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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세상, Today] 당신을 지켜보는 불편한 시선, 불법촬영

다섯 번째 이야기 : 몰래카메라,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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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 그래픽. 경기일보DB
불법촬영 그래픽. 경기일보DB

예상치 못한 순간, 누군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과거 예능 프로그램에서 누군가를 깜짝 놀래키는 장난으로 여겨졌던 ‘몰래카메라’는 이제 명백하게 범죄를 가리키는 용어가 됐다. 공공기관은 물론 초등학교에서까지 불법촬영 범죄가 발생하며 더 이상 여성들이 안심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는 한탄까지 나온다. 경찰에서 단속을 벌이거나 지자체마다 점검에 나서지만,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든 불법촬영을 막기엔 역부족인 상황. 경기일보는 ‘몰카 범죄’의 전말을 파헤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1. 당신이 안심할 수 있는 공간, 없다


얼마나 쉽길래 해마다 5천건 안팎의 불법촬영 범죄가 발생하는 건지, 경기일보 취재진은 직접 ‘몰카범’이 돼 보기로 했다.

17일 낮 서울 용산구의 전자상가. 수도권 주민들이 찾는 전자제품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이곳에선 여기저기 ‘몰래카메라’라고 적힌 표지들이 쉽게 눈에 띄었다. 촬영장비를 판매하는 한 상인에게 작은 카메라도 파는지 묻자 그는 익숙하다는 듯 몰카를 찾느냐고 되물었다. 이내 진열대 밑에서 초소형카메라를 종류별로 꺼내놨다.

볼펜부터 라이터, 차키, USB, 보조배터리, 안경 등 셀 수 없이 다양한 ‘모형’ 속엔 2㎜ 남짓한 렌즈가 숨어 있었다. 가격은 화질이 떨어지는 7만~8만원에서 초고화질을 자랑한다는 40만원대까지 천차만별. 상인들은 ‘몰카’를 찾는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대신 탐지기를 통과한 제품이라는 설명을 자랑스레 덧붙였다.

“아, 절대 안 걸린다니까요”

10곳 이상의 판매업체를 돌아다닌 끝에 14만원짜리 ‘라이터형 몰카’를 구매했다. 제품을 추천하던 상인에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겠는지 묻자 그는 “주방에서 과일 깎던 칼을 사람한테 휘둘러야 흉기”라며 “까놓고 말해서 안 걸리면 그만 아닙니까”라고 속삭였다. 결국 범행도구로 쓰여도 판매자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단 말이었다.

 

17일 서울 용산구의 한 전자상가에서 촬영장비를 판매하는 업체들이 몰래카메라를 판매한다는 문구를 내걸고 있다. 장희준기자

취재진은 이렇게 산 카메라를 수원시의 협조를 얻어 한 공원 여자화장실에 설치했다. 어느 교장이 그러했듯 휴지갑에 렌즈 구멍을 뚫어 초소형카메라를 숨겼고, 스마트폰 공기계는 휴지걸이 안에 부착했다. 이후 공원 관리인 입회하에 출입을 통제하고 일반인 여성들이 화장실을 드나들며 ‘몰카’를 찾아낼 수 있는지 간단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 참여했던 대학생 안효민씨(24ㆍ여)는 휴지걸이 속 렌즈와 눈이 마주쳤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털어놨다. 안씨는 “공중화장실에선 휴지로 모든 구멍을 막은 뒤에야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며 “피해를 당한 적이 없는데도 자취방 화장실 타일 사이 구멍까지 매니큐어로 칠할 만큼 불안하다”고 한숨지었다.

