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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카페] 물, 탄생과 소멸의 이중적 상징

김소영 한국외국어대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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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 지나고 있다.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일찍 시작됐기에 장마는 어떨지 사뭇 걱정스러웠다. 이제는 기후위기 혹은 기후변화가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도래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도 많다. 새삼 물, 공기, 햇살과 같은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실감하는 나날들이다. 퍼붓는 장맛비를 보노라면 외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안전이 걱정된다. 미끄러운 빗길을 걸어가는 어르신들도 염려스럽다.

 

곡식이 자라려면 비가 와야 하듯 물은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지키는 근원적인 물질이다. 인간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의 70%가 물인 걸 보면 만물에게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그런데 물은 생명의 탄생과 보존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죽음과 파멸의 상징이기도 하다. 물의 이러한 이중적 상징은 대표적으로 성경에서 발견된다.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가 하면 노아의 방주에서는 파멸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영화에서도 물의 이중성은 자주 활용된다. 생명의 탄생을 상징하는 유명한 장면으로 일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1995년)를 들 수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사이보그인 구사나기 모토코는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물속으로부터 상승하며 하나의 기계 생명체로 완성된다. 여기서 물은 어머니의 자궁 속 양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이보그도 인간처럼 탄생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구사나기의 취미도 잠수나 수영이다. 이처럼 물에 몸을 담그는 행위는 자궁 회귀적 본능을 은유한다. 이는 태아가 어머니의 자궁 속 양수에 있을 때 느끼는 평안함을 뜻한다.

 

한편 물을 특수한 영화적 공간으로 활용하는 독일의 베를린파인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영화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운디네(Undine)’(2020년)는 설화에 등장하는 물의 정령 운디네를 변주한 작품으로 영화의 제목이자 여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하다. 도시개발 전문 역사학자이자 박물관 관광 가이드인 운디네는 연인 요하네스에게 실연당한 뒤 산업 잠수사인 크리스토프와 우연히 만나면서 사랑에 빠진다. 흥미로운 점은 강, 풀장, 호수, 바다 등과 같은 여러 물의 공간을 중심으로 등장인물의 죽음이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영화 속 물의 공간은 대부분 죽음의 장소들이다. 그러나 크리스토프가 죽은 줄 알고 자살한 운디네와 그녀가 죽는 순간 소생한 크리스토프가 재회하는 곳 역시 물의 공간인 바다다. 지난해 개봉한 페촐트 감독의 ‘어파이어(Roter Himmel)’(2023년)는 산불을 다루지만 여전히 여름 바다에서 벌어지는 청년들의 일상 속 내면적 심리를 쫓는다.

 

장마철엔 비가 그만 내리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리쬐는 뙤약볕도, 쏟아지는 폭우도 한여름의 자연 현상이다. 이 무덥고 습한 하루하루에 지치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챙겨야겠다. 물을 소재로 하는 좋은 영화를 찾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혹여 영화 운디네를 본다면 아름다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오는 바흐의 곡도 놓치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