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박 사이트

[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40. 시흥 '소전미술관'

여기 미술관 맞아?… 아름다운 정원과 도자기의 만남

카지노 도박 사이트

기획전시실에서는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미술관에서 가져온 세계의 도예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상상을 따르는 주전자 특별전’을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가을의 끝자락인데도 산 빛이 여전히 푸르다. 시흥은 물론 인천과 부천시민들도 즐겨 찾는다는 소래산 자락에 자리 잡은 소전미술관(이사장 이동섭)의 아늑한 풍경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미술관을 둘러싼 철로 된 야트막한 담장도 경계는 짓되 안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소전미술관은 극동그룹 창업주이자 장학 사업을 위해 (재)소전재단을 설립한 故 소전(素田) 김용산(1922~2007) 회장이 평생 모은 도자기를 비롯한 고미술품과 조각, 회화를 기반으로 1996년 5월에 개관한 사립미술관이다.

'평생 즐기고 모아온 우리 고미술품들을 사회에 환원키로 작심했다. 보잘 것 없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것들이다' 라고 설립자가 생전에 남긴 이 말 속에 소전미술관이 추구하는 정신이 담겨 있다. 내가 가진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누고 함께 즐기려는 ‘동락(同樂)’의 마음이다. 미술관이 자리 잡은 대야동은 설립자 김용산 회장이 나고 자란 곳이다.

노년에 은퇴하면 살 생각으로 지은 별장을 미술관으로 개조했기 때문일까, 미술관에 들어서면 집처럼 편안한 기운이 느껴진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한동안 문을 닫았던 미술관은 2019년 6월 이동섭 이사장이 취임하면서 '어렵더라도 문을 열어야 한다'는 이사회의 뜻을 모아 1년 동안 준비하여 지난해 5월, 다시 문을 열었다.

닫혀 있던 미술관 문을 열면서 어떤 다짐을 했을까? 매주 금요일마다 미술관을 찾아와 정원 가꾸기를 비롯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한다는 이동섭 이사장이 홈페이지를 통해 전하는 인사말이 따뜻하다.

“소수의, 가진 자의 미술관에서 시민의, 시민을 위한 미술관이 되겠습니다. 처음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산다는 것은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소전미술관은 처음처럼 여러분 앞에 다가가겠습니다.”

■ 도자기에 담겨있는 멋과 풍류

너른 정원이 일품이다. 이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기 위해 미술관 식구들이 여름 내내 많은 땀을 흘렸으리라. 미술관 마당에서 세계적인 조각 작품을 만나는 뜻밖의 기쁨을 맛본다.

마당가에 서 있는 ‘엄지손가락’은 1960년대 프랑스 누보레알리즘을 이끌었던 세자르 발다치니(1921~1998)의 작품이다. 어린 날 자주 보았던 낯익은 풍경이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른 여인상 앞으로 다가간다. 오른손으로 어린아이를 안고 왼손으로는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잡고 있는 여인을 표현한 ‘고귀한 짐’은 로댕과 함께 ‘조각의 거장’으로 불리는 에밀 앙투안 부르델(1861~1929)의 작품이다. ‘활 쏘는 헤라클레스’로 우리에게 친숙한 부르델의 조각은 미술관 안에도 한 점 더 있다.

‘생각하는 베토벤’은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 ‘운명’과 ‘영웅’ 같은 위대한 작품을 창작한 베토벤에 대한 작가의 흠모와 존경심이 가득 담긴 작품이다. 베토벤의 음악을 들으며 베토벤을 조각하는 대가의 모습을 그려본다. 평화로운 동산으로 데려줄 것 같은 늘씬한 두 마리의 ‘말’은 여의도 한화생명빌딩의 ‘물고기’를 제작한 유리 공예가 심현지의 작품이다. 조각과 수석으로 단장한 정원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해 미술관에 들어가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흡족하다.

“고요해서 좋다고 해요.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죠. 미술관 곁에 소래산 삼림욕장 옆에 있거든요. 삼림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어, 미술관이 있네’하며 들어오는 분들도 있어요.” 안예진 학예연구실장이 소전미술관의 독특한 분위기를 재미나게 들려준다.

1층 1전시실에서 특별기획전 ‘상상을 따르는 주전자’가 열리고 있다. 현대적 감각이 풍만한 작품과 마주한다. 스웨덴 출신의 작가 죠스타 그라스(1938~)의 ‘샤먼을 위한 찻주전자’는 제목만큼이나 주전자의 모양과 색깔과 디자인이 독특하다. 인체를 닮은 부드러운 곡선과 푸른 색감이 조화를 이룬 ‘파란 불의 찻주전자’는 독일 작가 베아타 쿤의 작품이다. 잠시만 바라봐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부드러운 선과 차분한 색이 전하는 힘이 아닐까.

