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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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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목월

 

밤에 귤을 깐다.

겨울밤에 혼자 까는 귤.

나의 시가

귤나무에 열릴 순 없지만

앓는 어린것의

입술을 축이려고

겨울밤 자정에 혼자 까는 귤

우리 말에는

가슴이 젖어오는 고독감을 나타내는

형용사가 없지만

밤에 혼자 귤을 까는

한 인간의 고독감을 나타내는

말이 있을 수 없지만,

한밤에 향긋한 귤향기가 스민

한 인간의 가는 손가락.

《박목월 시전집》, 민음사, 2003.

 

방문하기엔 좋고 머물러 있기엔 쓸쓸한 ‘고독’

고독은 병(病)이고, 약(藥)이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고독은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과 “부모 없는 어린아이와 자식 없는 늙은이”라는 두 가지 뜻으로 설명하는데, 이는 아무래도 고독을 피해야 할 ‘병’의 상태로 파악한 사회적 인식의 소산인 듯하다. 언론매체들이 ‘고독사’라는 극단의 표현을 사용하는 것도 그러한 인식과 관련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고독이 꼭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것만은 아니다.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Henrik Ibsen)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인간이다.”라 말했다. 하지만, 고독이 강한 인간의 조건이라는 그의 언급을 평범한 사람들이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 강하다는 것이 모든 삶의 존재 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영국의 극자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는 “고독은 방문하기엔 좋은 장소이나 머물러 있기엔 쓸쓸한 장소다.”라 말했는데, 이는 고독에 내포된 부정과 긍정의 두 측면을 잘 조화해 설명한 것이라 여겨진다.

박목월 시인의 시 ?귤?에 표현된 ‘고독’은 조지 버나드 쇼의 말처럼 방문하기엔 좋으나 머물러 있기엔 쓸쓸한 정취를 동시에 드러낸다. 밤에 갖는 ‘혼자’의 시간이 없다면 성숙의 계기란 있을 수 없다. 고독함으로써 이 세계에서의 삶은 비로소 선명해지고 진지해진다. 밤에 혼자 귤을 까는 시인은 고독하다. 그것은 자신의 예술적 고뇌와 생활의 불편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모습이다. 자신의 시가 귤나무에 열릴 수 없다는 생각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세계에 대해 시인으로서 갖는 좌절을 의미한다. 앓는 자식의 입술을 축여주기 위해 귤을 까는 행동은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는 무력을 지시한다. 밤에 귤을 까며 느끼는 좌절과 무력의 고독감은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귤향기가 베인 손가락처럼 선명하게 보이고 느껴지는 삶의 실체이기도 하다. “한 인간의 손가락”에 스민 향기로서의 고독은 시에 대한 사랑이자 자식에 대한 사랑, 나아가 삶 그 자체에 대한 사랑이다. 그래서 귤 까는 밤의 쓸쓸함은 향기롭다. 고독이 없는 삶은 향기 없는 꽃과 같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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