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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37.고양 ‘유진민속박물관’

상설 전시실 ‘여인의 방’ 자수에 담긴 가족애
‘한국의 전통농업’ 코너 희귀한 농기구들 전시
새색시 꽃가마 등 전통혼례 의복·장신구 눈길
전시된 유물 보는 아이들 눈빛 ‘반짝’ 귀 ‘쫑긋’
지역 학생 눈높이 교육프로그램 무료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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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선조들이 농사를 지을 때 필요한 농기구 풍구, 탈곡기, 멧돌 등을 만날 수 있다. 윤원규기자

흰 눈이 소복이 쌓인 장독대 옆에는 ‘까치밥’ 서너 개가 빨갛게 달린 감나무와 맷돌, 절구가 놓여 있고, 마당 건너 헛간에는 지게와 싸리광주리, 둘둘 말린 멍석이 걸려 있다.

이것은 50년 전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농촌의 겨울 풍경이다. 이제 한국은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부자 나라가 되었다.

그 사이에 천 년을 이어오던 세시풍습이 사라지고, 장독대가 사라지고 친정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장롱과 할아버지가 애지중지하시던 옻칠제기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요즘 아이들에게 1970년대의 시골 풍경은 수만리 떨어진 별나라만큼이나 낯설지만 흥미진진한 곳이다.

어린이들이 멧돌, 절구, 지게 등 다양한 옛 도구를 사용해볼 수 있는 ‘전통문화 체험공간’. 윤원규기자

■ 자물쇠는 왜 물고기 모양일까?

고양시 덕양구 원흥동에 터를 잡은 유진민속박물관(관장 유진구)에서 옛 사람들이 쓰던 다양한 물건들을 만날 수 있다. 튼튼한 가구에 달린 자물쇠가 물고기 모양이다. 왜 자물쇠가 물고기 모양일까. “물고기는 잠을 잘 때도 눈을 뜨고 자거든요. 그러니까 옛 사람들은 물고기 모양의 자물쇠를 만들어 물건을 잘 보관하려는 바람을 가졌던 것입니다.”

1층의 상설 전시실부터 둘러본다. 안내하던 학예사가 여인의 방으로 꾸며진 곳에 멈춰 서더니 베개를 가리킨다. “베개에 새겨진 문양이 예쁘죠? 저 글자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라는 뜻을 지닌 ‘목숨 수(壽)’자를 나타낸 것이라고 알려주면 아이들도 금방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저것은 희(囍)라는 글자인데, 즐겁고 화목하게 살라고 ‘기쁠 희(喜)’자를 두 개나 새긴 것이지요.” 여인들이 자수로 새긴 문양의 뜻을 들려주면 아이들도 금방 이해한다니 오색의 전통문양이 더욱 사랑스럽다. 선조들의 삶과 지혜가 담겨 있는 ‘한국의 전통농업’ 코너는 절구, 풍구, 탈곡기 등 희귀한 농기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쌀을 재배하고 수확하는 농기구부터 가마니, 멍석을 짜는 자리틀도 있어요. 이것은 옛날 비옷인 도롱이에요.” 대나무로 엮어 만든 통인데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족제비로부터 병아리를 보호해주던 작은 닭장이란다. 짚으로 엮은 달걀 꾸러미는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유물이란다. 전시된 유물이 아이들에게는 하나같이 생소한 것들이라 눈빛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인다고. 새색시가 시집을 갈 때 타는 꽃가마를 비롯해 전통혼례에 관련된 아름다운 의복과 우아한 장신구도 눈길을 끈다. 옛날에 떡 같은 다과를 만들 때 사용했던 ‘사기떡살’의 문양이 멋스럽다. 떡살을 보니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속담이 와 닿는다. 단체관람을 신청하면 학예사를 통해 자세하고 흥미로운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시골이 고향인 부모라면 아이에게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곁들여 들려주어도 좋을 것이다.

건물 중앙의 작은 정원에 고려시대에 만든 석탑이 우뚝 서 있다. 탑을 돌며 소원을 비는 ‘탑돌이’는 1천400년 전 선덕여왕도 참여했을 만큼 오래된 풍속이다. 전통예절과 다도를 배우는 다도실이 단아하다. 교육은 유진문화센터를 운영하는 송지연 관장이 담당하고 있다. 40년 넘게 유치원을 운영한 송 관장은 다도대회에서 장관상을 받았을 정도로 이 분야의 전문가다.

사모 관대 등 전통 혼례에 사용하는 다양한 용품을 살펴볼 수 있다. 윤원규기자

■ 문턱 낮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박물관

매년 마련하는 기획전의 주제가 흥미롭다. ‘속닥속닥 재미있는 음식이야기’(2014), ‘우리 이렇게 만났어요’(2015)는 절기에 따라 먹었던 우리의 음식문화를 살펴보는 흥미로운 기획이다. 2016년과 2017년의 기획전 주제는 ‘문양 속에 담겨져 있는 소망’이다. ‘기쁘고, 건강하고, 풍족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를 담은 이불과 베개, 병풍 같은 생활 소품들 전시하고, 관람객들에게 자신의 소망을 담은 문양을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유도하여 큰 호응을 얻었다.

