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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종 칼럼] 정치인의 언어가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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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명예교수

요즘 사방에서 ‘정치인의 가벼움’을 본다. 우리 정치인의 언어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말의 성찬’이지만 정작 마음을 움직이는 깊은 말은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생각이 정치적 언어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 중 하나인지 모르지만 정치적 욕망은 폭주하나 점점 언어는 거칠고 자극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최근의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에서 보여주고 있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혀를 차게 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할 정도로 정치인들의 언어는 지나치게 저급하고 퇴행적으로 변했다.

 

물론 여야 간 벌어지는 정치적 산술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혐오가 비판을 대체하고, 조롱과 경멸이 대안 모색을 대신하는 것은 특정 정당의 지지나 정치적 관심 여부와는 관계없이 또 다른 문제다. 마이크가 켜져 있는 생중계 상황에서 거침없이 난무하는 고성과 막말은 어둡고 처연하다.

 

정치는 국민 곁에 존재하는 가능성의 싹을 포착해 새로운 미래의 꿈을 제시해야 하는 과업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절박한 문제들을 생각하면 현재 벌어지는 상황은 의식 없는 일부 정치인들의 무사유(無思惟)적 언행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이것이 정의로 포장돼 국민들을 기만하고 경박한 언론과 포털 사이트가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는 것은 더욱 오싹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대다수 국민은 선을 넘는 정치의 퇴행성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극렬 지지자들에게만 호쾌하고 강단 있게 보이려는 정치인들의 무절제한 언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적’을 만들기에만 동원되는 언어는 비록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해도 그냥 말이 아니라 찌르고 덮치고 난도질하는 정서적 충격이다.

 

실제로 품행이 정치 변동의 중요한 요소가 됐던 사례를 되짚어봐도 모두가 언어의 품격이 문제였다. 정치인의 비공식 대화가 여야 간 정쟁의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입에 담지 못하는 ‘욕설’ 파문도 깊이 생각해 볼 만한 중요한 논란이었다. 국민은 이제 더는 흥분하고 정제되지 않은 언행을 듣거나 보는 것이 힘겹다.

 

고대 아테네 정치는 선동가들의 천국이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산파술’은 소피스트들의 웅변보다 오히려 침묵의 가치를 강조했다. 아마 그 시절 그는 분명히 말하는 시간보다 침묵하는 시간이 더 길었을 것이다.

 

강렬한 언어는 때때로 정치적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 수 있지만 ‘포퓰리즘’으로 점철된 우리 사회도 기품 있는 침묵의 정치가 필요하다. 더 좋은 정책 대안을 찾기 위한 협력과 상생만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비전을 구현할 ‘대전환’을 견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의 일상은 정치가 아니어도 지나치게 힘들고 어렵다. 최근 이스라엘-하마스전쟁도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반면교사적 사례다. 국민의 마음 속에 새로운 덕성과 영혼을 창조하지 못하고 정권 수복과 지지율 역전에만 집중하는 낡은 관성의 정치 역시 더 이상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힘들다. 결국 사유 없는 정의와 투쟁은 모두에게 폭망이다.

 

한국 사회가 진정 부유한 강국이 되고 민주주의가 파도 치는 나라를 소망한다면 무책임한 선동과 저속하고 자극적인 언어 사용이 그치고 국민의 눈살을 펴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세워온 국격을 사나운 언어로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그리 쉽지만은 않은 공부지만 언어의 과잉을 경계하고 제어하기 위한 성찰이 필요하다.

 

더 이상 정치인이 ‘뿔 달린 동물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로 보이지 않기를 바란다. 미래의 정치를 하려는 초보이든, 때 묻은 정치가이든 모두에게 말하고 싶은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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