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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그 무엇이 속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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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엇이 속삭이고 있었다

                                                    -박정대

 

다들 돌아가버린 한적한 오후의 도서관에서

내가 생애처럼 긴 담배를 피워물 때

어디서 작은 새들이 날아와

처음 보는 이름으로 움직이고, 꽃들은

낡은 외투에 손을 꿰는 아이들의 손끝마냥

불쑥 피어오르고 있었다, 외상값

정리되지 않은 외상값에 대한 생각처럼

나는, 그 어떤,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집요한 상념에 잠기어 있었는데, 비가 내려

내 생각의 한가운데로 비가 내려, 그 무엇이

속삭이고 있었다, 하늘 한구석에서

누군가 또 낚시질을 하고있군, 글쎄

비 내리는 오후는 저녁처럼 어두워져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두운 하늘에 검은 말 한 마리

지나가고 있었다, 저기 저 비에 젖은 별들은

진흙탕의 세월을 지나온 시간의 말발굽이야, 그 무엇이

속삭이고 있었다, 잔인한 추억이지 뭐

나는 담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나지막한 속삭임에게 들려주었다

다 잔인한 추억이지

‘그 무엇’이 전하는 신비의 속삭임

『단편들』, 문학동네, 2020

어느 날 갑자기 세계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있다. 늘 봐왔던 사물들이 처음 본 것처럼 생경하고, 처음 간 장소가 예전에 와본 곳처럼 익숙하게 느껴지는 그런 경험들과 조우할 때마다 이 세계란 합리(合理)의 그물로 포획할 수 없는 ‘그 무엇’의 작용일지 모른다는 추측을 하게 된다. 친숙하고 낯선 정체불명의 ‘그 무엇’이 삶에 반복적으로 출현하는 이유는 뭘까? 이 물음에 답을 얻기란 실로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삶이란 두렵고 신비한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때의 ‘짐작’이란 ‘대강’의 이해가 아니다. 불가해한 것들에 대한 ‘깊이’의 사유다. 따라서 깊게 생각하는 자만이 짐작의 세계에 출몰하는 ‘그 무엇’의 실체를 상념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이 박정대 시인의 시 ?그 무엇이 속삭이고 있었다?의 토대가 아닐까 한다.

시인이 말하듯, 삶은 “정리되지 않은 외상값에 대한 생각”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근심들로, 혹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로 가득 찬 ‘그 무엇’에 관한 상념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 무엇’이 전하는 속삭임은 작은 새들이 “처음 보는 이름”으로 날아다니는 신비의 움직임이기도 하고, 가난한 아이의 낡은 외투 주머니 밖으로 튀어나온 ‘손끝’처럼 ‘불쑥’ 피어나는 꽃의 불안이기도 하다. 신비와 불안, 혹은 삶과 죽음의 병렬. 그것이 실존의 세계로 내리는 비의 정체다. 그 비는 피할 수 없다. 우리란 “비에 젖은 별들”이고, 삶은 “진흙탕의 세월을 지나온 시간의 말발굽”이라는 게 ‘그 무엇’이 전하는 운명의 속삭임이지만, 그 곁에는 신비의 속삭임도 있다. 시인이 마지막에 읊조리는 “다 잔인한 추억이지”라는 속삭임에는 불안하지만 살아봐야겠다는 어떤 의지가 담겨 있어 보인다. 의지는 이성(理性)의 낚시질이 아니라 신비의 짐작이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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