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도박 사이트

[이해균의 사할린 견문록] 3. ‘강제징용의 현장’ 브이코프 탄광 가는 길

강제징용 형 안타까워 따라나선 동생 부부… 끈끈한 가족애 실감

카지노 도박 사이트

브이코프 탄광에서, 브이코프 탄광
브이코프 탄광에서, 브이코프 탄광

우리는 한국식당 박대감집에서 고향 집 밥 같은 점심을 먹고 다시 한인 문화원으로 갔다. 이곳에서 자세한 안내를 받기로 했으나 준비가 안 된 관계로 2층 복도에 있는 사할린 한인사를 기록한 사진들을 감상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풍물 팀이 이곳 공연장에서 한인 공연단과 함께 내일 가가린 공원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 공연을 가졌다. 따라서 한인 관람객이 많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들이 주 관객인 셈이었다. 한인 3세들로 보이는 네 명의 공연단은 장고를 치기 시작 했다. 이 공연은 예상을 뛰어넘는 멋진 연주로 연속해서 박수를 받았다. 그들은 모두 여성들이었고 우리의 국악을 난타 형식으로 연출한 퓨전 국악이라고 해야 할 만큼 가장 현대화된 연주였다.

이 네 명의 청소년들은 사라져가는 한국문화를 가장 잘 이어가는 멋진 전통예술의 계승자들이라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이곳의 중년 여성들로 구성된 무용단의 공연이 펼쳐졌는데 개량 한복처럼 춤 또한 현대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 세련미가 있었다. 이어서 우리의 풍물 공연이 이어져 흥을 더했다. 사할린 청소년들의 화려한 공연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늘 보아왔던 익숙함 때문일까. 현란한 큰 춤사위에 한인들이 푹 빠져들기를 가슴조이며 바랬다.

처음 한수 가르쳐 주겠다는 의욕이 너무 앞서 절제하지 못하는 듯 했으나 공연 말미의 강강술래는 압권이었다. 이곳 한인들과 우리들이 한데 엉켜 끈끈한 정을 잇기에 충분했다. 역시 우리의 춤은 함께 감응할 수 있는 즉각적 멋과, 미학적 품격이 있어 스스로 자랑스러웠다. 공연이 끝나고 우리의 풍물 팀은 함께 공연한 한인 청소년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육할 의사를 표했고 주 사할린 한인회회장님은 우리에게 커다란 러시아 피자를 주문해주어 한바탕 친교의 파티가 벌어졌다. 한인문화센터는 구정, 어버이날, 추석, 등의 행사에 자주 이용되고 있다하니 다행이었다. 문학위원회는 이곳 한인문화센터에 그간 발행한 여러 권의 문학서적들을 기증했다. 아쉽지만 우리는 내일 가가린 공원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러시아 정교회와 승리광장으로 이동하는 도중 깔끔한 학교 하나가 있었다. 무슨 특수학교라고 했는데 이곳의 학생들은 대학에 가기까지 그러니까 1학년에서 11학년까지 모두 무료로 공부한다고 했다.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교육복지가 더 잘되어있는 듯 했다.

러시아정교회 대성당으로 갔다. 가는 길목에 한 러시아인이 “안녕하세요!” 라고 소리치는 바람에 잠시 인사를 나눴는데 한국말을 비교적 잘하는 청년이었다. 그는 한국의 수원에서 용접기술을 배우느라 한동안 머물렀다고 했다. 세상 참 넓고도 좁다. 성당의 외관은 여러 개의 첨탑이 금빛과 푸른빛으로 빛나고 있었지만 내부는 더욱 화려했다. 77미터의 4층 구조라고 하는데 2만 3천명을 수용한다고 했다. 러시아동방정교회는 스탈린의 종교정책으로 부흥하여 러시아인의 75%가 신도라고 한다. 중앙의 샹들리에는 어떤 각도에서도 볼 수 있는 펜타장식으로 삼위일체를 의미한다. 천국을 상징하는 벽화, 모든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출입구외에 성직자들만 출입한다는 지성소가 있는데 항상 동쪽으로 향하는 건축양식이다. 이곳은 사진촬영이 자유롭고 초를 사서 올릴 수도 있었다. 특이한 것은 의자가 없고 서서 예배를 본다고 한다. 물론 큰 기념일은 앉아서 예배를 본다고 하는데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고 입장하는 게 예의인 듯 보였다. 이곳의 촛불 아래에서 모두들 한번씩 기도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나도 두 손을 모았다. 그런데 기도가 집중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간 쌓인 죄가 너무 깊어 접속이 안 되나 보다.

