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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기도 박물관ㆍ미술관 다시보기] 31.시흥 오이도박물관

신석기시대로 떠나는 ‘타임머신’
1988년 본격적인 발굴조사… 유물들 ‘와르르’
2019년 7월 개관… 빗살무늬토기·도끼 등 전시
상설전시실, 바닷가 신석기인들 생활상 한눈에
체험실 들어서면 아이들 시간여행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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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항을 따라 시원하게 펼쳐진 해안선의 끝자락, 바다를 한껏 품은 오이도박물관이 있다. 조주현기자
오이도항을 따라 시원하게 펼쳐진 해안선의 끝자락, 바다를 한껏 품은 오이도박물관이 있다. 조주현기자

시흥의 작은 섬 오이도는 일제강점기인 1922년 군자만의 시화갯벌에 대규모 염전을 만들면서 길을 만들고 철도역이 생기면서 육지가 되었다. 1970년대까지 오이도 주민들은 바닷가에서 소금을 만들고 굴이나 모시조개를 캐며 살았다. 그러던 오이도가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선사시대 패총(조개무지)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부터였다. 오이도의 선사시대 유적지는 2002년에 국가사적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시흥시는 오이도의 선사시대 유적을 보존·연구하고 역사문화와 교육의 구심점으로 삼기 위해 2019년 7월에 오이도박물관을 개관했다. 지상3층, 지하1층의 박물관은 상설전시관과 어린이 체험실, 교육실, 수장고를 갖추고 있다. 연천의 전곡선사박물관이 선사시대를 주제로 세운 박물관이라면 시흥 오이도박물관은 신석기시대를 특화한 박물관으로 첨단시설을 두루 갖추었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콘텐츠들은 감각적이며 말랑말랑하다. “놀이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 오이도박물관의 자랑이자 강점이다. 오이도박물관을 둘러보면 “박물관도 이렇게 진화하고 있구나!” 놀라게 될 것이다.

 

관람객들이 상설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조주현기자
관람객들이 상설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조주현기자

■ 시민의 힘으로 지켜낸 오이도 유적

앞에서 소개했듯이 6천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오이도 유적은 1960년에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인 패총이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오이도 유적은 수천 년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다.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대학교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오이도 섬 전체에서 12개의 신석기시대 패총을 비롯해 초기 철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의 집터를 비롯한 생활유적과 유물이 발굴되었다. 그러나 오이도 유적이 처음부터 잘 보존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시화지구 개발 사업으로 몇몇 패총은 지금 형체도 알 수 없을 만큼 파괴되었다. 2000년대 초 오이도 안말 지역에 대한 수자원공사의 개발 계획이 알려지자 오이도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나섰다. ‘오이도 선사유적 보존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한 시민들은 오이도 패총을 보존하자는 운동을 힘차게 벌였다. 시민들의 꾸준한 활동으로 마침내 2002년 4월1일 오이도 패총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41호로 지정되었다. 시흥시는 2011년부터 오이도 유적을 정비하며 2018년 4월에 오이도 선사유적공원을 개장하고 이듬해 7월에 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신석기시대 주거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움집 재현물. 조주현기자
신석기시대 주거생활을 확인할 수 있는 움집 재현물. 조주현기자

■ 박물관은 놀이터다

1층 로비에 들어서면 눈길은 자연스레 밖을 향하게 된다. 바다가 한눈에 가득 들어오는 풍경이 좋다. 원형 기둥에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오이도 소망나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 오이도 사람들이 소망을 빌었던 당산나무를 형상화한 것이다. 움집처럼 생긴 둥근 천장을 보며 2층에 올라서자 아이들 세상이다. 벽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손으로 모래를 파내자 알록달록 예쁜 조개가 나온다! 거북이와 물개와 물고기가 둘러싼 물속에 몇 마리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을 친다. 손을 뻗어 잡으려하자 물고기들이 재빨리 달아나 바위틈에 숨는다. 디지털이 구현하는 영상이지만, 어른도 아이처럼 즐겁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놀기 좋은 2층 체험실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며 놀 수 있다.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삼십대의 젊은 엄마와 대여섯 살쯤 되는 여자아이는 박물관이 즐거운 놀이터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간파한 모양이다. 아이와 엄마가 서로 화명에 나타나는 도토리에 손바닥을 대자 점수가 올라간다. 도토리 줍기 대회에 모녀가 참여한 셈이다. 3층 상설전시관도 최첨단 기기들을 동원하여 신석기 시대를 재현하고 있다. 2층 체험실과 3층 상설전시관은 전시와 체험을 고루 섞어 오감으로 역사를 이해하도록 꾸며졌다. 여느 박물관과 달리 모두가 입체적이며 감각적이다. 작살 체험, 포토 그래픽 토기 만들기, 토기 퍼즐 조각 맞추기, 주거 공간 체험도 인기가 높다. 6천년 전 오이도에 살았을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모자를 쓰고 목도리를 한 여자들이 바위에 붙은 굴을 따고, 건장한 남자들이 창으로 멧돼지를 잡는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생활 현장 앞에 시흥에서 발굴한 관련 유물을 전시한 것은 참신한 발상이다. 밀랍인형으로 만든 신석기인들은 수천년 전에 펼쳐졌을 신석기 시대의 어느 날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이도박물관은 즐거운 놀이터다.

