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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종 칼럼] ‘테러의 정치화’보다 더 큰 문제

이만종 칼럼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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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여야 간 협치는 멀어지고 ‘적’을 찾아내고 적의와 혐오를 고취시키는 것으로 정치가 대신 되고 있다. 야당 대표와 여당 의원에 대한 피습 사건이 테러 행위로 간주될 수 있는지가 최근 새로운 논란거리였다.

 

양당 모두 똑같은 피해자이지만 야당은 사건 축소와 왜곡 의혹을 제기하면서 대테러센터와 경찰청 등 관련 기관들에 대한 법적 조치에 나섰다. 야당 대표 피습 사건을 정치테러로 규정해야 한다는 공세다. 반면에 여당은 “테러로 정치장사하면 안 된다”고 일갈한다.

 

국민들은 ‘과연 어떤 주장이 맞을까’ 하고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어느 쪽을 더 옹호할 마음은 전혀 없지만 두 가지 이유에서 논란되는 주장들이 합리적 결론을 찾기를 기대한다.

 

첫째, 이번 피습 사건은 정치인이 대상이었지만 이를 테러행위로 의율(擬律)하기 위해서는 법규에 근거하지 않고는 통제할 현실적 방도가 없다는 점이다. 적용하는 근거법이 없이 피해자가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테러범으로 규정하는 것은 법의 명확성 원칙 측면에서 어긋난다.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은 테러와 테러단체 개념을 제2조에서 정의하고 있다. 이에 근거하면 두 사건 모두는 일반적 인식과는 다르게 테러범 적용보다는 폭력행위에 해당되는 형사범죄로 처리될 사항이다.

 

일본의 아베 총리 암살범은 살인죄, 기시다 총리 피의자는 ‘위력업무방해’가 법 적용의 대표적 사례다. 법은 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지만 정의는 실정법의 가치척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법철학에서 강조하는 ‘라드브루흐 공식’이다.

 

둘째, 테러행위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이번 피습 사건들을 단순히 ‘정적 제거를 위한 정치테러’로 끌어내는 데는 동의할 수 없다.

 

실제로 테러행위는 범인의 정치적 주체성에 기반하기도 하지만 자생 테러 같은 1인 테러는 오히려 범죄자의 개인적 일탈과 사회적 분위기에 경도돼 발생하고 있는 게 최근 테러의 통계가 보여주는 경향이다.

 

1981년 레이건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한 저격범은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 암살 시도 이유였다. 일본의 정치인 테러와 박근혜 대통령 커터 칼 피습 사건 역시 범행 동기는 자기 과시욕이 주요 이유였다. 비록 투사의 이미지를 내세우지만 모두가 비슷한 공통점이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다. 그중 총선을 앞둔 한국이 제일 걱정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틀어진 개인의 가치관과 욕망이 요란한 사회 속에서 학습되고 전염돼 언제든지 뜻하지 않은 괴물이 나올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진실과 거짓,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 사실을 판단하는 개개인의 ‘상식력’이 후퇴하는 조짐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진실 공방은 잦아졌지만 정작 구체적 타당성을 갖춘 결론을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예전의 정치가 아니라 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빙판 같은 정치’다.

 

굳이 한 가지 기대되는 것은 계속된 개정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던 테러방지법의 문제 조항이 이번 논쟁을 계기로 재정비되고 발전적 방향으로 개선된다면 다행일 수 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필요다. ‘적’만 만드는 ‘정치의 테러화’가 음모론을 부추기는 ‘테러의 정치화’가 된다면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범죄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테러’를 특정하지 못한 채 복잡다단해지는 테러 위협에 적시성 있게 대응하지 못하는 부실한 ‘테러방지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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