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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 위에서] 마음에 쏙 들었던 ‘안티과’서 온기를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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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맞아 꽃과 모래로 시민들이 만드는 색색의 그림. 김남희 여행작가

 

지난 3월에는 코스타리카와 과테말라에서 한 달을 보냈다. 두 나라 모두 커피가 여행의 큰 즐거움이었다. 커피 벨트에 속한 나라들이어서 어디에서나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어제까지는 코스타리카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늘부터는 과테말라에서 커피를 마시다니 이 얼마나 복 받은 인생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과테말라의 첫 도시 안티과로 넘어갔다. 안티과는 종종 여행자들이 남미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을로 꼽는 곳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남미 여행을 위한 스페인어 공부를 하며 몇 주씩 체류하는 배낭 여행자도 많다. 도시에 들어서는 순간,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 마음에도 쏙 드는 도시였으니.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조건은 대략 이렇다. 중심지가 걸어다닐 수 있는 규모인 곳. 시야를 어지럽히는 고층 건물이 없는 곳. 고유의 문화가 살아있어 특색이 있는 곳. 분위기 좋은 카페나 맛있는 식당이 몇 개는 있는 곳. 주변에 큰 산이 있어 트레킹 전후 베이스캠프로 삼기 좋은 곳. 안티과가 딱 그런 곳이었다. 분홍, 연두, 하늘색 같은 파스텔톤으로 칠한 단층 건물이 검은 포석이 깔린 골목마다 이어졌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교회의 종탑 정도.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의 치마에 앞치마를 두르고 중절모를 쓴 여성들이 골목을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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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기리며 진행되는 안티과의 가톨릭 의식. 김남희 여행작가

 

지금은 인구가 3만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지만 안티과는 250년간 과테말라의 수도였다. 1773년의 대지진으로 처참하게 파괴되는 바람에 수도의 역할을 넘겨야 했다. 덕분에 작은 마을 곳곳에 바로크 양식의 교회와 수도원, 대학 등 옛 건물이 남아 있었다.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스타벅스와 맥도널드조차 깜짝 놀랄 만큼 근사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연기를 내뿜는 화산의 이마가 어디에나 보였다. 광장 주변에는 고운 보라색 꽃을 화려하게 피워낸 자카린다 나무가 가득했다. 날씨는 매일 쾌청했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계절이었다. 중심가에서 걸어서 10분쯤 걸리는 곳에 방을 얻어 머물며 매일 골목을 돌아다녔다. 구글 맵을 뒤적여 커피가 맛있다는 카페를 하루에 하나씩 찾아다녔다. 여기가 어딘가. 해발고도 1500m의 비옥한 화산토, 작은 일교차에 활화산이 내뿜는 연기를 맡으며 자란 커피가 훈연한 듯한 맛을 내는 ‘과테말라 안티과 커피’의 고향. 산미를 좋아하는 내 취향이 아니라며 한국에서는 외면했는데 이곳에서 마시는 안티과 커피는 적절한 산미에 균형 잡힌 맛을 지니고 있었다. 정원의 그늘진 테이블에 앉아 싱그러운 커피 향에 취하고 있으면 격렬히 게을러지고 싶었다. 생산적인 일과는 담을 쌓은 채 동네나 어슬렁거리며 온갖 일에 참견하는 한량이 되고 싶을 뿐이었다.

