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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밤에 쓰는 편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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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쓰는 편지 3

                                     김사인

한강아

강가에 나아가 가만히 불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작은 목소리에는

대답하지 않습니다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나 값싼 눈물 몇 낱으로

저 큰 슬픔을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진즉 알고는 있었습니다.

한강아

부르면서 나는 무엇을 또 기대했던 것인지요.

큰 손바닥과 다정한 목소리를 기다렸던 것인지요.

나도 한줄기 강이어야 합니다.

나도 큰 슬픔으로 누워

머리 풀고 나란히 흘러야 합니다.

《밤에 쓰는 편지》, 문학동네, 2020.

강을 바라보는 시간은 삶의 흔적을 되짚어보게 만든다. 강물은 바다로 흘러가기보다 강을 응시하는 사람의 마음 안으로 굽이쳐 성찰의 발원지가 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세상은 강물처럼 끊임없이 흐르고 변하기 때문에 동일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주 세밀히 따진다면 조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른 인물이 되는 셈인데, 그 차이는 사변적이라서 현실로 체감하기 어렵다. 변한다는 사실에만 얽매인다면 세상은 덧없다. 변하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윤리적 결단이다. 윤리란 묻고, 답하는 일이다. 묻기만 하는 시간은 거칠고 황량하다. 왜 사는가, 라는 큰 물음에 속 시원한 대답은 내놓지 못하겠지만 최선의 답은 내놔야 한다. 그게 성찰이고 윤리다. 아름다움이 시의 얼굴이라면 윤리는 시의 표정일 것이다. 좋은 얼굴은 표정으로 살아난다.

김사인 시인의 시 ?밤에 쓰는 편지 3?은 자문하고 자답하는 윤리적 시간을 “한강아”라는 호명과 “나도 한줄기 강이어야 합니다.”라는 다짐으로 성찰한다. 시인의 성찰은 ‘가만히’, ‘작은’, ‘떨리는’이라는 표현에 드러난 것처럼 겸손하다. ‘저 큰 슬픔’으로 비유된 강물은 역사와 실존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흘러가는 숭고의 시간이다. 한강은 ‘값싼 눈물’로 호소하거나 ‘떨리는 목소리’로 부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부른다 해도 쉽게 말하지 않는 단호함의 상징이기에 멀찍이 떨어져서 ‘큰 손바닥’과 ‘다정한 목소리’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고 염치없는 일일 수 있다. 타인의, 혹은 역사의 슬픔을 바라보며 애통해하기보다 자신도 ‘한줄기 강’이 되어 나란히 흘러야만 강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시인의 나직한 고백이 마음에 깊게 남는 이유는 인간이란 자신의 미흡을 성찰하는 윤리적 존재라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더 나은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견은 있겠지만 인간이란 ‘윤리적’이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말아야 한다. 큰 슬픔으로 강과 함께 흘러가는 시인의 발은 필시 모든 강에 닿아 있을 것이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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