정교회와 이웃하고 있는 광장이 전쟁기념관에 해당되는 승리광장이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예쁜 어린이들이 줄지어 들어갔다. 그 줄 뒤에 따라 들어가는데 이곳은 소지품 검색대도 있고 몸수색도 했다. 특이한 것은 웃통을 벗어 라는 것이다. 러시아의 전통 관습 같아 보였지만 느닷없는 지시에 기분이 좋을 수만은 없었다. 예전의 이곳은 탱크와 대포 등을 전시한 전쟁기념관이었는데 2년 전 모두 없애버리고 승리박물관으로 재탄생한 것이라고 한다. 1941년~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광장으로도 불려졌다. 광장 가운데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상 가장 많이 생산되었다는 T-34 탱크가 하양받침대위에 오른 채 전시되어 허공으로 포신을 겨누고 있었다. 러시아는 2차 대전 때 나치 독일에 승리했지만 이곳 사할린은 미국의 원폭 투하로 일본이 항복하는 바람에 자동 해방이 된 격이다. 이 박물관은 전쟁 당시의 또는 그 이전의 러시아 역사를 함께 아우르는 전쟁기념관 역사박물관을 겸하고 있는 형태였다. 우리는 다시 한인문화센터에 있는 한국관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가가린 공원을 가로질러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 밤은 방 배정이 달라 원래의 2인실 방에서 묵게 되었다. 좋은 것을 좋게 느끼지 못한 어제 밤이 아쉽고 그립다. 하긴 아무리 좋은 방이 있으면 무얼 할꼬. 그 방이 그 방일 뿐이지. 이웃 방에 마실 갔다가 보드카 몇 잔을 축이고 잠자리에 든다. 손오공과 저팔계 같은 류연복, 전기중 이 두 분의 방 배정은 절묘한 것 같다. 날렵함과 우직함의 밸런스 같은. 나의 룸메이트도 선배에게 예의를 갖추는 예기치 못한 존경심이 있음을 발견하여 내심 흐뭇했다. 마음에 뜬 별빛 충만한 밤이다.

러시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

브이코프 탄광 가는 아침, 식사 후 가가린 공원을 잠시 산책한다. 산책은 욕망을 씻는 것, 여행은 목적지가 있지만 산책은 목적지가 없다. 소크라테스의 산책, 아카데모스의 정원에서 플라톤이 했던 산책,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철학학교에서 한 산책도 각기 다른 미학이 있다. 장그르니에는 그의 저서 일상적인 삶에서 칸트의 유익한 저녁산책은 규칙적인 휴식에 불과했지만 니체의 산책은 저작들을 탄생시킨 자양이었다고 했다. 내 그림은 내 마음의 통로다.

3ㆍ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본지식인들이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야말로 한일 북일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열쇠다. 상호 이해 상호 부조의 길로 나가야 할 때다” 라고 일본의 위정자들에게 촉구한 신문기사를 본적이 있다. 일본 지식인들도 반성하는 과거사라고 보았을 때 강제징용배상문제는 반드시 일본이 받아들여야함에도 오히려 경제 보복을 하는 적반하장의 작태가 분하고 누추해 보일 뿐이다. 경제보복을 넘어서 과거의 정한론이 떠오르는 정치적 모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브이코프 가는 버스에 새로운 현지가이드가 등장했다. 한인2세 장년의 남자다. 강제징용 오게 된 아버지가 안타까워 숙부 숙모가 함께 따라나섰다니 그들의 가족애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가이드의 아들(한인3세)은 어제 본 특수학교 김나지움에서 영어교사로 있다는 걸 강조하며 은근 자량을 하신다. 언뜻 김나지움이라는 말이 향수적으로 떠올랐다. 가만 생각해보니 학창시절 헤르만 헤세를 좋아해서 그의 수많은 책들을 읽게 되었는데 이 김나지움이라는 말과 수도원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했었다. 궁금하여 다시 확인해 봤더니 독일의 중등교육기관을 일컫는 말이 맞았다. 사할린은 슈클라(11학년제, 초중고교)라는 학년제가 있었다. 브이코프 까지는 유즈노 사할린스크에서 65㎞이며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고 했다. 도로는 예상보다 괜찮은 편이었는데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브이코프를 20여㎞를 앞두고 갑자기 버스가 덜컹대기 시작했고 결국은 문제가 발생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바퀴 축에 무엇인가 걸려 회전이 되지 않는 고장이 발생한 것 같았다. 일행은 대부분 내렸다. 이상한 것은 누군가가 걸어가자고 했을 때 모두들 자연스레 따라 걷는 것이었다. 도보로 1시간이 넘게 걸릴 길을 진짜로 걸어가는 대한의 건아들 참 대단했다. 결국 다른 버스가 온다고 하여 멀리 갔던 분들도 돌아왔지만 장시간 원치 않는 휴식을 하게 되었다.

 

러시아정교회 내부
러시아정교회 내부

이해균 수원민족미술협회 회장

© 경기일보(committingcarbicide.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