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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 위에서] 천상의 화원 ‘돌로미티’서 황홀한 여름날

이탈리아 북동부 알프스산맥 ‘돌로미티’
3천m급 봉우리 18개·12개의 빙하품어
케이블카·체어리프트 등 운송 수단 갖춰
7월에 눈 뒤덮여... 한여름의 눈길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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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페디시우시 전경. 김남희 여행작가

 

여름의 돌로미티는 야생화 천국이었다. 금매화, 고산양귀비, 아네모네, 뱀무, 와일드제라늄, 미나리아재비, 불가리아장구채, 범의꼬리.... 어디를 둘러봐도 황홀한 꽃길이었다. 살아가는 동안 꽃길만 걷는 행운은 찾아오지 않았지만 여름날 며칠 정도 꽃길을 걷는 운은 주어졌다. 제주도 면적의 여덟 배 크기인 돌로미티 산길의 어디에나 들꽃이 피어나지만 그중 최고는 알페디시우시. 천상의 화원이 있다면 여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가지 꽃만 집중적으로 심어 재미없는 인공정원이 아니다. 해마다 다양한 꽃들이 피고 지고, 그 씨가 떨어져 다시 피어나기를 반복하며 이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풍경을 만들어 왔다. 발을 디디는 곳마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펼쳐지는 끝없는 꽃길을 내내 두근거리며 걷게 된다.

 

이탈리아 북동부의 알프스산맥인 돌로미티는 3천m급 봉우리 18개, 12개의 빙하를 비롯해 수많은 계곡과 봉우리를 품었다. 최고봉은 3천343m의 마르몰라다. 올해가 세 번째 트레킹인데 그 장엄한 아름다움에는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여기가 인간계인가 신계인가 싶은 의문이 들 정도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돌로미티가 인기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케이블카, 곤돌라, 체어리프트 등의 다양한 운송 수단으로 고도 3천m까지 쉽게 접근이 가능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시설을 갖춘 산장이 즐비하다는 점이 아닐까. 또 우리나라 산길마다 걸려 있는 현수막이 전혀 없고 덱이나 매트를 깐 길이 없는 점도 훌륭하다. 이정표 및 울타리는 꼭 필요한 곳에만,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다. 한마디로 눈에 거슬리는 풍경이 전혀 없다.

 

체어리프트를 타고 돌로미티를 올라가는 트레커들. 김남희 여행작가

 

올해는 2년 전과 똑같은 시기에 왔는데 일부 구간의 풍경이 완전히 달랐다. 7월인데도 눈이 뒤덮여 있었다. 라가주오이 산장에서 팔자레고 고개까지 걸어 내려오던 길도, 사소포르도이에서 피츠보에산을 향해 걸었던 길도 깊이 쌓인 눈으로 인해 걸음이 느려졌다. 한여름에 눈길을 걷는 일은 낭만적이지만 누군가 넘어져 다치기라도 할까 봐 신경이 쓰였다. 포르도이 고개에 머물 때 숙소 주인 나디아가 말했다. “올해는 날씨가 너무 나빴어. 6월에도 큰 눈이 왔고 정말 추웠어.” 문득 2년 전 여름이 떠올랐다. 우리가 돌로미티 최고봉 마르몰라다를 바라보며 트레킹을 하던 날, 전날 비정상적인 고온으로 빙하의 거대한 부분이 떨어져 내렸다. 그 사고로 11명이 사망했다. 이제 안전한 여행의 시대는 끝났음을 실감했다. 기후위기는 여행자의 안전도 위협해 언제 어디서 홍수, 폭설, 산사태를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렇다 해도 여행을 멈추지 못하는 나는 그저 위험을 감수하며 다니는 수밖에.

