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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 위에서] 지중해 도시 니스에서 ‘샤갈의 블루’에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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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의 오래된 항구 모습. 김남희 여행작가

 

이른 아침의 항구에는 신선한 빛이 번져 가고 있었다. 나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빛이었다. 부드럽고 투명하면서도 농밀한 빛.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그려내고자 했던 인상파의 성지는 태양신을 숭배하는 나에게도 성지. 성지를 순례하는 마음으로 경건하게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문제는 신전을 찾아온 신자의 드레스 코드가 영 틀렸다는 점. 신전의 기온을 오판한 탓에 계절에도 안 맞는 옷을 입고 벌벌 떨며 다니고 있으니. 4월의 지중해는 날씨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추울 줄이야. 올리브 나무가 자라는 곳이니 서울보다는 따뜻하겠지 싶었는데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후드티에 경량 패딩, 그 위에 바람막이 잠바까지. 거기다 스카프 칭칭 두르고 후드티의 모자까지 쓰고 다니는 패션 테러리스트가 됐는데도 추웠다. 내가 소설에서만 읽으며 로맨틱하게 상상했던 그 바람, 미스트랄 때문이다. 겨울과 봄철, 프랑스 남부에서 불어 지중해 북부로 올라가는 차갑고 강한 바람. 미스트랄에게 매일 뺨을 얻어맞으며 다니느라 얼얼할 지경이다. 어찌나 차가운지 손가락이 곱을 지경이다. 어느 날 아침 기온을 찾아보니 서울은 13도, 니스는 6도였다. 프랑스 최고의 휴양지라고 원피스를 비롯한 봄옷을 챙겨온 터였다. 내가 어찌 ‘프렌치 시크 룩’을 이기겠냐마는 나름대로 각오하고 넣어온 옷들은 트렁크에서 한 번도 나오지 못했다.

 

관광객들이 니스의 해변을 즐기고 있다. 김남희 여행작가

 

그런데도 해변에는 반바지에 반팔 티 차림으로 앉아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이들이 있었다. 체스판을 두고 마주 앉은 두 청년이 와인으로 병나발을 불고 있었다. 낮술은 몰라도 아침술은 좀 그렇지 않은가 생각을 하다가 이런 바다 앞에서라면 무죄지, 아무렴 무죄고 말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을 잊게 만드는 물색이었다. 햇빛도, 물빛도 눈부시게 빛났고 발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모래는 따스했다. 미세 먼지 없는 이 깨끗한 하늘과 공기만으로 여기까지 온 보상을 받은 것 같았다. 사실 휴양지를 좋아하지 않아 니스는 기대도 없이 들른 터였다. 30년 전, 처음 유럽 여행을 할 때 니스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 야간 기차를 타고 다음 도시로 이동한 적이 있었다. 당연히 니스에서 뭔가를 느끼기는 힘들었다. 여기가 왜 유명한 거지? 의문을 품고 지나갔을 뿐. 이번에는 사흘을 머물렀다. 샤갈 미술관과 마티스 미술관을 보기 위해. 샤갈, 이 복 많은 남자! 피카소와 동시대 화가인데 난봉꾼에 가까웠던 피카소에 비하면 첫사랑과 결혼해 아내가 먼저 죽을 때까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 데다 살아서 자기 이름의 미술관이 건립되는 영광도 누렸다. 그가 프랑스에 기증한 종교화를 주제로 꾸며진 니스의 샤갈 미술관.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태어나 프랑스에 귀화했지만 유대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샤갈답게 유대인들의 성경인 구약성서의 내용이 중심이다. 별 흥미가 안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미술관을 세 번 돌았다. 과연 색채의 마술사였다. 막 노을이 진 후의 밤하늘, 여름 햇살에 반짝이는 지중해의 물빛, 새벽녘 여명이 밝아올 때의 수평선. 이 모든 색을 부드럽게 섞어 놓은 것 같은 샤갈의 블루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이런 명작을 ‘직관’할 수 있다니 샤갈 못지않게 나도 복 받은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반면 마티스 미술관은 작품이 거의 다 일본에 대여 중이어서 텅 비어 있었다.

