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박 사이트

[이만종 칼럼] 죄는 있지만 벌이 없는 세상

카지노 도박 사이트

image
이만종 한국테러학회장·호원대 명예교수

“세상은 실제로 악을 행하는 사람들보다 악을 용인하거나 고무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위험하다.” 아인슈타인이 첼로 연주자 파블로 카잘스에게 바친 헌사다. 얼마 전 책 속에서 이 글을 읽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다 현재 이 나라의 준법 상황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있겠는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실 아인슈타인은 질량을 빛의 속도와 연결시킨 물리학자일뿐만 아니라 인권과 정의에 대한 열렬한 옹호자였다. 법과 정의에 대한 생각을 자주 표현했으며 “정의는 집에서 시작된다”는 유명한 말도 했다.

 

아마 그는 법과 정의가 인간의 삶과 사회의 안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으며, 이러한 철학적인 가치를 반영해 그런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말은 요즘처럼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험악하고 부당한 일들을 방관하지 않고 올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 역사를 진보시킨다는 의미로도 읽혔다.

 

지난 여름 이후 걱정되는 뉴스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건 신림동과 서현동 등에서 발생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잇따른 범죄와 관련된 뉴스였다. 극단적 행위도 놀랐지만 뒤이어 발생한 온라인상 살인 예고와 각종 커뮤니티 댓글난에 쏟아진 혐오 발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그것이 자신의 감정적인 스트레스를 해소할 정서적 방출 행위일지 모르지만 어떻게 엄청난 사건으로 지울 수 없는 아픔이 있는 피해자를 조롱하는 비윤리적 인간성이 가능한지 놀랄 뿐이었다.

 

정치 역시 예외는 아니다. 새 정부 이래 국회는 방탄 국회로 공전 중이다. 민생은 뒷전이고 입법 교착과 폭주는 일상화된 지 오래다. 각종 범죄 혐의를 받는 다수 의원은 불체포 특권 뒤에 숨어 있다.

 

이처럼 지금 우리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갈수록 국가의 법질서가 무시되고 각자도생의 기형적 분위기로 번져 가는 형국이다.

 

그래서 최근 거론되는 가석방 없는 종신형제도 도입과 사형제 부활, 살인 예고 사건의 엄정 대응에 관한 언급은 강력범죄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결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법과 공권력이 지나치게 무력해진 것 같다는 대다수의 생각을 고려할 때는 전혀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마저 든다.

 

물론 현실의 법체계가 도덕률이 아닌 이상 죄를 눈감아 줄 수는 없기 때문에 옳은 일은 보호하고, 그른 일은 단죄하는 것이 법이 추구해야 할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죄가 있는 곳에 반드시 벌이 있어야 한다’는 법의 적용은 누가 뭐라 해도 당연하다.

 

그러나 과거보다 법망이 팽창해 가더라도 법과 도덕적 공황 현상이 국가 전반에 만연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현대 사회에서 법치와 정의는 중요하다. 이러한 가치들이 흔들리고 약화되면 우리 일상의 평화와 안전은 무너지며 험악한 사건과 부당한 행위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우리들이 갈망하는 것은 어느 한쪽만 이겨 환호하지 않는 정의가 살아있는 좋은 사회다. 더 이상 최소한의 인권을 지켜 주는 법치가 힘의 논리로 관철되고, 사실에 어긋나는 주장이 진실처럼 기만되는 사회는 암울하고 살 만한 곳이 아니다.

 

이제 “누구도 법 위에 설 수 없다”는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너무 많은 고소고발과 난무하는 무법적 폭력을 막아내고, 모든 것이 상식선 안에서 공존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사회 안정의 근간인 정치 역시 ‘불편부당(不偏不黨)’의 정의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 경기일보(committingcarbicide.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