 

부활절을 앞둔 안티과에서는 3월 첫 주부터 일요일마다 성상을 들고 행진하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거기에 더해 집이나 가게 앞을 색색의 꽃과 모래로 장식하는 일로 다들 바빴다. 나는 매일 은퇴한 노인처럼 그늘에 앉아 그들이 모래나 식물로 그림을 만드는 광경을 지켜보곤 했다. 1시간 거리의 수도 과테말라시티는 온갖 위험이 도사린 곳이라는데 이 마을은 어찌나 평화로워 보이는지 딴 세상 같았다. 남들 다 가는 화산 트레킹도 귀찮다는 이유로 포기한 나는 한량 흉내를 내며 매일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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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이었던 시대의 골동품으로 장식된 호텔 공간. 김남희 여행작가

 

그러던 어느 날, 구글 맵을 뒤적이다 보니 박물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느릿느릿 골목을 걸어 별 기대도 하지 않고 찾아갔다. 박물관은 곧 호텔이기도 했다. 호텔 정원을 둘러보는 데 돈을 내야 한다니, 처음에 솟았던 거부감이 문을 들어선 순간 슬그머니 사라졌다. 지금껏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호텔이 눈앞에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수도원 중 하나였던 이곳이 1773년의 지진으로 폐허가 됐다. 무너지고 버려진 돌무덤만 솟아있던 수도원을 1989년부터 리모델링했고 지금은 6개의 박물관과 2개의 아트 갤러리를 갖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정원 전체가 유적이고 박물관이며 예술작품이었다. 복원된 수도원의 예배당도, 회랑도, 부엌이나 묘지도 새로 지은 호텔과 이질감 없이 어울렸다. 모든 모서리 하나까지 세련된 감각으로 세심하게 꾸며져 있었다.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며 외부인에게 개방된 모든 공간을 샅샅이 둘러봤다. 투숙객만 갈 수 있는 공간 앞에서는 한숨을 쉬고 돌아섰다. 하룻밤 잘까 싶어 알아보니 저예산 장기 여행자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었다. 정신 차리자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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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 여행작가

며칠 후 나는 호텔을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투숙객으로서였다. 문턱 높은 호텔답게 체크인은 정각 3시부터. 방에 짐을 풀자마자 스파로 직행했다. 40도 온도의 자쿠지에 몸을 담그니 그간의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피로를 푼 후에는 투숙객에게만 개방된 공간을 꼼꼼히 둘러봤다. 복도에도, 방에도, 작은 중정에도 지역 예술가의 조각이나 그림이 걸려 있었다. 통로에 아무렇지 않게 놓인 조각들은 죄다 300~400년 전 작품이었다. 거대한 갤러리에 들어온 것 같아 시간이 흘러가는 속도가 야속할 정도였다. 이렇게 개성적이고 아름다운 호텔이라니 놀라울 뿐이었다.

 

그날 호텔에 머물게 된 건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간 큰 사람이 못 되기에. 제주의 지인 K님이 하룻밤 숙박비를 보내오셨다. 1년째 어머니 간호에 몸과 마음 전부를 쏟고 있는 상황인데 작은 경험을 선물하고 싶다며 마음을 건네주셨다. 호텔에 머물던 그 밤, 나는 전국 장애인 부모 연대에 호텔비만큼을 보냈다. 뜻밖의 선물을 받았으니 나도 작은 나눔을 돌려드리고 싶었다. 며칠 전에 읽었던 시한부 판정을 받은 김미하님 사연이 계속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발달장애인 남매를 둔 김미하님은 유방암 4기인데 남겨질 남매의 돌봄 서비스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분의 손을 이렇게라도 잡아 드리고 싶었다. 나처럼 당신도 혼자가 아니라고 속삭여 드리고 싶었다.

 

다정한 이들 덕분에 나는 팔자에도 없는 5성 호텔에 와서 장작 난로를 지핀 방에서 초가을의 ‘불멍’을 즐기는 호사를 누렸다. 창밖 분수대에서 흘러내리던 물소리는 밤이 깊어지니 조금씩 잦아들었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난 새벽, 정원으로 나갔다. 외부인이 없는 이른 아침의 호텔 정원은 부지런한 새들 차지였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나무의 우듬지마다 새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수백년 세월에도, 강력한 지진에도 살아남은 대리석 기둥에 손을 대 봤다. 뜻밖에도 돌은 차갑지 않았다. 희미한 온기마저 느껴졌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온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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