2020년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유진민속박물관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관람객이 크게 줄어드는 현실에서 박물관이 집중한 것은 온라인 전시와 교육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전통의 힘과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을 꾸준하게 개발하고 있다. 사실 사립박물관은 의욕은 있지만 재정 형편이 어렵기 때문에 실행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유진민속박물관은 공모에 적극 참여하여 지원을 받아내는 것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참신한 기획력으로 다수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4월에 박물관이 학예인력 경력인정기관으로 선정되었다. 박물관이 설립된 2009년부터 기획전시와 교육, 지역주민 참여행사 등 다양한 사업을 꾸준히 진행한 것이 인정받은 것이다. 현재 박물관에는 학예사 두 사람과 교육사 두 사람이 활동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에 따라 특화된 외부강사진을 참여시키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유선영 실장은 학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박물관학을 전공한 전문가다. 참신한 기획력으로 다양한 공모에 선정되어 박물관을 체험 중심의 교육기관으로 발전시킨 주역이다. 현재 유진민속박물관은 경기도,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박물관협회, 경기도교육청, 경기마을교육공동체 등에서 지원을 받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블록으로 문양을 만드는 사업과 자개로 공예품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는데, 참여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진행하지 못하다가 온라인 콘텐츠로 제작하고 인터넷으로 신청을 받았다. 우편으로 교재를 배달하여 비대면 영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호응이 좋았다. “기대 이상의 반응에 깜짝 놀랐어요. 자개로 만드는 것은 처음일 것인데 판매를 해도 될 만큼 잘 만든 작품들이 많았어요.”

2014년부터 인근의 성사중, 내유초, 고양 관산초, 원당초 등 지역 학교들과 MOU를 체결하여 지역 학생들에게 문화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고양진로교육체험처(제26호, 2016년 지정), 창의지성 교육과정 배움 공동체(고양교육지원청)로 인정을 받아 역할을 확장하고 있다. 유진구 관장은 이런 전망을 밝혔다.

“지역민들이 많이 찾는 박물관이 세계적인 박물관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지역사회에서 양질의 교육컨텐츠와 좋은 전시를 꾸준히 열어나갈 계획입니다.”

유진민속박물관의 ‘유진’은 흐를 유(流)에 모을 진( ) 자를 쓴다. 흐르는 세월에 사라져가는 문화유산을 수집해 후대에 전승하려는 목적을 가진 유진민속박물관은 교육에 헌신한 부부의 의지로 설립되었다. 33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명예 퇴직한 유 관장과 40여 년 동안 유치원을 운영한 송지연 관장이 주인공이다. 유년기의 체험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신한 부부는 주말이면 인사동과 황학동, 때로는 제주도까지 돌아다녔다. “아이들을 교육할 때 옛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는 자료들을 보여주면 과거 조상들을 잊지 않겠지요.” 박물관 설립에 관한 질문을 던지자, 곁에 있던 유 실장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공을 굳이 따지자면 어머니가 70%, 아버지가 30%라고 할 수 있어요.”

 고양시 덕양구에 위치한 유진민속박물관은 흐를 유(流), 모을 진( ), ‘흘러다니는 것을 모아 놓았다’는 뜻으로 조상들의 삶과 문화를 공부,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유진민속박믈관 전경. 윤원규기자

■ 박물관의 변신은 무죄… 일편단심가에 담긴 고양의 설화

2020년 기획전시는 ‘고봉에 피운 일편단심가’이다. 일편단심가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라며 함께 혁명하자는 이방원의 제안을 거절한 정몽주의 시조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를 말한다. 이 유명한 시조에 뜻밖의 흥미로운 사연이 숨어 있다. 고양이 백제 땅이던 시절 이곳에 살던 미녀 한씨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는 것이다. 박물관에는 한씨 설화(한씨미녀와 안장왕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 놓았다. 이야기를 구성하고 벽화를 그린 이는 고양에 사는 김중석 그림책 작가다. 이처럼 박물관은 고양시의 정체성이 담긴 설화를 풀어내 관람객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옥상으로 나가면 체험공간이 펼쳐진다. 맷돌을 돌려볼 수 있고, 아이와 아빠가 함께 제기를 만들어 실력을 겨루고 팽이를 돌릴 수도 있다. 학원과 스마트폰에 빠져 놀이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 케케묵은 전통놀이가 통할까. 염려와 달리 아이들은 이내 전통놀이에 빠져든다고 한다. 손가락만 움직이는 스마트폰과 달리 온몸을 사용하는 것이 전통놀이의 매력이다. 박물관 앞쪽에 위치한 유진문화센터는 방과 후 학습이 가능한 교실과 실내 수영장, 그리고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커다란 카페를 갖추고 있다. “박물관은 온 가족이 함께 찾을 수 있는 나들이 공간입니다. 유익한 무료 체험학습이 많이 운영되니 지역주민들이 많이 활용하면 좋겠어요.”

흥미롭고 유익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는 관계자의 말에서 문턱을 낮춘 박물관의 장래가 밝게 느껴진다. 즐겁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관람객과 지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유진민속박물관의 변신은 계속되고 있다.

 아기오리가 주전자 뚜껑의 손잡이로 디자인된 무쇠 오리 주전자. 윤원규기자

이경석(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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