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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면서] 남극의 심리학

최영준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제11차 월동연구대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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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장보고과학기지는 동계 기간 고립된 공간이다. 반경 350㎞ 내에 인간은 기지에서 월동하는 18명밖에 없기에 지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도 고립된 공간이다. 이 지역은 얼음을 제외하고 흐르는 맑은 물도 전기도 없는 곳이기에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생산한다. 아직 남극 대륙과 문명 세계를 잇는 해저케이블도 없기에 이곳에서 유일하게 문명 세계와 연결되는 것은 위성통신망뿐이다.

 

문명 세계에서는 인터넷이 비록 가상일지라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만 인터넷 화면을 내려놓고 바깥으로 나가면 만나는 현실은 눈과 얼음뿐이다. 내 머릿속 세상과 바깥에서 마주한 현실의 차가 클 때 그 고독감은 배가 된다. 고립된 현실이 해가 뜨지 않는 극야와 맞물려 생겨나는 고독감을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월동 생활에 있어 성공을 결정하는 큰 요인 중 하나다.

 

또 하나의 요인은 인간관계가 매일 마주하는 18명으로 제한된다는 점이다. 인터넷을 통해 외부 소식을 접하더라도 결국 현재 내 삶 속에서 큰 영향을 받는 일들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 생활 공간에 정해진 인원만으로 계속되는 일상은 사고(思考)와 신경(神經)의 폭을 극히 제한한다. 바깥세상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만한 일들도 이곳에서는 제한된 사고 범위 속에서 고요한 연못에 던져진 돌처럼 계속되는 증폭작용으로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이 고요한 증폭작용을 멈추기 위해선 영상을 보거나 가무(歌舞) 활동을 통해 요즘 한국에서 자주 회자하는 ‘도파민’ 자극을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심리적 고립이 일어나는 환경에서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이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한 사람의 감정이나 태도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기에 구성원 중 하나로서의 나의 태도와 심리적 통제가 아울러 중요하다. 한 사람의 심리적 분출은 타인에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함께 시끌벅적 이야기하고 활동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또 반대로 개인들에게 독립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도 필요하다. 이처럼 남극은 심리적 ‘밀고 당기기’가 일어나는 복잡하고 세밀한 심리 활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런 심리적 ‘밀고 당기기’는 제한된 물자 배분과 맞물려 심리적 작용과 반작용 활동을 만들어 낸다. 제한된 물자라도 과감하게 풀어 놓으면 소비 속도가 빠르지 않고 계속 놓여 있지만 무엇인가 소비 속도의 변화로 특정 물품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 그 물품은 내놓는 즉시 소진돼 버린다. 그렇기에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또 다른 심리적 ‘밀고 당기기’를 통해 제한된 만족을 위한 최적점을 찾아내야 한다.

 

다행히 필자가 속한 제11차 월동대는 상호 존중과 배려 깊은 마음으로 생활해 큰 무리 없이 극야 기간을 잘 보내고 남극 횡단산맥 뒤편에서 점점 밝아오는 여명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고 있다. 남극과 같은 고립된 환경에서 한국인의 심리적 활동에 관한 연구가 적어 아쉬움이 있지만 ‘제한’ 속에서 더 도드라지는 심리 활동 공간이기에 남극 연구의 지평이 심리학으로도 넓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