끝내 휴지갑 속 카메라를 찾아내지 못한 대학생 이민주씨(24ㆍ여)는 이쑤시개로 낸 작은 구멍을 보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씨는 “불법촬영에 대한 뉴스를 볼 때마다 남의 일 같지 않아 야외화장실 이용을 꺼리게 된다”며 “초소형카메라를 산 모든 이를 범죄자로 취급할 순 없겠지만, 범죄를 저질렀을 땐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실험 참가자는 경찰과 지자체에서 사용하는 탐지장비까지 모두 동원했지만, 몰카를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두 여성은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믿을 구석이라곤 ‘여성안심구역’이라 적힌 스티커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경찰의 단속에도 안심할 수 없는 몰카 공화국, 이곳에 사는 여성들은 오늘도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13일 오후 수원시 밤밭청개구리공원 여자화장실에서 대학생들이 몰래카메라 탐지기로 숨겨져 있는 카메라를 찾고 있다. 윤원규기자 <br>
17일 오후 수원시의 한 공원 여자화장실에서 대학생들이 몰래카메라 탐지기로 숨겨져 있는 카메라를 찾고 있다. 윤원규기자 

#2. “몰카 사고파는 유일한 국가, 대한민국”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여성권리국 공동디렉터를 맡고 있는 헤더 바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공중화장실이나 여자 탈의실에 대한 ‘몰카’가 유행하는 건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고 질타했다. 또 이런 촬영물을 판매하는 시장이 있는 것도 한국뿐이라고 강조했다. HRW는 한국의 디지털성범죄를 주제로 ‘내 인생은 당신의 포르노가 아니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는데, 이를 통해 한국 정부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 촬영물 삭제에만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만 끊이지 않는다는 몰카, 법은 제대로 심판하고 있나.

■연평균 5천523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몰카

경찰청과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불법촬영 범죄는 최근 3년간 1만6천570건 발생했다.

전국으로 보면 소폭 줄어드는 양상이 나타났지만, 이를 경기남부로 좁히면 2018년 1천117건, 2019년 1천47건, 2020년 1천201건으로 되레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경기남부지역 공중화장실에서 발생한 불법촬영은 해당 기간 405건으로, 해마다 전체 몰카 범죄의 12% 안팎을 차지했다.

불법촬영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10월 안양시의 한 초등학교 교장이 여교사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한 것으로 드러나며 사회적 충격을 줬다. 그는 휴지갑에 구멍을 뚫어 카메라를 숨겼는데, 교사들이 이를 발견한 뒤로도 경찰 신고를 망설이다 범행이 발각됐다.

최근 3년간 불법촬영 범죄 발생 현황

■취재진이 산 라이터형 몰카, 진짜 범죄에 쓰였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초소형카메라로 불법촬영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 취재진이 구매했던 ‘라이터형 몰카’ 역시 실제 범행에 사용됐다.

수원지법 형사9단독 박민 판사는 최근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L씨(28)에게 징역 2년 6월을 선고했다. 그는 올 초부터 노래연습장 여자화장실에 라이터 모형의 카메라를 설치, 수십차례에 걸쳐 여성들이 용변 보는 장면을 촬영했다. 해당 카메라로 교복을 입은 여학생의 다리를 찍거나, 성매매 업소를 돌며 여성들의 유사 성행위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그가 5개월간 찍은 몰카 촬영물은 320개에 달한다.

그러나 ‘몰카범’에게 처음부터 실형이 선고되는 사례는 상당히 드물다. 일례로 의정부지법 형사3단독 신정민 판사는 최근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A씨에 대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 4월 치마를 입고 걸어가는 여성을 뒤쫓아가 다리를 몰래 촬영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다리가 예뻐서 찍었다”고 진술했다.

 

경기일보 취재진이 직접 구매한 라이터 모형의 초소형카메라의 모습. 라이터 하단부에 카메라 렌즈가 숨어 있다. 오른쪽은 카메라 모형 카메라로 촬영된 실험 장면. 장희준기자
경기일보 취재진이 직접 구매한 라이터 모형의 초소형카메라의 모습. 라이터 하단부에 카메라 렌즈가 숨어 있다. 오른쪽은 라이터 모형 카메라에 담긴 실험 장면. 장희준기자

■한 사람을 평생 불안에 떨게 한 죗값, 고작 벌금

불법촬영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대법원이 지난 2019년 밝힌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1심 판결 현황을 보면, 2012~2018년 해당 혐의로 기소된 피고는 9천148명이다. 이 가운데 4천788명(52.3%)은 벌금형에 처해졌고, 그 뒤로는 집행유예 2천749명(30.1%), 징역ㆍ금고형 862명(9.4%) 순으로 집계됐다.

