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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2.김포 보름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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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의 망와들의 모습. 전통기와집의 지붕마루 끝을 장식하는 기와인 망와는 귀면, 동물 등의 그림으로 집안의 안위를 바라는 주술적인 목적도 담고 있다. 윤원규기자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 맞은편에 아담한 산속에 보름산미술관(관장 장정웅)이 자리 잡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수기로 100-78 보름산미술관 앞마당과 건물 벽과 지붕도 보름달처럼 둥글다. 양옥과 한옥을 결합한 듯 독특한 미술관 건물 곳곳에서 흥미로운 조각을 발견한다. 용과 당초무늬와 연꽃, 사람의 얼굴 등 온갖 문양이 새겨진 조각은 바로 기와지붕을 지키고 있는 ‘망와(望瓦)’다. 미술관을 장식하는 수백 개의 항아리와 아담한 숲길에 묵묵히 서 있는 석인(石人)들의 표정이 넉넉하다. 장정웅 관장과 마주 앉았다. 여든에 가까운 연세지만 정정하시다. 미술관 이름을 ‘보름산’으로 지은 까닭이 궁금하다. “미술관 맞은편에 보름달처럼 생긴 작은 동산이 있었지요. 언덕 같은 작은 산이지만 정말 보름달처럼 둥글었던 보름산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요. 그 대신 미술관의 이름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김포시 고촌읍에 위치한 보름산미술관은 그림뿐만 아니라 옛 기와, 목가구, 석물 등 다양한 작품을 감상하고 여유롭게 차를 마실 수 있는 지역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보름산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 

그림과 인연을 맺은 사연도 들려주신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교사였던 부친의 심부름으로 풀무원 설립자인 원경선 선생 댁을 방문했다가 현관에서 운명처럼 한 폭의 그림과 만났지요.” 소년이 만난 것은 한국 근대 화단의 거장 소정(小亭) 변관식(1899~1976)의 작품이다. 화가의 꿈을 키우던 소년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소정을 찾아가 배움을 청한다. 스승은 어린 제자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붓은 칼이다. 아주 날카로운 송곳 같은 칼이다. 날카로운 붓 칼을 들고 화선지를 자르고 찌른다는 생각으로 선을 그려라.” 한국화의 기본을 충실히 익혀 홍익대 미대에 입학한 그는 동양화와 함께 건축을 배운다. 화가의 길을 반대한 부친과의 타협안인 셈이다. 당시 홍대 미대에서는 김중업, 김수근 등 한국 건축계의 대가들이 학생들을 가르쳤다.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의자를 만드는 회사 ‘애신’을 설립하여 100명의 사원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키웠으나 그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사업할 때 그림을 잊기 위해 전시장은 물론 신문 문화면도 넘겨보지 않았던 그는 석 달을 깊이 고민하다가 완강히 반대하는 부친을 석 달에 걸쳐 설득하고, 사업을 같이 시작했던 사원 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며 이들에게 16년 동안 가꾸었던 회사를 넘기고 빈손으로 나온다. 이 무렵 ‘장정웅이 이상하다, 돌았다’는 소문까지 퍼졌다고 한다. 벽장 속 깊이 방치했던 벼루와 먹 화구를 찾아낸 그는 전국을 돌며 미친 듯이 그림을 그렸다. 당시 즐겨 그린 소재는 유년의 추억이 깃든 바닷가의 풍경이다. 한동안 수석의 매력에 빠져 지내기도 하던 그는 1978년부터 ‘망와’와 30여 년간 열애에 빠진다. 이때 모은 것이 300여점이나 된다. 대학원에 진학한 장 관장은 ‘고건축의 망와에 나타난 미의식에 대한 연구’로 학위논문을 쓰고 미술관 설립을 준비한다.

보름산미술관에서는 현대작품도 활발히 기획전시되고 있다. 해 전시장에서 장안의 화제 ?題 고요한 휴가전이 열리고 있다. 윤원규기자

■ 미술관이 설립되기까지

장다운 학예사를 따라 전시실에 들어선다. 천장에 매달린 광목천에 추상화 같은 그림이 새겨져 있다. 망와를 단순화한 이미지들인데 오랜 이웃들의 얼굴처럼 평안하다. “망와는 보름산미술관의 주요 소장품이죠. 암키와와 수키와로 지붕을 엇갈려 덮은 우리나라 전통 한옥 지붕의 마무리를 망와로 하지요. 보세요. 도깨비 형상의 망와 눈에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박아 넣었습니다. 달빛을 받으면 번쩍여서 귀신의 범접을 막는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해설을 들으며 집주인과 도공이 나누었을 대화를 상상해 본다.

