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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학생’ 인권조례안

김종구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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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손 놨다’ 학부모들의 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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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은 도둑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한다. 도둑의 인권을 보호하는 건 따로 있다. 형사소송법이다. ‘남의 재물을 훔친 자는 6년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형법이다. ‘수갑 채운채 망신을 주면 안 되고, 밥은 세끼를 꼬박 줘야 하고, 말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건 형사소송법이다. 형법이 무너지면 사회질서가 무너지고, 형사소송법이 무너지면 피의자의 인권이 무너진다. 법의 역할은 이렇듯 서로 다르다.

 

학생인권조례안은 법이다. 적어도 학생들에겐 헌법보다 가깝고 형법보다 절대적이다. 이 조례안에 기대했던 보호법익은 선량한 학생들의 행복한 학교생활이다. 제정 당시 경기도 교육청도 그렇게 말했다. 교육감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여러분들을 위한 조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 설명회장에 초청된 학생들 모두 선량한 학생들이었다. 당연히 거기 모인 학생들이 박수를 보냈고, 학교로 돌아 가 학생인권조례안에 전도사가 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상하게 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불량학생’인권조례안으로 바뀌고 있다.

 

선량한 학생 위한 조례안 아니었나

 

처음에는 안 그랬다. 두발 자율화, 교복 자율화, 교문단속 금지 등 개혁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부는 ‘교육 망친다’며 비토했지만, 억압과 규제에서 해방된 어린 학생들의 환영 물결을 거스리지는 못했다. 이랬던 분위기가 차츰 싸늘해졌다. 체벌로 대변되는 불량학생처리 문제가 이슈가 되면서부터다. 많은 학생들이 조례안을 얘기하지 않기 시작했다. ‘나와는 상관 없는’ 법으로 돌려세웠다. ‘조례안 때문에 힘들다’는 말까지 나왔다.

 

며칠전 파주 모 고교. 18살짜리 학생이 학교건물 뒤에서 담배를 피웠다. 모든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평일 오전 10시다. 게다가 학교 출입구에 오줌까지 누었다. 이를 본 교사가 학생을 불러 훈계했다. 그러자 이 학생, 이번에는 교사의 가슴을 밀쳐내며 ‘그만하고 법대로 하라’며 망신을 줬다. 흡연, 방뇨, 교사폭행. 어느 것 하나 학생이 할 짓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짓들이 엮여서 발생했다. 그것도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교사 앞에서.

 

이 얘기를 교권수호주장의 교부재로 삼으려는 게 아니다. 얘기하고 싶은 건 나머지 학생들의 권리다.

 

일이 벌어진 건 10일이고 1차 징계위가 열린 건 13일이다. 처리까지는 또 한참 걸렸다. 소문이 학교를 떠나 지역사회로까지 번져나가자 그제서야 징계위가 열렸다. 그러면서 한다는 얘기가 “교사 체면도 있고해서”란다. 학교가 교사체면 따지던 그 기간. 죄없는 다른 학생들은 여전히 그 ‘학생같지 않은 학생’과 섞여 생활해야했다. 교사들은 교사들대로 눈 감고 귀 막고 수업만 했다. 이건 학교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다. 왜 죄 없는 수십 수백명의 학생들이 이쪽 저쪽 눈치 살피며 긴장해야 하나.

 

체벌 체벌 하는데, 청소년에게 정말 공포는 급우의 폭력이다. 교과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고 3 남학생의 평균 키는 173.74㎝다. 180㎝를 훌쩍 넘기는 ‘어깨’들도 즐비하다. 그래서 교실은 늘 약육강식의 정글법칙이 폭발의 기회만을 엿보는 곳이다. 교과부가 만든 또 다른 자료. ‘2009년 청소년 자살 현황’에는 이런 통계도 있다. 202명의 청소년들이 1년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기서 ‘급우의 폭력때문에’란 원인이 여섯번째다.

 

이 아슬아슬한 교실의 평화를 유지시키는 게 학교다. 굳이 때리고 맞는 완력의 세계만을 꼽는 게 아니다. 선량한 학생들에겐 맘 편히 학교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주먹 휘두르는 학생, 선생님 폭행하는 학생들과의 불편한 동거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왜 자꾸 불량학생들을 교실속에 몰아 넣지 못해 안달인가. 학생패고 선생폭행하는 게 불량행위가 아니라선가, 아니면 불량행위지만 너네끼리 적자생존해보라는 얘긴가.

 

‘학교가 손 놨다’ 학부모들의 탄식

 

학생인권조례안도 법이다. 이 조례안이 지켜줘야 할 최우선 법익, 그건 선량한 학생들의 행복추구권이다.

 

-아이가 매 맞았으니 빨리 와서 병원에 데리고 가라는 전화를 받아 본 학부모, 애가 가져온 녹취속에서 금품갈취의 섬뜩한 협박을 직접 들어 본 학부모, 폭행당한 수치심으로 수업중에 뛰쳐나온 아이를 다시 학교로 돌려 보내 본 학부모- 이런 경험담들이 주위에 수두룩 하다. 하나같이 따라 붙는 하소연은 이 거다. ‘학교가 완전히 손을 놨어’.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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