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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3. 용인 ‘안젤리미술관’

고사리 손으로 그린 작품… 화폭 가득 동심
처인구 이동면 용덕저수지 옆에 자리 잡아
미술관 건물만큼이나 주변 풍광도 아름다워
권숙자 강남대 교수가 사비 털어 2015년 개관
100여평 규모 제1전시장·제2전시장 등 갖춰
카페·결혼식 열 수 있는 ‘야외 공연장’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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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안젤리미술관에서는 '제6회 안젤리미술관 어린이 미술공모전' 수상작들이 전시돼 있다. 이번 대회는 전국의 유치부와 초등부 어린이를 대상으로 예술의 씨앗을 뿌리고, 미술에 대한 문턱을 낮추기 위해 개최됐다. 윤원규기자

그림의 구도가 재미있다. 꿈을 꾸는 듯한 예쁜 눈을 가진 아이가 쓴 마스크에 커다란 고래가 한 마리 있고 좌우에 물고기와 잠수하는 아이가 있다. 대상(大賞)을 수상한 이 작품의 제목은 ‘코로나 없는 노을빛 바다에서 고래와 나’이다. “이 그림을 그린 아이는 초등학교 4년생인데 자폐증이 있어요. 지난해는 그림이 어두웠는데 그 사이 실력도 크게 늘었고 분위기가 한결 밝아져 깜짝 놀랐어요. 그림이 한 아이를 구원한 것이지요!”

■ 그림에 깃든 아이들의 꿈, 안젤리미술관의 어린이 미술공모전

‘제6회 안젤리미술관 어린이 미술공모 수상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안젤리미술관(관장 권숙자) 전시실에 들어서면 누구나 웃음을 짓게 된다. 그러다 웃음을 거두고 아이들이 세상에 던지는 항변에 움찔한다. 초등학교 1학년의 ‘쓰레기가 우리를 아프게 해요’란 작품을 보자. 그물에 걸린 새와 마스크를 낀 지구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캔 뚜껑과 노끈 같은 쓰레기를 그림에 활용한 재치가 번뜩인다. 초콜릿이 쏟아지는 ‘초코 분수대’와 과자로 집을 지은 ‘과자나라’도 있다. ‘이집트 피라미드의 미스터리한 지하 공간’과 ‘요정의 가을 소풍’처럼 아이들의 반짝이는 상상력과 순수한 동심을 마주하면서 위안을 얻는다. 공모전 주제 ‘코로나19를 그림을 그리며 이기다’에서 짐작하듯 안젤리미술관도 요즘 몹시 어렵다. “사립미술관 운영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지요. 코로나19까지 겪으니 그 어려움이 상상보다 훨씬 큽니다. 그래도 미술관을 통해 지역 문화 확산을 이룬다는 사명감은 내려놓을 수 없지요. 어린이 미술공모전을 여는 것은 아이들이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용덕저수지 옆에 자리 잡은 안젤리미술관은 건물만큼이나 주변의 풍광도 아름답다. 강남대학교 미대 교수로 37년을 재직한 권숙자 교수가 사비를 털어 2015년에 문을 연 안젤리미술관은 100여평 규모의 제1전시장과 제2전시장, 회의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카페, 결혼식을 열 수 있는 200여평 규모의 야외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30대 젊은 시절에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샤갈미술관에 들렀을 때 한 줄기 햇살이 미술관 바닥에 평화롭게 깔린 모습을 보면서 미술관 건립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안젤리는 이탈리아어로 ‘천사들’이라는 뜻인데, 미술관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만 아니라 선(善)의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담겨 있어요.”

박물관 야외정원에서는 아트타일모자이크로 완성된 '5월의 신부'를 만날 수 있다./권숙자 안젤리 미술관장이 어린이들의 작품을 정리하고 있다./미술관 야외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 용인 전통 묘봉리 타맥놀이 모습. 윤원규기자

■ 그것은 선택된 길이었다, 권숙자의 예술 세계

권 관장은 미술관을 건축하는 도중에 큰 슬픔을 겪는다. 남편 곽연섭 비올리스트(로마 떼아트르 오페라극장)가 암으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와 어머니까지 모두 여읜 것이다. 몇 년 사이에 사랑하고 의지하던 사람을 모두 떠나보낸 상실의 아픔을 견뎌내며 세운 미술관이기에 그 무게가 남다르다. 미술관 2층 카페에는 남편의 절친 테너 박세원(서울시오페라 단장) 서울대 교수가 남편과 함께 만들던 누드 피아노가 있다. 남편의 바람대로 미술관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선율이 가득하다.

