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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림병 한 방에 무너진 ‘G마크 복지’

김종구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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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쌀, 중국산 무수’-스프링자국이 그대로 남은 공책 쪽지. 파란색 볼펜으로 아무렇게나 갈겨 썼다. 누가 봐도 짜증이 묻어난다.

 

매향동 욕쟁이 할머니는 그랬다. 이 순대국집은 반찬이라야 깎두기에 새우젓뿐이다. 그래도 단골들은 대(代)를 이어 찾는다. 5천원짜리 순대국 먹다가 5만원짜리 주차딱지 끊기 일쑤다. 밥 먹고 있는 이 집 손님들의 눈이 하나 같이 문 밖을 응시하는 이유다. ‘그 종이’를 쳐다보다가 할머니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곧바로 욕이 튀어 나온다. “염병. 원산진지 지랄인지야. 안 붙이면 벌금 물린댜.”

 

그 집에서는 누구도 원산지를 묻지 않는다. 30년간 중국산 무우 먹었지만 아무도 안 죽었다. 그런데도 써 붙여놔야 한다. 그리고 붙인 그대로 손님 상에 내놔야 한다. 그게 ‘원산지 표시제’고 그게 ‘법’이다. 할머니는 음식 자랑에도 욕을 섞는다. “다른 년들은 죄다 밀가루 푼 물이여. 나니까 (육수 만드는) 이 짓을 허지” 하지만 그런 할머니도 원산지표시제 앞에선 꼼짝 못한다.

 

그렇게 무서운 거다. 그런데 이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일이 생겼다. G마크 돼지고기.

 

약속은 ‘G마크’ 공급은 일반고기

 

G마크 돼지고기는 맛도 좋고 몸에도 좋단다. 물론 그 맛을 구별해 낼 미각이 내겐 없지만. 그러면서도 매장 앞에 서면 한참을 망설인다. ‘몸에 좋다는데… 비싸긴 하고…’ 고민끝에 내리는 결론이 선택구매다. 아이 먹일 땐 G마크 돼지고기, 내가 먹을 땐 일반 돼지고기. 밥솥 가득한 깡보리 한 켠에 자식 줄 흰쌀밥을 따로 올리던 게 우리 부모 세대다. G마크 챙겨주는 것쯤은 자식사랑 축에도 못 낀다.

 

2월. 이 귀하다는 G마크 돼지고기를 학교에서 준다고 했다. 경기도와 교육청, G마크 돼지고기 업체들이 모여 사진도 찍고 악수도 했다. 전체 학생의 90%라니까 대략 190만명이 대상이다. 여기에 초등학교는 무상급식이고.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친환경 김 지사가 고마웠고, 무상급식 김 교육감이 고마웠다.

 

그렇게 약속한 게 몇 달이나 됐다고. 복장 터질 일이 생겼다. 실제 공급된 게 G마크 돼지고기가 아니었단다. 부천과 고양, 김포지역에서는 3월이후 G 마크 돼지고기가 식단에 올라간 적이 없다. 4월 한 달간 안양에서 공급된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들도 비슷하다. G마크 준다며 실컷 박수 받아 놓고는 슬그머니 다른 고기를 내놓고 있었다. 딱 떨어지는 원산지표시제 위반이다.

 

물론 공급자는 업체다. 그러나 이 일이 업체만 닥달할 일인가. ‘돈모닝’이 뭐하는 곳인지 ‘청미원’이 어디에 있는지 학부모들은 모른다. 굳이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경기도와 교육청이 엄선했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런 게 공인(公認)이다. 공인받은 업체의 행위는 공인해 준 기관의 행위다. 공인받은 업체의 잘못은 공인해 준 기관의 잘못이다. G마크 돼지고기의 공급문제는 도의 잘못이고 교육청의 잘못이다.

 

너나 없이 구제역 핑계를 대던데, 이 문제도 그렇다.

 

장마가 3일만 휩쓸고 지나가도 배추값은 3배로 뛴다. 조류독감 한 번 돌면 닭고기는 부르는 게 값이다. 금값과 동값 사이를 정신 없이 오가는 것, 이게 농축산물이다. 그래서 수급불균형을 농축산물이 갖는 가장 기본적 특질이라고 한다. 이런 상식도 모르고 떵떵 거렸나. 모르고 했다면 무지한 약속이고, 알면서도 했다면 무책임한 약속이다. 어느 쪽이든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경기도發 ‘G마크 복지’는 이렇게 무너졌다. 허무하게도 돌림병 한 방에 끝났다. 게다가 이게 끝도 아니다. 무너질 때를 기다리는 또 다른 ‘친환경 복지’들이 즐비하다. 장마 한 방이면 친환경 과일약속이 무너질 거고, 가뭄 한 방이면 친환경 배추약속도 무너질 거다. 그때 가서 뭐라고 할 건가. 매번 장마 핑계, 가뭄 핑계, 조류독감 핑계, 브루셀라 핑계나 대면서 버틸 건가.

 

구제역 핑계·장마 핑계·가뭄 핑계

 

애초에 잘못된 출발이었다. 해서는 안 될 약속이었고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이었다. ‘공짜’와 ‘반값’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보니 아무 생각없이 휩쓸려 간 거다. 화려한 구호가 남긴 초라한 실천이다. 지금 많은 엄마들이 대노(大怒)하는 것도 그거다. ‘우리가 언제 G 마크 달라고 한 적 있느냐’, ‘왜 지키지 못할 약속해 놓고 실망만 주느냐’다.

 

‘욕쟁이 할머니’는 여상(女商) 출신이다. 틈만 나면 학벌 자랑이다. 글을 몰라서 그렇게 갈겨 썼겠나. 간섭이 싫은 거다. 중국산 무우라고 공개하라는 게 싫은 것이다. 무엇보다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게 짜증스러웠던 거다. 그래도 그런 욕쟁이 할머니가 훨씬 낫다. G마크 돼지고기 약속하고 경상도 돼지고기 주면서도 반성 안 하는 사람들보다는.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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