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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구 칼럼] 어느 의사의 뇌물 일기

환자의 고들빼기, 고구마, 냉이
의사 이태석, 위대한 봉사 정신
경험한 바 없는 어느 막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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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왜 뇌물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 어느 날부터 지인들 카톡에 올라왔다. 처음에는 왜 이러는지 몰랐다. 의사 자랑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읽어가면서 궁금증이 풀렸다. 대개가 값싼 물건이다. 되팔아 봤자 큰돈 될 리 없다. 직접 캐고 다듬고 만든 것들이다. 안심 먹거리 표식이 있을 리 없다. 혼자 들고 나오기 민망한 것들이다. 병원 직원들 나눔 행사가 더 편하다. 값싼 뇌물, 손길 묻은 뇌물, 소소한 뇌물. 웃으며 읽게 되는 일기라는 게 이렇다.

 

-○월 ○일. 들기름이 들어왔다. 직접 키운 들깨로 짜셨단다. 화성 농촌 어르신이다. 버스를 두 번 갈아 타고 오셨다-. -○월○일. 오늘은 직접 캔 야생 냉이다. 강화도에서 비닐 봉투에 싸 오셨다-. 등장하는 뇌물 품목이 정말 다양하다. 직접 농사 지은 서리태, 직접 담근 고들빼기 김치, 방금 쪄 낸 고구마, 찐 달걀 한 판.... 친절하게 뇌물 내용을 분석한다. “수원도 애매하고 주변에 용인, 화성 등지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많아 뇌물이 참 다양합니다.”

 

일기에 ‘뇌물 받는 방법’도 안내돼 있다. “뇌물을 수령하는 사람들은 꼭 기록을 해두고 감사의 표시를 해야 추후에 또 가져옵디다...삼정의 문란 때 사또와 아전들은 그걸 잘 못해서리....” 익살까지 섞여서 읽는 재미가 있다. 이런 그를 주변에선 좋아한다. 능력 있는 시술로 소문도 났다. 환자를 편하게 해주기로 유명하다. ‘뇌물’ 못 받는 때가 오면 의사 그만 하겠단다. 집필 양해에 불편해한다. “이런 의사들 많아요. 이름 숨겨줘요.” ‘석 박사’다.

 

익명 필요 없는 성인(聖人). 81년 의과대학, 87년 의사고시다. 군의관까지 하고 신부가 됐다. 20년간 내전 중인 수단으로 갔다. 한센병 환자와 결핵 환자를 살폈다. 뭉개진 발가락을 위한 운동화를 선물했다. 더 오지를 찾아가 의료 봉사했다. 학교 짓고, 수학 가르치고, 음악도 가르쳤다. -예수님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것 같다(저서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

 

2008년 휴가차 귀국해서 검진을 받았다. 대장암 4기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 선고에 그가 말했다. “(수단) 톤즈에서 우물 파다 왔어요. 마저 다 해야 하는데....” 그렇게 떠난 그에게 바쳐진 선물이 있다. 47명의 제자 의료인이다. 그 중 토마스 타반 아콧이 증언했다. “신부님은 환자가 겁먹지 않도록 유쾌하게 진료를 보셨어요...환자들이 처음에는 굳은 얼굴로 들어왔는데, 나갈 때는 웃는 얼굴로 나갔습니다.” 신부로 살다 간 ‘이태석 의사’다.

 

그 정신이 모두에 이어졌다. 열린의사회가 세계를 찾아다닌다. 1997년 이래 매년 10~12회에 이른다. 몽골, 인도, 에티오피아, 필리핀, 네팔, 캄보디아, 레바논.... 병원·의대 단위 세계 봉사도 쉼 없다. 이게 K-의료다. 그 본질이 K-봉사에서 시작된다. 들기름 선물에 행복해하는 의사. 목숨 구하고 목숨을 내놓은 의사. 국경 너머 환자를 향하는 의사.... 이게 우리가 아는 의사의 모습이다. 뛰어난 머리만큼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한 의사의 언어는 놀랍다. “자기 애가 없으니 평생 소아과를 가본 적이 없을 것”, “왜 9수나 했는지 이해 간다. 하기야 나라도 머리에 든 건 없고 사고만 쳐대는 ‘성형○○’과 살려면 술 생각만 나겠다”. 의협회장에 당선됐다. 정치가 가미됐다. “(특정) 정당에 궤멸 수준의 타격을 줄 수 있는 선거 캠페인을 진행할 것이다”, “의협 손에 국회 20~30석 당락이 결정될 만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처음 본다. 우리 주변엔 아무리 봐도 그런 의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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