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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18. 파주 콩세유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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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세유는 불어로 ‘충고, 조언’이란 뜻으로 콩세유 미술관은 예술의 멘토, 멘티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을 모토로 하고 있다. 미술관 전경. 윤원규기자

 

용미리 공원묘지가 있는 파주시 광탄면에 자리한 콩세유미술관(관장 정미애)은 이름부터 ‘타인지향형’이다. “프랑스어 ‘콩세이(conseil)’는 조언, 상담, 충고의 뜻을 가진 단어이고 뒤에 붙은 ‘유(you)’는 ‘너’라는 의미를 담았지요. 즉, 콩세유는 ‘너에게 조언한다, 너를 도와준다’라는 뜻입니다. 예술가로 세상을 혼자서 살 수 없듯이 예술로 사람들에게 충고도 듣고, 조언도 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미술관의 설립 이념과 운영 철학이 ‘콩세유’라는 이름에 담겨 있다.

 

'여행에서 두고 온 풍경' 전시가 열리고 있는 특별전시장 전경. 윤원규기자

 

■ 삶을 풍요롭게 가꾸는 미술관

 

이용진 학예사의 안내로 현재 진행 중인 초대전 ‘여행에서 두고 온 풍경’을 감상한다. 이달 31일까지 진행하는 초대전의 작가 나윤찬 화백은 팔순의 고령이지만 국민은행, 삼성생명, 제일은행 등 달력 작가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동과 행복을 가득 담은 작가의 작품은 색과 선과 공간 모두 여유롭고 편안하다. 전시실 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 정면에 배치한 그림을 감상하며 빙긋 미소를 짓는다. 시원하게 느껴지는 작품을 의자 앞에 배치해 청량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주 전시실 주변으로 작은 전시실에서도 수준 높은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전각으로 유명한 고암 정병례, 한국화가 최창봉 등 유명 작가의 수준 높은 작품을 만난다.

 

커피를 마시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콩세유카페 전경. 윤원규기자

 

갤러리 1층 카페도 전시실과 별다름이 없다. 특히 카페 전면에 걸린 대형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해바라기와 장미가 가득한 화면 중앙에 하얀 산양이 바다 한가운데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다. 산양은 작품과 미술관 곳곳에 등장한다. 출입문에 그려진 그림도 산양이고, 미술관 입구에 있는 조각 작품도 산양이다. “그 산양은 ‘미미’란 이름을 가진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입니다. 미미라는 이름은 아름다울 미(美)와 산양 미(未)가 더해진 것이지요.” 소나무 숲에서 길을 잃고 잠에서 혼자 깨어난 미미가 가족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애니메이션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정미애 관장은 열정적인 현역 작가다. 삶의 지혜가 묻어나는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어렸을 때부터 붓을 잡고 놀았어요. 버스로 10시간 걸려 인사동까지 가서 아버지가 물감을 사다 주시고, 직접 데려가서 그림 구경을 시켜 주시기도 했습니다.” 대학에 다니던 22세 때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작가는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미국, 프랑스 등 다양한 곳에서 전시를 열었다. 그러다 2005년 ‘여인’ 연작으로 미술계의 주목을 받고 입지를 다진다.

 

상설전시실에서는 고양이들과 함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윤원규기자

 

■ 금강송과 산양 ‘미미’가 들려주는 이야기

 

금강송이 유명한 경북 울진이 고향인 정 관장은 울진의 명물인 금강송과 산양을 즐겨 그린다. 금강송 사이에서 뿔이 달린 하얀 산양을 발견한다. 금강송과 산양이 등장하는 작품 속에 정 작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이 투영돼 있다. 작가의 아버지는 어린 딸을 소나무 숲에 데려가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아이가 길을 잃은 채 잠들었다가 눈을 떠 보니 어떤 집에 와 있더라. 그 아이가 양부모의 도움으로 훌륭하게 자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중학생이 됐을 때 드디어 알게 된다. 이야기 속의 어린아이는 바로 아버지 자신이라는 사실을. 딸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나무 숲에서 산양을 보곤 했는데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산양이 마치 아버지 같다고 생각한다.