개관기념으로 연 ‘한국대표작가 55인 초대전’은 김병종, 최예태, 정관모 등 한국 미술을 발전시켜 온 전국의 원로, 중견작가 55인의 작품을 선보인 특별한 자리였다. 이후 매년 10회 전후의 전시회를 열 정도로 부지런하게 운영하고 있다. 올봄에 연 ‘2021 부활 피어나는 삶…7인의 믿음 소망 사랑의 그림 詩’ 전에 실린 인사말을 읽어본다. “기도하면서 그리는 그림, 기도하면서 가꾸는 일상, 기도하면서 바라보는 미래의 시선은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고 보람 있고 가치 있게 다듬어 줄 것이다.” 권 관장은 수필로 등단한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월간문학지에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이다. ‘추경’ ‘사양’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대학시절의 스승 서양화가 김창락(1924~1989)은 제자의 문학적 감수성을 일찍 알아보았다. “권숙자는 자기의 세계를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순수한 화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일찍부터 그의 소품들에서 솔직한 표현으로 된 나름의 특이한 작품세계를 보여주어서 주목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남달리 강한 문학성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다.” 일찍이 “그리는 일과 글을 쓰는 것은 내 숨결과 같은 것”이라 고백했던 권 관장은 그동안 그린 그림과 수필을 모아 ‘이 세상의 산책’(2004)과 ‘안젤로의 전설’(2015)이라는 두 권의 책을 펴냈다.

1980년대 초반, 젊은 권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낙동강 자락에 자리한 우망(憂忘)이란 마을을 찾았다가 소나무 위에 눈이 쌓인 모습을 본다. 여름날에 흰 눈이 쌓인 소나무라니? 사실 그것은 백로무리였다. 이날의 특별한 경험으로 그의 화폭에는 목이 긴 하얀 새들이 자주 내려앉게 된다. “내가 새를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속엔 이상세계의 부분을 차지하는 또 다른 상징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세밀했던 묘사가 단순해지기 시작한다. 5~6년이 지나면서 작품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캔버스라는 전통 회화의 평면에서 벗어나 릴리프(부조화)로 재료의 다양성을 꾀한 실험정신이 작품의 독창성으로 발전한 것이다. 1991년 봄, 한 번 더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화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밖에서 봄나들이를 떠나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외로움이 엄습하더군요. 그리던 그림을 멈추고 멍하니 있을 때 갑자기 사방의 벽이 무너지는 환상을 경험했지요. 밖에 핀 꽃의 향기, 햇살, 바람이 무너진 벽을 통해 들어왔죠. 그 후부터 밖을 나가지 않아도 내 안에 모든 자연을 안을 수 있고 자연과 일체를 이루며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1977년과 1978년에 연거푸 국전에 입상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미술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상, 남송국제 아트페어 특별상(2008), 독일 괴테문화원 초대 최우수상을 수상(2010)했다. 서울, 수원, 프랑스, 미국, 이탈리아 등 국내외에서 26회의 개인전을 열었으며, 한국현대미술 뉴욕초대전, 한·러 현대미술 러시아 초대전, 한국의 전통과 회화 속의 회화의 단면전(호주 멜버런시 초대전), 루마니아 초청 한국현대 회화초대전(루마니아 국립미술관), 현대미술 정상 31인 초대전(경향갤러리)에 참여했다. 중견 작가로서 자신에게 부여된 사회적 역할에도 충실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서양화 심사위원장(2012)을 비롯해 각종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제6회 안젤리미술관 어린이 미술공모전'에서 수상한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 미술관은 한 도시의 얼굴이자 품격이다

용인시 5개의 사립미술관 중 2곳(마가미술관, 이영미술관)이 최근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남은 안젤리미술관이나 한국미술관, 근현대사미술관담다 역시 형편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이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은 미미한 형편이다. 용인시가 박물관 미술관 진흥법에 근거해 2년 이상 된 사립미술관 박물관에 전기세, 교육세, 도로세 등 세제 지원 및 프로그램 운영비 등을 지원하고 있지만 제도적 지원책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 시민의 문화향유를 위한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 조례’가 필요하다. 미술관은 그 도시의 품격을 드러내는 문화시설이다. 미술관이 도시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시민들에게 축복이자 위로가 된다. “안젤리미술관은 남녀노소 대중과의 소통을 통해 문화의 참된 의미를 각인시키는 장소입니다. 전시 외에도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고, 미술과 실내악이 어우러지는 시민을 위한 음악행사, 젊은이와 지역의 미술가가 함께하는 창조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야외 잔디정원에서는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벌어지며, 카페에서 회원전도 열고 있습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편한 휴식도 취할 수 있지요. 이번 주말에도 결혼식이 열려요.” 부디 이 혹독한 시련을 잘 이겨내고 처음 꾸었던 그 꿈이 속히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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