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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균의 어반스케치] 세류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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궂은비 자욱한 아침이다. 공휴일은 피트니스클럽이 늦게 문을 열므로 늘 작업실까지 걷는다. 권선동 언덕을 넘으면 옛 세류삼거리다. 세류동은 아기자기한 가게와 주택들이 밀집한 보물창고다. 40년 전 수원에 첫발을 딛고 자취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그만 골방에 연탄불과 재래식 부엌이 있던 곳, 허기져도 끝없는 앞만 보며 질주하던 청년 시절이었다.

 

이 세류동 스케치는 9개월 전 그림을 동기로 나의 교실 구성원이 된 진흙 속의 보석 박혜찬님이 그렸다. 그녀는 디자인 계열의 미술을 전공한 실력자다. 80억 지구별에서 한 사람을 알고 이웃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다.

 

나는 강의 후 삶의 근원인 음식을 매개로 한 유대를 위해 수강생들과 밥을 먹는다. 어차피 점심시간이 살짝 지나 함께 한 끼 때우는 정도다. 그 멤버의 혜찬님은 매사에 명확하고 인간미 깊다. 하긴 순한 살모사처럼 딱 한 번 과용한 곡차로 이유 없이 내게 대든 적이 있다. 체납된 연체료처럼 찜찜했던지 그녀는 쿨하게 사과하는 예법을 지켰다. 나도 쩨쩨하게 한 잔말을 거뒀으니 탈 없이 잘 지냈으면 좋겠다.

 

화요일 이사하는 님의 집에 가루비누라도 들고 함께 가기로 했는데 알고 보니 선약이 있어 못 가게 됐다. 이래서 수강생들이 머리 나쁘다고 자꾸 대드는 것 같다. 아무렴, 인생 별건가. 옥잠화 잎처럼 생생한 나의 멋진 수강생들을 위해, 더디게 이루더라도 후회는 없을 한결같이 아름다운 수업을 준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