었다. 그래서 남은 건 과하게 지나친 복원과 여전히 턱 없는 지원뿐이다. 이게 다 華城을 자산으로 보지 않고 치적(治積)으로 봐서 생긴 일이다.
풍요와 누림의 역사로 가보자
이제 달라질거다. ‘2016년’은 누구를 위한 임기도 아니다. 어떤 정치적 마디와도 겹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화성축성 220주년째 되는 해에 벌어지는 판 큰 잔치일뿐이다. 당기(黨旗) 내리고, 이념 잊고 한 곳으로 모여 들어도 된다. 거기서는 누구도 손해보지 않는다.
이제 다 끌어 안고 가자. 지나간 실수는 앞으로의 약이다. 쏟아 부은 혈세 5천억? 2016년부터 벌어들일 5조원을 위한 투자라고 보자. 족보도 없이 만들어진 이런 저런 건물들? 2016년에 찾아 올 관광객들에게는 그것도 華城의 일부다. 버릴 것도 없고 떼어놓고 갈 사람도 없다.
실패와 실험의 역사를 끝내고, 풍요와 누림의 역사로 가는 길. 이것이 ‘2016 수원화성방문의 해’다. 그리고 그걸 행동으로 옮겨 가는 게 수원시민의 혁명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