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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최고의 난공사는 어디일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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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공사와 일이 대규모인 공사는 질과 양의 문제다.

화성에서 보이지 않는 땅속 공사 중 가장 어려운 공사는 어디일까?

220여년 전 땅속 공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까지 기록한 화성성역의궤에서 찾아냈다.

 

화성 성역에서 땅속 공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곳은 어디였을까?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화성 성역에서 어떤 어려운 공사가 있었을까 살펴보도록 한다. 시설물을 보면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어려운 공사, 쉬운 공사를 판단할 수 있다. 대체로 규모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규모로 보자면 장안문, 팔달문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규모가 커도 손쉬운 공사가 있고 작아도 까다로운 공사가 있다. 공사란 원래 보이지 않는 부분에 어려움이 많이 도사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어려웠을 공사는 어디였을까 찾아보도록 하자.

 

성역이 아주 오래전이었고, 보이지 않는 지하의 상태를 어찌 판단할 수 있을까? 눈여겨보지 않는 기록에서 캐보자. 보이지 않는 곳에 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니 참으로 놀랍다. 권수 도설 중 ‘토품(土品)’편이다. 토품은 ‘성터’와 ‘시설물터’로 나눈 후 ‘지형’과 ‘토질’의 상태로 공사를 설명한 기록이다. 지형에서는 꺼지거나 솟아오른 외형을 메우고 잘라내는 작업에 대해 언급했다. 토질에서는 연약지반, 지하수 등 땅속의 상태에 대한 작업을 기록했다.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 터 만들기 공사는 최고의 난공사였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언급된 여러 지역 중 지형과 토질로 나눠 가장 어려웠던 곳을 각각 한 곳씩 선정해 본다. 먼저 지형으로 인해 가장 어려운 공사를 한 지역은 어디일까? 서장대가 세워진 팔달산 정상이다. 당시 서장대 터는 의궤에 “자갈밭인 데다 그 지세가 동북으로 비탈이 졌으면서도 웅장하고 높은데, 대 아래는 한쪽으로 치우치고 좁다”라고 기록돼 있다. 이처럼 당시 팔달산 정상은 암반으로 들쑥날쑥했고 주변은 급경사지였다.

 

이런 지형에 서노대, 서장대, 후당을 세우고 행사에 쓸 평평하고 너른 공간을 마련해야 했다. 따라서 규모도 크고 매우 위험한 보축공사를 해야만 했다. 급경사지에 돌을 쌓고 흙을 보태며, 모래주머니를 말뚝으로 고정시켜 산마루와 가지런하게 올려 쌓는 방법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공사 규모는 높이가 거의 3장이고 넓이는 사방 70보다. 3장은 약 10m 높이이고 사방 70보는 면적으로 2천평(6천611㎡)에 달한다. 급경사 비탈진 산꼭대기를 감안하면 큰 규모다. 위치도 팔달산 정상이라 필요한 자재를 산 중턱이나 하천에서 채취해 정상으로 옮겨와야 했다. 정상 인근은 모두 돌로 된 지형이라 보축에 필요한 흙과 모래는 구할 수 없었다.

 

팔달산 정상 서장대터는 산꼭대기라서 필요한 자재의 운반, 깎아지른 지형의 위험성, 장마철 공사로 인한 토사 유실 등에 대비해 여러 조치를 한 곳이다. 서장대터를 지형으로 인한 최대의 난공사 지역으로 선정했다.

 

화홍문은 수중 공사뿐만 아니라 기초가 패지 않도록 박석을 깐 어려운 공사였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다음으로 토질로 인해 가장 어려운 공사를 한 곳은 어디일까? 공동 1위로 남문, 남수문, 북수문터다.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모두 물과 싸우며 공사를 한 곳이다. 북수문과 남수문은 물이 흐르는 큰 내 안에서 공사를 했다. 공사 규모는 동서로 38보, 남북으로 51보를 파내어 다듬고 깊이 14척을 파고, 모래에 진흙을 섞어 다진 후 벽돌을 이중으로 까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리의 안팎 넓은 범위까지 고기 비늘 모양으로 박석을 깔고 그 끝에 긴 돌을 물려 굳혔다. 흐르는 물에 기초가 패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남문은 평지인데 왜 물속에서 공사했다고 했는지 궁금할 것이다. 남문인 팔달문터는 북문처럼 땅을 5척쯤 파 내려갔는데 지하수가 엄청나게 솟아나기 시작했다. 지하수맥 자리인 것이다. 공사를 위해 물을 모두 퍼내고, 땅을 더 파내고 벽돌과 모래로 바꿔야 했다. 의궤에 “여럿이 두레박으로 번갈아 퍼냈더니 나흘 만에야 겨우 잦아서 다시 9척을 파 내려갔다”는 기록이 있다. 땅을 판 깊이가 모두 합해 14척이었다.

 

남문, 남수문, 북수문터는 큰 하천 가운데와 지하수가 분출하는 곳으로 물을 제어하고, 깊이 파고, 연약한 흙을 파내어 좋은 흙과 벽돌로 바꾸고, 흐르는 물에 기초가 패지 않도록 조치를 한 곳이다. 화홍문, 남수문, 팔달문을 토질로 인한 가장 최대의 난공사 지역으로 선정했다.

 

용도와 서남암문에서 남포루까지는 지반이 암반으로 가장 쉬운 구간이다. 이강웅 고건축가 제공

 

이상으로 마치고 몇 가지 재미있는 자료를 추가해 본다. 가장 쉬운 공사를 한 곳은 용도 구간과 서남암문에서 남포루까지의 산상서성 구간이다. 이 구간은 의궤에 “흙을 겨우 2척 정도 긁어내면 바로 암반이 나와 땅을 팔 필요도 없었고 캐낸 돌은 그 자리에서 다듬어 사용해 일석이조의 효과도 봤다”고 쉬운 지역임을 표현하고 있다.

 

가장 넓은 공사를 한 곳은 동장대 훈련장이다. 크기는 동서 180보에 남북 240보로 무려 1만8천평(5만9천500㎡)에 이른다. 훈련장을 관리하는 동장대터의 무려 20배 규모다. 배보다 배꼽이 큰 형국이다. 가장 적은 공사비가 투입된 곳은 포사다. 두 곳 합계가 350냥으로 기록돼 있다. 반면 가장 공사비가 많이 투입된 곳은 팔달문으로 5만8천냥이 들었다. 포사 300채를 짓는 공사비가 든 셈이다.

 

오늘은 화성에서 어려운 공사를 한 곳에 대해 살펴봤다. 이 정도 까다로움이면 화성 전체는 대체로 공사하기에 무난한 지형과 토질을 갖춘 곳이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화성은 방어하기에도, 공사하는 데도 모두 합당한 성터로 평가할 수 있다. 까다로운 공사 지역과 그 규모를 살펴보며 정조의 탁월한 ‘터 잡기’ 안목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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