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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즉위 600돌_대왕의 꿈이 깨어난다] 1. 프롤로그-왜 세종인가

“나라의 근본은 백성” “밥이 하늘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한 왕,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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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대왕 즉위 600돌을 맞았다. 세종의 민본주의와 인문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되새겨야 할 귀중한 정신유산이다. 사진은 세종과 소헌왕후 합장릉. 여주에 위치해 있으며, 지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5호로 지정됐다.

“공을 쌓고 인(仁)을 쌓아 나라를 세우고, 덕을 닦아 후손에게 복을 내림을 깊이 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부왕(父王)이 그를 계승하여 20년을 내려오시다가, 근일에 병에 걸리시어 청정(聽政)하시기 어려우매, 이에 덕이 적은 이 몸에 명하여 대업을 이어받게 하시었습니다. 생각하옵건대, 위로는 조종(祖宗)의 유업을 계승하지 못할까, 아래로는 신민(臣民)의 기대에 맞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리하여 재삼 사양하였으나 마침내 부왕의 윤허를 받지 못하고, 이에 영락 16년 8월 초10일에 공손히 대위를 받자왔사오니, 이로써 감히 고하나이다.”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 1권)

600년 전 왕위에 오른 세종의 이 말을 시작으로 세종 르네상스가 펼쳐졌다. 1418년 즉위한 이후 세종이 통치한 32년 동안 조선은 정치, 경제, 군사, 문화, 과학 등 다 분야에서 발전을 이끌어냈다.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히는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해 물시계·해시계·측우기 등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는 곧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농업과 의료, 교육 분야의 발전으로도 이어졌다. 이 배경에는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민본주의가 있었다. 또 사람을 중시하는 인문학이 밑바탕이 됐다.

세종의 업적은 무엇보다 세대, 지역, 이념 등으로 사분오열된 현 시대에 던지는 교훈이 크다. 그의 포용의 리더십은 현 시대는 물론 미래 세대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될 수 있다.

 

본보는 세종 즉위 600돌을 맞아 세종대왕릉이 있는 세종인문도시 여주를 찾아, 세종의 민본주의와 인문정신 등 업적을 재조명해,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 세종대왕 어진
▲ 세종대왕 어진
■ 세종대왕 여주에서 영면

경기도 여주시에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다. 여주시 능서면에 있는 영릉은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영릉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왕릉 중 하나다. 조선 왕릉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0기에 달하는데 그중 여주에 있는 영릉이 대표적이다.

 

여주는 세종대왕의 외가다. 세종대왕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셋째 아들이다. 세종의 친모인 원경왕후 민씨는 여흥 민씨다. 여흥은 여주의 조선 초기까지의 지명이다.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여주 상류에는 여강 물줄기를 순화시켜 여주를 지켜낸 마암이라는 바위가 있다. 이 마암 굴 속에서 여흥 민씨의 시조인 민칭도가 태어났다고 한다.

 

원경왕후는 민칭도의 11세손 문도공 민제의 둘째딸이다. 원경왕후의 고향이라는 이유로 여흥군은 1401년 한 단계 격을 높인 여흥부가 됐다.

 

어머니인 원경왕후는 조선 때 여주의 격을 높였고, 아들인 세종대왕은 여주에서 영면해 여주를 ‘세종대왕의 도시’로 만들었다

 

여주에 얽힌 모자의 연이 깊다. 절친했던 동기인 누나 경안공주의 묘역도 여주에 있다.

 

왕이 궁을 벗어나 외부로 나가기 어려웠음에도 세종이 여주를 방문한 기록이 역사적으로 세 차례 남아 있다.

 

세종은 강무에 참여하기 위해 여주를 방문했다. 조선 초기 강무는 군사의 조련과 사냥을 함께하는 무예연습으로 임금의 필수 업무로 꼽혔다. 태종 17년 태종과 세자, 두 대군이 여주를 찾았고 세종 1년 두 임금이 여흥 금당천 가에서 숙박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세종 3년에도 효령대군과 우의정 이원 등이 여흥 팔대숲에서 점심을 먹었다는 부분이 있다.

 

본래 세종의 묘는 여주가 아니라 서울에 있다. 세종과 소헌왕후 합장묘는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당시 광주)헌릉 서쪽에 쌍실로 조영됐다. 그러나 세조대 영릉의 터가 불길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후 예종때 지금의 여주 자리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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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릉 내 전시관인 세종관

■ 세종대왕과 인문학…사람이 중심

세종 정치의 바탕은 민본주의다. 민본은 말그대로 ‘백성이 근본’이라는 뜻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문학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세종은 인문 전략을 펼친 군주였다. 칼과 활을 내세우기보다 책과 음악으로 인심을 얻었다. 복지부터 국방까지 단계별로 정책을 시행했다.

 

백성들의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질병과 의학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 그 다음에는 나라를 안정되게 하는 국방 정책 등을 이어갔다.

 

신하들과 함께하는 경연(經筵)에서는 인문고전을 활용했다. 또 세종대왕은 백성에게 ‘밥이 하늘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은 가장 중요한 사람의 문제를 꿰뚫는 것이었다. 백성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터전을 위해 법을 제정하고 더 나은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책을 통해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게 되는 길을 발견하며, 예의를 지켜 서로 겸양하는 나라가 되기를 꿈꿨다.

 

시간 개념을 보급하기 위한 해시계와 자격루 개발, 일상 소통과 기록을 위한 훈민정음 반포도 결과적으로 백성의 삶과 생각 수준이 향상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또 음악을 체계화하고, 다 분야에서 서적을 간행해 백성들이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삼강행실도 등을 편찬해 양보하고 존중하는 사회풍토를 만들기도 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지정된 영릉이 있는 여주시는 지난 2015년부터 <세종인문도시 명품 여주> 기초계획 수립을 시행하고, 이어 2016년 7월 1일 <세종인문도시 명품 여주> 선포식을 개최했다.

 

영릉을 단순히 관광자원으로만 활용하는 것을 벗어나 세종의 인문정신을 문화, 교육, 도시재생 콘텐츠 등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현재 여주는 관광, 문화예술, 교육, 교류, 농업, 도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종대왕의 인문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올해 세종 즉위 600돌을 맞아 국제학술대회와 한글디자인포럼 등 ‘세종대왕’ 콘텐츠도 확대하며 세종대왕문화제도 펼친다. 세종대왕 즉위한지 600년, 승하한지 568년이 지났다. 아직까지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과제다.

 

세종은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가장 잘 구현한 군주로 꼽힌다. 인문학 열풍이 불 정도로 많은 사람이 현세에서 인문학을 답으로 꼽지만 구체적으로 방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워 한다. 이에 대한 답을 세종대왕의 민본주의와 인문정신에서 찾아야 한다.

 

본보는 세종대왕의 마지막 숨결이 깃든 여주를 찾아 세종을 만나 그 답을 묻고자 한다.

 

류진동, 손의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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