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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용의 더 클래식] 독일에서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그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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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6월 15일 노르웨이의 베르겐 태생으로, 그리그의 조상이 스코틀랜드에서 노르웨이로 이주해 왔기 때문에 그리그에게는 스코틀랜드인의 혈통이 이어져 있었다. 그리그는 6세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는데, 그의 어머니는 당시 베르겐에서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통했다.

그리그가 9세 되던 해, 외할아버지가 남겨 준 커다란 저택에 어는 알 부모님의 친구였던 당대 이름난 바이올리니스트인 올레 불이 방문했다. 그리그의 연주를 지켜본 올레 불은 어린 그리그의 음악적 재능이 심상치 않음을 대번 눈치 챘고, 독일 라이프치히로 음악 유학을 떠날 것을 권했다.

그래서 그는 1858년부터 4년간 당시 유럽 최고의 음악 명문인 라이프치히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 공부를 하게 된다. 그 4년 동안에 리히터, 리츠, 라이네케, 벤쨀, 모셀레스로부터 작곡법과 피아노연주법 등의 교수를 받았다. 그렇지만, 그리그는 어디까지나 스칸디나비아 기질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4년간의 독일 라이프치히에서의 유학은 그리그가 앞으로 국민주의 음악의 선구자로 기틀이 다져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그는 독일에서 다진 음악적 기틀 위에 예로부터 내려오는 민요의 멜로디를 삽입하기 시작했다. 그리그를 민족주의 음악가로 부르는 데에는 바로 이런 음악적 특색을 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적 명곡 <솔베이지의 노래>의 멜로디도 바로 이런 민속음악에 기초를 두고 있다.

1862년 노르웨이 베르겐으로 돌아온 그는 도시의 공해와 소음을 피해 외딴 마을에 자리를 잡고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34세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에 전념하게 된다.

정승용 작곡가ㆍ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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