 

현재 작가는 이 이야기를 작품에 담고 있다. “내 유년의 추억은 소나무 숲에 머물고 나는 지금도 그 숲속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정미애 작가가 ‘춤추는 소나무’ 연작을 전시할 때 한 말이다. 2층 전시실에서 만난 ‘소광리 숲’(2018년)은 쭉쭉 곧게 뻗은 소나무들로 가득하다. 솔숲 사이로 난 오솔길에서 솔향이 풍겨나는 듯하다. ‘노을진 솔숲’(2019년)은 붉은 솔밭 중앙으로 태극처럼 난 길이 관람객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석양에 붉게 물든 솔숲의 환상적인 풍경이 음악처럼 펼쳐져 춤추는 듯 생동감이 넘치는 화면 구성은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새삼 일깨운다.

 

상설전시실에서는 고양이들과 함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윤원규기자

 

작가 아버지의 유년 경험을 담은 듯 ‘집으로 가는 길’은 꾸불꾸불한 미로여서 길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 2018년의 작품인 ‘달과 함께 춤을’에 등장하는 달과 소나무도 춤추듯 어우러져 있다. 작가는 이렇게 고백한다. “늘 봐왔던 어린 시절의 소나무는 내 애정의 시작점이자 작품의 원천이 됐다.” 연작 ‘숨바꼭질-산양아 어디있니’에는 어린 소녀가 등장한다. “내 그림 속의 산양은 그리움이고 사랑이다.”

 

이처럼 정 관장의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소녀와 산양은 유년의 체험과 그리움이 깊이 스며 있다. 우리나라 산양은 현재 멸종위기 1급 동물로 개체 수가 1천마리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무분별하게 사냥하던 일제강점기에도 용케 살아남았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 동물이다. 소나무 숲에서 길을 잃어버린 소년의 체험을 바탕으로 멸종위기 동물인 산양을 통해 자연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작업실에서 반추상적인 덧칠 기법으로 그린 800호 대작 ‘춤추는 소나무’(2019년)와 마주한다. 소나무 숲에 진달래가 피어 있고 언덕 너머로 초가집 마을이 보이는 봄날의 풍경이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진 굵은 소나무들이 마치 바람을 받아 춤을 추는 듯하다. 소나무 숲에 노란 황톳길이 강줄기처럼 지나가고 있다.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 하얀 짐승은 물론 산양이다. 작품의 구성도 재미있다. 작품 아래나 위로, 왼편이나 오른편으로 연결해도 구성이 자연스럽다.

 

작가 역시 사연이 많다. 미숙아로 태어나 살 가능성이 희박했던 작가를 아버지가 각별하게 보살폈다. 마지막 순간에도 아버지는 화가를 꿈꾸는 딸에게 꿈을 버리지 말라고 당부한다. 작가는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2017년부터 제작을 시작한다. 어릴 적 소나무 숲에서 아버지가 들려준 그 이야기, 아버지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다. 아버지는 딸이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함께 소나무 숲을 거닐며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려준다. 버려진 아이도 삶을 살아갔듯이 얼마든지 그 아이처럼, 산양처럼 잘 살 수 있다는 걸 어린 딸에게 끊임없이 알려준다. 아버지의 사랑 이야기가 캔버스에 담겨 있다. 그림은 다시 음악으로 진화해 애니메이션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여행에서 두고 온 풍경'에서 전시되고 있는 다양한 작품들. 윤원규기자

 

■ 이웃과 더불어 지역과 함께

 

콩세유미술관을 개관한 2020년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 미술관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10월 개관 기념전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전시회를 열었다. ‘송환아 초대전’을 비롯해 10여 중견 작가의 초대전을 열었다. 또 ‘강록사 고려불화재현전’, ‘With 코로나: 소장품전’, ‘1종 미술관 등록기념 초대전-공존’, ‘무병장수: 호랑이 세화전’, ‘초대전-봄’, ‘오진윤 오정 2인전: 단색화 & 달항아리’, ‘혜음령 토끼 이야기’, ‘악의 꽃’, ‘파주 평화를 품다’, ‘에너지 페인팅’, ‘수채캘리전시회’, ‘화인전 그룹 초대전’을 열었다.

 

한편 지역민을 위한 미술 프로그램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2022년 여름, 파주 우수 프로그램 사업의 일환으로 8주간 ‘그림을 통한 나의 재발견’을 주제로 파주 적십자 봉사원을 대상으로 미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가을에는 이들과 함께 김치와 반찬을 만들어 이웃에 나누는 ‘희망나눔, 반찬나눔’에 후원하고 동참한다.

 

지난해에는 파주시 5060 신중년 프로그램을 통해 가죽공예, 아크릴 페인팅을 시민들에게 지도해 큰 호응을 얻었다. 콩세유미술관은 그 이름처럼 지역과 이웃에 위로와 격려가 되는 문화예술의 푸른 숲이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