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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사랑이 가득한 삶을 꿈꾸자

양두영 천주교 수원교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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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들에서 필자는 충만한 삶이란 자신을 채우려는 삶보다 오히려 소명과 연관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참행복의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삶의 소명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한데 소명의 구체적인 형태는 사람마다 매우 다르고 소명을 찾기 위한 탐색의 과정도 모두 제각각이라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하나의 고정된 답 같은 건 말할 수 없다. 그래서 구체적인 소명 탐색을 돕는 일은 개인적인 동반 안에서 이뤄져야지 이런 글에서 ‘어찌하라’기엔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보편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젊은이들과 영적 동반을 하다 보면 유독 소명 탐색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 경우 “내가 될 수 있는, 내가 꿈꾸는 나의 최고 버전부터 그려봐라.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라”고 말해주기도 한다. 소명은 ‘내면의 깊은 열망-잠재력-존재목적-자기완성’과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초의 존재 목적은 주위를 밝히는 것이다. 즉, 초는 자신 안에 있는 심지(잠재력)를 꺼내 그것으로 자신을 태울 때 비로소 자신으로서 완성된다(존재 목적 달성).

 

그런데 천주교에서 인간은 기본적으로 신의 모상(模像)이다. 그리고 천주교에서 신은 삼위일체, 즉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일체’이신 분이다. 따라서 인간은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줄 때 자신 안에 있는 신의 잠재력을 실현하고 비로소 자신을 완성한다. 그렇다면 저마다 그 구체적인 형태는 다를지라도 ‘인간으로서’ 갖는 보편적인 소명의 방향성은 이와 무관할 수 없다.

 

실제로 우리는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람에게서 어떤 신성함, 거룩함을 느끼게 된다. 억만장자, 무소불위의 권력자에게서 거룩함, 충만함을 느끼는 게 아니다. 오히려 노숙인들을 위해 허리 숙여 더럽고 힘든 일조차 마다하지 않는 김하종 신부님 같은 분에게서 우리는 어떤 거룩함을 느낀다. 그렇게 남을 위해 땀 흘리는 얼굴 속에서 오히려 어떤 평화로움, 행복감, 충만함 같은 걸 발견한다.

 

그렇다면 각자 자신의 소명을 탐색할 때에도 이를 참고할 수 있다. 꼭 그렇게 멀리 갈 필요 없이 ‘부모가 되는 것(하다못해 양부모나 영적 부모의 형태로라도)’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인간이 신을 닮을 수 있는(신으로서의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정확한 길은 부모가 되는 것이다. 남녀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버전만 생각해 보더라도 아버지 어머니를 빼놓을 수 없다. 아무리 대단한 커리어가 있어도 사랑으로 남을 돌볼 줄 모르는 사람에게서 우리는 어떤 거룩함(신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행복의 삶, 충만한 삶은 ‘나의 만족’이 아니라 사랑의 삶에 있다.

 

세상 모든 어버이들에게 존경과 축복을 전하며 소명의 여정에 있는 모든 이가 부디 사랑의 삶, 사랑 넘치는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남을 돌볼 줄 아는 내가 되는 꿈을 포기하지 않기를, 특히 우리 사회가 젊은이들의 그 꿈을 도울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부디 젊은이들이 미래를 그리고 꿈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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