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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묵언(默言)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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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언(默言)의 날

                                 -고진하

하루 종일 입을 봉(封)하기로 한 날,

마당귀에 엎어져 있는 빈 항아리들을 보았다.

쌀을 넣었던 항아리,

겨를 담았던 항아리,

된장을 익히던 항아리,

술을 빚었던 항아리들,

하지만 지금은 속엣것들을 말끔히

비워내고

거꾸로 엎어져 있다.

시끄러운 세상을 향한 시위일까,

고행일까,

큰 입 봉(封)한 채

물구나무선 항아리들,

부글부글거리는 욕망을 비워내고도

배부른 항아리들,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항아리들!

<호랑나비 돛배>, 지만지, 2012.

침묵만으로도 배부른 항아리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라는 속담이 있다. 집안에 쓸데없는 잔말이 많으면 살림이 잘 안된다는 뜻인데, 표현이 참 신랄하다. 말이란 잘 쓰면 약(藥)이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독(毒)이 된다. 대개의 말들은 약이 되기보다는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말이란 욕망이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들이 갖는 욕망은 일치하고 조화하기보다는 엇갈리거나 불화하는 게 일반적이다. 말싸움이란 곧 욕망 싸움이다. 욕망을 하나의 자연법칙으로 인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은 독이 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말을 기록한 글의 성격 또한 마찬가지다. 플라톤은 글의 속성을 ‘약(drug)’과 ‘독(poison)’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뜻을 지닌 ‘파르마콘(Pharmakon)’에 견주었는데, 이는 말이나 글이 갖는 이중성과 모호성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크게 보자면, 인류사의 비극은 말의 이중성과 모호성, 다시 말해 욕망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다.

고진하 시인의 시 [묵언의 날]의 시적 맥락은 말과 욕망의 문제에 기반한다. 쌀이나 겨를 넣었던, 혹은 된장과 술을 익히고 빚었던 마당의 항아리처럼 인간이란 자신의 내면에 욕망을 넣고 부풀린 또 다른 항아리라 할 수 있다. 시인이 말하는 ‘시끄러운 세상’이란 욕망으로 가득 찬 자본의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벗어나는 지혜는 무엇일까? 시인이 내민 방법은 속에 담긴 것을 비워내고 거꾸로 엎어져 있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말을 봉쇄하고 욕망을 비우는 행위는 쉽지 않다. 비움으로써 배부를 수 있는 것은 지극한 역설이기에 실천하기 어렵다. 그러나 지향해야만 하는 당위(當爲)임에는 분명하다. 시인이 제시한 묵언은 고행이나 시위라기보다는 침묵으로 가는 구도행이자, 세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자기 치유의 방편일 것이다. “침묵만으로도 충분히 배부른 항아리들!”이 되려면 먼저 하루쯤의 묵언으로 자신 안에 쌓인 말과 욕망의 찌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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