피해자는 성적 수치심과 함께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데, 몰카범 10명 중 8명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친 것이다. 징역ㆍ금고형에 처해진 피고는 10명 중 1명도 되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펴낸 분석자료를 봐도 법의 심판은 가벼웠다. 지난 2018년 불법촬영 피의자 4천948명 중 절반이 넘는 2천561명(51.8%)에 대해 검찰은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또 1심 판결을 받은 피의자 1천913명 중 과반에 해당하는 1천42명(54.5%)이 벌금형에 그쳤다.

연구원은 장소ㆍ도구ㆍ대상 등 범행의 경중에 따른 기소율에 큰 차이가 없었으며, 성관계 영상 등 죄질이 중한 경우에도 불기소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13일 오후 수원시 밤밭청개구리공원 여자화장실에서 수원시 관계자들이 몰래카메라 탐지기로 숨겨져 있는 카메라를 찾고 있다. 윤원규기자 <br>
17일 오후 수원시의 한 공원 여자화장실에서 수원시 관계자들이 몰래카메라 탐지기로 숨겨져 있는 카메라를 찾고 있다. 윤원규기자 

#3. 헛스윙 날리는 국회, 법도 못 막는 ‘몰카’


‘몰카 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제도권의 움직임은 무위에 그치고 있다. 해마다 관련 법안이 발의되고 있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됐기 때문이다.

이효림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17일 경기일보와의 통화에서 “변형카메라 관리법 제정에 그칠 게 아니라 ‘몰카 범죄’를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까지 들여다봐야 한다”며 “처벌 강화를 시작으로 보다 근본적이고 강력한 대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19대 국회부터 21대 국회까지 의원들은 꾸준히 변형카메라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허가제냐 등록제냐 하는 차이는 있지만, 내용은 큰틀에서 같다. 이번 국회에선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등록제, 같은 당 윤영찬 의원이 내놓은 허가제가 계류 중이다.

이를 바라보는 정부의 입장은 신중론에 가깝다.

김보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전파기반과장은 “변형카메라 관련 법안의 도입 취지에 공감하며 성범죄에 실효성 있게 대응할 수 있도록 입법 논의에 적극 참여할 예정”이라면서도 “다만 과학기술 발전 저해에 대한 우려로 규제 대상을 정하는 부분에서 고민이 많다”고 설명했다.

조기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석전문위원도 윤영찬 의원이 발의했던 법안에 대한 검토보고서를 통해, 카메라 기술이 생활밀접분야는 물론 산업ㆍ국방 등 분야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범죄예방과 기술발전의 측면을 균형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냈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됐던 변형카메라 관련 법안들의 이력

같은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고 계류하다 폐기되는 수순이 반복되는 국회. 다수의 범죄 전문가는 ‘몰카 시장’이 형성되는 근본적인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불법촬영 범죄가 연평균 5천건이라는 건 말도 안 되게 적은 수치”라며 “불법촬영물은 결국 돈으로 환전되는데, n번방 사태와 마찬가지로 플랫폼만 옮겨다닐 뿐 범죄수익이 발생하는 한 몰카 범죄는 계속된다”고 경고했다. 변형카메라 관련 법안에 대해서는 “매번 폐기되거나 상임위에서 계류 중인 것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카메라도 결국 과학기술인데 형사처벌로 통제하는 나라가 어디 있나”라고 꼬집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계속되는 몰카 범죄의 원인으로 ‘소비자’를 지목했다. 수요가 있으니 그에 따른 공급이 이어진다는 것. 이 교수는 “예컨대 미국이 마약과의 전쟁에 실패한 이유는 공급자만 차단했기 때문이다”라며 “불법촬영과 관련해서도 공급만 차단하려고 하는데, 수요는 전혀 차단하지 않으니 범죄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배상훈 충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터넷 공간이 확대ㆍ발달한 우리나라의 특수한 환경에서 몰카 범죄나 사생활 침해에 대한 교육이 미약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배 교수는 “어린 아이도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지만, 그걸로 몰카를 찍는 게 문제라는 학교 교육은 없지 않나”라며 “변형카메라 관리법도 결국 몰카 범죄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스마트폰을 배제해둔 셈이니,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희준ㆍ김은진ㆍ김정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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