 

광대한 돌로미티 중에서 인기 있는 지역은 베네토주와 트렌티노알토아디제주에 속한다. 이 중 후자는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영토였다. 독일어와 이탈리아어가 같이 쓰이는 곳인데 음식과 언어를 비롯해 오스트리아 문화의 영향이 짙게 남아 있다. 1차 대전 중에는 이 지역을 놓고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가 산악부대를 결성해 격전을 치렀다. 팔자레고 고개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면 고도 2천752m의 라가주오이 산장. 그 주변에는 그 당시 뚫었던 3㎞ 길이의 바위 터널이 그대로 남아 있다. 돌로미티의 상징과도 같은 바위 봉우리 트레치메디라바레도 근처의 로카텔리 산장도 산악전쟁의 무대였다. 새벽에 트레치메디라바레도로 일출 산행을 했던 날, 가이드는 산길에서 1차 대전에 쓰인 무기의 파편들을 주워 보여주기도 했다. 포르도이 고개에는 8천500명의 전사 군인이 묻힌 영묘도 있다. 사소포르도이를 비롯한 웅장한 바위 산군에 둘러싸인 영묘 주변에는 솔채꽃, 톱풀, 캄파넬라 같은 들꽃들이 침묵 속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이제 전쟁의 참화는 간 데 없고 돌로미티는 그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을 뿐이다.

 

이탈리아이면서 이탈리아 분위기가 아닌 이 동네에서 나는 숙소의 주인이나 택시기사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곤 했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가 축구를 하면 누굴 응원해?” 그럴 때마다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당연히 이탈리아지!” 1950년대까지는 오스트리아계에 대한 탄압과 차별도 심해 어려운 시기를 견뎌야 했지만 지금은 전혀 아니라면서.

 

소라피스 호수 전경. 김남희 여행작가

 

올여름에는 3주간 돌로미티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내가 꾸리는 트레킹 그룹 방과후 산책단과 함께, 두 번째는 나 홀로, 마지막은 가족과 함께였다. 덕분에 새로운 길 몇 곳을 걸어볼 수 있었는데 그중 소라피스 호수의 물빛을 잊을 수 없다. 소라피스는 올라가는 길이 제법 험했다. 그 대신 숲이 한쪽으로 시원하게 뚫려 있어 장엄한 바위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크리스탈로, 포페나, 트레치메디라바레도 같은 산들이었다. 벼랑 위로 난 좁은 길에 쇠줄을 잡고 건너가야 하는 구간도 있었다. 1천928m 높이까지 두 시간 반을 오르고 나니 숨어 있던 호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흘렀다. 이 세상 물빛 같지 않은 청명한 에메랄드 빛이었다. 소라피스 빙하가 녹은 물이 운반해 온 미세한 암석 먼지가 만든 옥색이었다.

 

김남희 여행작가

산책단이 돌아간 후에는 혼자서 돌로미티의 작은 마을을 찾아가 머물렀다. 오르티세이나 코르티나담페초보다 덜 알려진 브릭슨, 골포스크, 산칸디도 같은 곳이었다. 혼자 다닐 때는 발걸음이 유독 가벼웠다. 책임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걸을 수 있어 좋았다. 나흘 후, 서울에서 동생네 가족이 날아왔다. 돌로미티의 장엄한 풍경은 사춘기를 맞아 매사에 시큰둥하던 중 3 사내아이조차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이번에는 트레킹이라기보다 ‘케이블카 산책단’이었다. 트레치메디라바레도 같은 곳은 4시간을 꼬박 걸어 그 풍경을 누렸지만 다른 많은 곳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짧게 걷고 다시 케이블카로 내려오는 식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안구 정화’가 된다며 다들 만족했지만 나는 좀 애가 끓었다. 저 산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데... 그래야 저 풍경을 몸에 새길 수 있는데.... 아이들과의 여행은 그런 욕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내가 감동한 부분에서 아이들도 감동하기를 바라는 건 터무니 없는 욕심이었다. 그저 조카들과 돌로미티에서 여름날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이곳에서 보낸 여름 휴가를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