 

무덤에 넣는 작은 그릇인 명기. 조주현기자
무덤에 넣는 작은 그릇인 명기. 조주현기자

■ 6천년을 이어온 역사

6천년 전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따뜻하게 변화한 신석기시대에는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지형의 변화가 크게 일어났다. 육지였던 한반도의 일부가 바다에 잠기고 해안선이 생겨나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침엽수림이든 숲은 활엽수림으로 바뀌고 사람들은 삼면의 바닷가에서 물고기와 조개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숲에 들어가 도토리를 비롯한 나무열매를 줍고 조, 기장, 수수 같은 잡곡을 채집했다. 추운 기후에 살던 대형 동물들이 사라진 대신 멧돼지와 사슴 같은 동물이 살았다. 사람들은 활을 쏘아 노루처럼 날쌘 짐승을 사냥하고, 그물과 작살로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 곳곳에서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탔던 배와 이들이 사용했던 도구가 출토되었다. 흥미롭게도 오이도 선사유적에서 사람들이 오랫동안 거주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조개무지의 99%가 굴 껍데기인 것을 보면 오이도는 늦가을부터 초봄까지 이용한 야영지였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오이도에는 옛사람들이 살았던 수많은 흔적이 있다. 수천 년 세월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흑요석기는 비밀이 숨어 있다. 흑요석은 화산지대에서 나오는 것이니 이 흑요석은 백두산이나 한라산, 또는 일본에서 구해온 것일지 모른다. 날카로운 흑요석 화살촉은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먼 곳까지 여행했던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전시실에서 만나는 유물은 자연을 기대 살았던 옛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밴 물건들이다. 나무를 자르고 다듬던 돌도끼와 자귀, 단단한 뼈에 구멍을 뚫었던 돌끌, 곡식을 심기위해 땅을 일구던 돌괭이, 풀을 잘랐을 돌낫과 뼈낫도 있다. 상상력을 발휘하면 뼈로 만든 바늘 하나에서 선사시대 사람들의 일상의 모습을 그려볼 볼 수도 있다. 옥을 갈아 만든 꾸미개와 뼈를 갈아 만든 목걸이도 상상력을 부채질한다.

■ 빗살무늬토기에서 달항아리로

석기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살던 움막으로 들어가 보니 실내가 더욱 살뜰하다. 숯불이 타고 있는 움막 안에는 당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시렁에는 막대기에 날카롭게 간 창이 놓여 있고, 바닥에 놓인 토기에 도토리와 밤이 가득 담겨 있으며, 사람들이 토기에 음식을 요리하고 고기도 굽고 있다.

토기는 가장 흔한 선사시대의 대표유물이다. 오이도에서 발견된 빗살무늬토기에는 다양한 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점을 찍거나 선을 그어 만든 문양은 원, 삼각형, 마름모, 빗살무늬 등 다양하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왜 토기에 촘촘하게 점을 찍고 가지런한 선을 새겼을까. 점을 찍고 선을 그으며 누구를 생각했을까. 상상력을 펼치면 깨진 토기 한 조각에서도 옛사람들의 삶을 그릴 있을 것 같다.

토기는 철기시대가 되면 항아리로 모양이 진화한다. 전시실에는 삼국시대에 제작된 항아리도 여럿 있다. 시흥 장현동에서 출토된 달항아리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도자역사, 곧 시흥에서 청자와 백자를 생산했다는 사실이다. 방산동 가마터에서 청자와 백자와 벽돌로 축조된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접시, 발, 완, 주자, 항아리 같은 청자와 백자가 함께 발견되었는데 청자가 훨씬 많다. 자기 생산과 관련된 갑발, 도지미, 갓모 같은 도구들도 함께 출토되어 이곳이 초기 고려청자 단지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도자 유물 중에 앙증맞게 생긴 작은 그릇들도 있다. 박물관 준비부터 실무를 담당했던 학예사 김대홍 팀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가 솔깃해진다. “아이들이 무덤에 넣은 부장품인 명기(明器) 앞에서 제게 묻습니다. 선생님, 옛날 아이들도 소꿉장난을 했어요?”

고리자루큰칼, 투겁창, 도끼, 낫 같은 철리류와 시루, 항아리 같은 토기류가 발견된 무덤은 마한에서 백제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사람들이 사용했을 것 같은 청동숟가락과 청동거울 밑에 ‘조선시대’라는 패가 놓여 있다. 청동으로 만든 생활용품은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정수리에 튼 상투가 풀어지지 않도록 상투 위에 꽂아 머리를 고정시키는 ‘동곳’은 흔히 볼 수 없는 유물이니 친절한 설명이 있으면 좋겠다.

 

두드린무늬항아리. 조주현기자
두드린무늬항아리. 조주현기자

■ 시민들과 함께 하는 박물관

시화방조제의 시작점에 위치한 오이도박물관 앞 바다는 철새들의 낙원이다. 겨울이면 천연기념물 제326호인 검은머리물떼새를 비롯해 국제적인 보호종인 검은머리갈매기와 알락꼬리마도요 같은 철새들을 만날 수 있다. 시민들의 노력으로 갯벌이 살아났기 때문에 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김대홍 팀장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대답이 소박하다.

“모든 시민이 함께 하는 박물관이 되는 것입니다. 소박한 바람이지만 실행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더군요.”

김준영(다사리행복학교 행복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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