미술관은 본관(지상 2층)과 별관(1층), 그리고 별도의 교육 시설과 사무동으로 나누어진다. 전시장과 교실, 카페와 서점으로 공간을 나누어 지역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복합문화시설로 사용하고 있다. 미술관의 주요 전시공간이 ‘달’과 ‘해’로 나뉜 것도 재미있다. 입구에 위치한 ‘SPACE 달’은 망와를 모티브로 한 작품들을 비롯해 미술관의 소장 작품들을 상설 전시하는 공간이다. 철도 받침목으로 만든 계단으로 올라서면 보이는 ‘SPACE 해’에서는 회화나 사진을 비롯한 평면미술 작품을 주제로 하는 기획전이나 특별전이 열린다. 다시 한 층으로 오르면 카페와 서점이 나타난다. 카페를 비롯해 미술관에 놓여 있는 의자들도 모두 장 관장이 손수 만든 ‘작품’이다. 오랫동안 합창단으로 활동할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고 가곡과 클래식 애호가이다. 개관 기념일인 5월30일이면 매년 작은 음악회를 여는데 지역주민들에게 인기 만점이란다. 보름산미술관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지역의 문화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뜻에서 내린 결정이다.

건축가 장정웅의 컨셉으로 인테리어된 카페에서는 음악을 듣고 차,커피를 마시며 다양한 목공예품을 감상할 수 있다. 윤원규기자

■ 가족이 만들어가는 지역문화 소통의 공간

고즈넉한 산책로를 거닐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윤원규기자

장큰별 학예연구실장과 장다운 전략연구소장은 장 관장의 뜻을 잇는 아들 형제다. 교육자였던 부친의 헌신과 강직함을 이어받은 장 관장의 두 아들도 아버지의 뜻을 잇고 있다. 디자인하우스 편집팀장으로 일하던 장다운 소장은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회사에 사표를 내고 보름산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보름산미술관의 전략과 전술을 짜는 사령탑을 맡은 셈이다. “기존의 전시 기능과 교육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미술관을 중심으로 넓은 의미에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하길 바랍니다. 지역주민들이 갖고 있는 콘텐츠를 개발시켜주고 그것들을 네트워크 시키는 것이지요. 모두의 바람처럼 미술관이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재미있는 동네’가 되길 희망해요.” 미술관 식구들은 지역사회를 위한 미술관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2021년 지역문화예술 플랫폼 육성사업으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전시회는 ‘장안의 화제(?題) 고요한 휴가’이다. 서울대학교 동양학과 출신의 김다운, 김유정, 김지민, 김지원, 이승은 등 5명 작가의 작품을 모은 것이다. 그림의 주제가 ‘고요한 휴가’란다. 코로나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들이어서 그럴까, 색이 차분하고 선이 부드럽다.

보름산미술관은 꾸준히 소식지를 펴내고 있다. 38호까지 발행된 소식지를 살펴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2021년이란 서기 대신에 ‘을미년’ ‘신축년’을, 몇 월 며칠 대신에 ‘청명’, ‘망종’, ‘입하’ 같은 24절기가 적혀 있다! 여기서도 한국적인 것을 고집하는 보름산미술관의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3대를 잇는 기독교인 장 관장은 서양 흉내를 낸 종교화가 십자가가 자신의 마음에 가깝게 와 닿지 않았다며 특별한 작업을 벌였다. 짚, 풀, 소나무, 버드나무 같은 친근한 재료를 가능한 한 그대로 사용하여 십자가의 절망과 부활의 기쁨을 표현한 작품을 제작하여 ‘한없이 낮은 자-장정웅 십자가 작품전’(2016)을 열었던 것도 이런 믿음 때문이다.

그는 힘주어 말한다. “우리의 미감으로 우리 것, 우리 신앙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무술년 입하에 펴낸 소식지 26호에서 재개발로 지금은 사라져 버린 보름산 흑백사진과 장 관장이 쓴 수필 ‘나의 살던 고향은?’에 실려 있는 사연이 먹먹하다. “미술관이 서 있는 자리 50여m 앞에 있던 ‘보름산’이라는 아주 작은 언덕이 사라졌다. 너무 작아서 산처럼 보이지도 않지만, 예전 동네 사람들은 바가지를 엎어 놓은 것처럼 둥글고 불룩한 이 산을 보름산이라는 복스러운 이름으로 불렀다. ‘보름산미술관’이라는 이름도 보름산에서 따 온 것이다…다들 보름산미술관이 자리한 산자락을 당연히 보름산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백남준 선생이 ‘비디오 아트’라는 장르를 새롭게 미술사에 남겼다면 보름산미술관은 엉뚱하게도 지도 위에 보름산이란 지명을 새롭게 남겼다고나 할까.”

올해로 개관 12주년을 맞은 보름산미술관을 가꾸어 가는 사람들은 장정웅 관장을 비롯하여 장다운, 이기준, 장큰별, 김민경, 이아람까지 모두 여섯이다. 보름산미술관 학교를 소개하는 글에 담긴 미술관의 지향점은 미술이 친구이자 재미있는 놀이터가 되는 것이란다. 이미 그래 왔던 것처럼 이웃들이 마실 나서듯 편히 찾아와 즐겁게 놀다가는 보름달처럼 넉넉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미술관 한쪽에 있는 정원 연못에서는 개구리, 물고기 등 자연이 살아 숨쉬고 있다. 윤원규기자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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