 

김남희 여행작가

미술관이 아니어도 니스는 볼 만한 곳이 꽤 있었다. 오래된 항구도, 언덕 위의 콜린성도, 지중해가 보이는 살레야 시장도 저마다 다 아름다웠다. 살레야 시장은 카트를 끌고 가 과일이며 야채를 다 담아오고 싶었다. 무슨 시장이 이렇게 예쁜가. 무슨 과일을 이렇게 예쁘게 담아 놓나. 이곳에 일주일쯤 머물면서 매일 아침 장을 보러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바람에 제동을 걸어준 건 아찔할 정도인 니스의 장바구니 물가. ‘살레야 시장이라니. 사려야 살 수가 없는 시장이네.’ 이런 농담을 혼자 중얼거렸다. 하루 종일 걷고 돌아다니느라 점심은 니스의 특산인 쏘카(병아리콩을 납작하게 부친 간식으로 담백하고 고소하다)로 대충 때울 때가 많았다. 파스타 한 개에 물 한 병만 시켜도 4만~5만원인 물가라 식당 들어가기도 무서울 정도였다.

 

에즈 마을 풍경. 김남희 여행작가

 

니스에 머무는 동안 근교의 에즈(Eze)에도 다녀왔다. 에즈는 해발 427m의 중세 마을로 월트 디즈니, 비욘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즐겨 여름을 보내던 곳이다. 마을의 모양이 독수리 둥지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독수리의 둥지’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오전 9시 문을 여는 ‘이국 정원’에 가기 위해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다육식물로 유명한 이국 정원은 잘 꾸며 놓은 산책로 사이로 다양한 선인장과 지중해 식물이 무성했다. 어디에나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낭만적인 정원이었다. 정원만이 아니라 에즈는 마을 자체가 아름다웠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에는 무화과며 올리브며 부겐빌레아가 그늘을 드리웠다. 아직 햇살은 여름의 그것처럼 잔혹하지 않았다. 석회암으로 지어진 집들은 햇볕과 세월에 잘 익어 반들반들했다. 에즈는 딱 내 취향이었다.

 

살레야 시장에서 한 남성이 채소를 구매하고 있다. 김남희 여행작가

 

그렇게 마을 분위기에 취해 돌아다니다가 생수병 수십개를 이고 지고 나르는 청년들과 마주쳤다. 건장한 청년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몇 번을 쉬면서 마을 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차가 들어오지 못하는 이곳에 사는 이들은 일상적인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인구는 2천명 남짓이라는데 거주하는 사람은 점점 줄고 대부분 숙박업과 관광업에 종사한다고 했다. 에즈만이 아니라 니스는 물론이고 남프랑스의 인기 있는 마을에 사는 이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불편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밀려 드는 관광객, 치솟는 물가, 청년세대를 위한 주택의 부족, 쓰레기와 소음 같은 문제들.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나는 발소리를 죽이며 마을을 벗어났다. 지나가는 이의 예의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라 여겨 ‘제로 웨이스트’ 여행자가 되고자 도시락 통이며 물통, 수저와 장바구니를 배낭에 넣어 다니지만 내가 여행자로 사는 이상 어떤 곳에서는 존재 자체가 불편한 사람일 수도 있으리라. 에즈에는 니체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가 이곳에 머물면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썼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그의 이름을 딴 산책로가 있었다. 니체의 길을 따라 바닷가까지 내려갔다. 미안함은 잠시, 나는 어느새 앙티브와 칸 같은 주변 마을을 보기 위해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조금 더 길게 이 도시에 머물며 이번에 놓친 것들을 찾아내겠다는 탐욕스러운 눈빛을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