특별전에서 만나는 외국 작가들의 작품에서 받는 자유로운 정신을 우리의 옛 도자기에서도 찾을 수 있을까? 푸른 바탕에 수양버들과 갈대가 실바람에 춤춘다. ‘청자 버드나무 무늬 병 모양 주전자’에서 번지는 푸른빛과 부드럽게 흐르는 선에서 고려인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예술 정신을 만난다. 고려청자의 푸른 빛깔과 조선백자의 단아한 자태는 한국미의 극치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분청사기에 마음이 더 끌리는 것을 무슨 까닭일까? 분청사기는 들여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그릇이다. 대범한 선과 담백한 색깔로 관람객의 눈길을 한꺼번에 사로잡는 ‘분청사기 모란무늬 편병’ 앞에 선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도자기의 수요와 공급이 크게 늘어납니다. 이때 탄생한 것이 분청사기인데, 그동안 분청사기는 청자나 백자에 비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지요.

그러나 분청사기는 청자나 백자보다 훨씬 자유롭고 재미있습니다. 고정된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운 개성을 표출한 작품들이 많아요. 요즘 해외 경매에서는 재미있는 작품이 각광을 받습니다.”

안 실장의 설명을 들으며 분청사기에 담긴 장인들의 분방한 예술 감각에 감탄한다. 상감, 인화, 박지, 음각, 철화, 귀얄, 덤벙이라는 일곱 가지 기법이 있다는 사실도 놀랍다. 상감은 그릇에 무늬를 그린 뒤 무늬 부분을 긁어내고 이곳에 백토나 자토를 넣어 유약을 발라 굽는 기법이다. 인화는 꽃 모양의 도장을 찍어 오목한 부분에 백토를 넣는 기법이며, 박지는 백토를 발라 무늬를 그리고 무늬를 뺀 나머지 백토를 긁어내는 기법이다. 음각은 백토를 바른 뒤에 선으로 새기는 기법이고, 철화는 백토를 바르고 철분이 많은 안료를 묻힌 붓으로 무늬를 그리는 기법이다. 귀얄은 풀비에 백토를 묻혀 표면에 바르는 기법인데 생동감이 넘친다. 덤벙은 그릇을 백토물에 담가 분장하는 단순한 기법이다.

 2. 소전미술관은 소전재단 이사장이었던 故 김용산 회장의 도자기컬렉션을 기반으로 1994년 서울시 종로구에 전시되어 오다가 1996년 시흥시 대야동으로 이전하여 개관됐다. 사진은 소전미술관 전경. 3. 미술관 한편 자리한 꽃집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꽃을 만날 수 있다. 4. 원래 별장으로 사용될 예정이던 건물이기에 수려한 자연 속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윤원규기자

■ 문화예술이 가진 즐거움과 고고함을 전달하는 미술관

소전미술관은 미술자료실도 갖추고 있다. 시민들에게 개방한다는 자료실을 둘러보며 놀란다.

“우리 미술관에는 1만권의 책이 있어요. 미술관을 만들 무렵에는 도서관을 꾸밀 계획이었는데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그 시대 도록에 멈춰 있지만, 희귀하고 소중한 자료들이 많아요. 지금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있습니다. 참, 이 공간에서 인문학 동아리 활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미술관 기획과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안 실장은 학부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공부한 전문기획자다.

“소전미술관이 첫 직장이었어요. 2004년 봄날, 큐레이터를 뽑는다는 광고를 보고 면접을 찾았는데 마당에 핀 벚꽃이 너무 예뻤어요. 이곳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 뽑혔지요. 당시에는 상설전시실만 있었습니다. 이후 한국수자원공사 박물관,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유민미술관의 개관 큐레이터로 일했어요. 재개관을 준비하면서 소전에서 일했던 저를 떠올렸던 것이지요.”

소전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만큼 애착도 각별하다는 안 실장은 2019년 10월부터 다시 근무하게 된다. 그는 소전미술관이 문화예술의 즐거움과 예술이 갖는 고고함을 동시에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접점을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시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마음, 문턱을 낮추고 재미와 교양을 갖춘 기획으로 시민들을 미술관으로 불러들이려는 소전미술관의 생각이 멋지다. 3천원이던 입장료를 1천원으로 낮춘 것도 이런 뜻을 담은 것이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 경기일보(committingcarbicide.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