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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희의 길 위에서] 편안한 웃음 담은 친절의 도시 ‘타이베이’

김남희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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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안 삼림공원. 김남희 여행작가

 

지난해 12월에는 타이베이에 다녀왔다. 다 간다는 지우편에도 안 가고, 다 본다는 101타워의 야경도 안 보고, 다 먹는다던 우육면도 한 그릇 안 먹었지만 나는 열흘의 여행으로 대만을 사랑하게 됐다. 도착한 날 저녁, 공항에서 시내의 숙소까지 가는 동안 트렁크를 끌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할 일이 한 번도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가까이에 있어 이동이 쉬웠다. 이 도시에서는 장애인의 일상이 덜 고단하겠구나 싶었다. 다음 날 시내를 걸어 다니는데 모든 횡단보도의 보행 신호등이 길었다. 건너야 할 보도가 좀 길다 싶으면 70초, 짧으면 30~40초. 노약자도, 장애인도, 어린이도 신호가 바뀔까 종종거리며 애쓰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신호였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는 도시였다. 수출 규모로는 세계 15위, 국가경쟁력으로는 세계 7위인 대만인데 고층 빌딩 사이로 옛 건물이 종종 보이는 점도, 거리에 우람한 나무가 많은 점도 마음을 끌었다. 이 나라 사람들이 용수라 부르는 대만고무나무(반얀 트리라고도 불리는)의 근사한 위용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저 고목들을 개발의 이름으로 잘라내지 않고 보호해 왔다는 것만으로 호감도가 상승했다. 겨울의 타이베이는 서울의 혹독한 기후를 피해 ‘피한’을 가기에 좋은 곳이었다. 12월 중순 타이베이는 낮 기온이 15~25도.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고 습도도 적당해 돌아다니기에 좋았다. 가는 비가 자주 흩뿌렸지만 타이중이나 타이난 같은 남쪽으로 내려가면 쾌청하다고 했다. 물가가 싸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큰돈 들이지 않고 지내는 일도 가능했다. 우선은 교통비가 저렴했다. 버스비나 지하철비가 600~700원. 길거리 음식의 천국이라 야시장이나 소박한 식당에서는 몇 천원에도 맛있는 식사가 가능했다.

 

 

디화제. 김남희 여행작가

 

타이베이 시민들은 친절했다. 억지로 만든 과한 친절이 아닌, 몸에 익은 자연스러운 배려와 담백한 친절이라 편안했다. 이야기를 나눌 때면 몸짓이 요란하지 않고 목소리도 높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대만 사람들은 모여 있어도 시끄럽지 않았다. 같은 푸퉁화(普通話)를 쓰는데도 방해가 될 정도로 떠드는 사람들이 없었다. 다들 매너가 좋아 어디에서도 불쾌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처음 온 낯선 도시인데 여유로운 시민들의 태도 덕분에 나도 긴장이 풀렸다.

 

타이베이에서는 지인 S의 신세를 졌다. 그녀가 친구들과 차 마시는 공간으로 마련한 집에 짐을 풀었다. 대만국립사범대학 근처라 도보 5분 거리에 괜찮은 카페가 많았다. 나도 매일 오전에는 카페에 나가 원고를 쓰고 오후에는 타이베이 구경을 다니는 식으로 열흘을 보냈다. 틈틈이 S를 만나 밥을 함께 먹었다. 그녀가 데려가는 식당은 현지인들이 주로 찾는 식당이었다. 황금조개로 육수를 내는 샤부샤부 집, 뜨거운 콩국과 곁들여 먹는 계란전이 맛있는 시먼딩의 노포, 구팅 역 근처의 늘 손님이 가득한 채식 식당 등. 오래 한자리를 지켜온 작은 식당들이었다.

 

 

지도도, 가이드북도 없이 느긋하게 산책하기를 좋아하는 내게 타이베이 시내는 즐거운 곳이었다. 초고층 빌딩이 즐비한 시내에서도 한 블록만 걸어가면 나지막한 옛 건물이 나타났다. 도심 곳곳에 녹음이 우거진 공원이 있어 숨을 돌리기에도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한 공원은 다안 삼림공원이었는데 딘타이펑에서 딤섬을 먹고 소화를 시키며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대만은 우리보다 긴 50년의 일본 식민 지배를 받았는데도 격렬한 반일 감정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오래된 일본식 건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운치 있는 식당이나 카페, 갤러리가 돼 있었다. 옛 공장을 개조한 복합문화공간도 많았는데 대표적인 곳이 송산 문화창의공원과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 담배 공장을 개조한 송산 문화창의공원은 주변에 넓은 연못과 공원이 있어 가족과 함께 나들이 온 이가 많았다. 양조장이었다가 복합문화공간이 된 화산 1914 창의문화원구는 좀 더 아기자기하고 볼거리가 많았다. 영화관과 갤러리, 카페와 식당, 수공예품이나 예술 작품을 파는 가게들이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들어서 있었다. 마침 그 안의 꽃집에서 크리스마스 장식품 만들기 수업 공지가 붙어 있는 걸 보고 나도 참여했다. 타이베이 사람들 틈에서 프리저브드 플라워로 트리 모양의 장식품을 만들었는데 여행의 훌륭한 기념품이 됐다. 송산 문화창의공원도, 화산 1914도, 대만의 유명한 위스키 공장도 건물 자체에 격조가 있었다. 공장 건축물 경연대회라도 하는지 어떻게 공장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걸까.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등장하고 BTS의 멤버 누가 좋아한다는 카발란 위스키의 본고장이 타이베이에서 한 시간 거리인 이란에 있었다. 이미 어두워진 후에야 카발란 공장에 들어섰는데 건물의 자태가 심상치 않았다. 구리를 입힌 거대한 증류기가 늘어선 공장은 공상과학영화의 배경 같기도 했다. 이토록 근사한 공장에서 빈손으로 나간다는 건 무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결국 이 공장에서만 구매가 가능하다는 핑크빛 라벨이 붙은 위스키 한 병을 사고 말았다.

 

타이베이에서는 거리를 걷다 보면 사원이나 절이 자주 보였다. 불교, 도교, 유교, 민간신앙이 섞인 대만만의 독특한 사원에서 오가던 시민들이 향을 피우고 복을 비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건강에 어찌나 신경을 쓰는지 대화 속에서 본초강목이 튀어나오는 점도, 어디를 가나 온수를 내어 주는 모습도, 체온을 높이는 데 좋다고 알려진 약재가 온갖 형태의 먹거리로 만들어진 점도 재미있었다.

 

타이베이에서 내가 가장 좋아한 거리는 큰 재래시장이었다는 오래된 옛 골목과 상점이 늘어선 디화제. 100년 된 나지막한 건물에 깃든 상점에서 약재와 건어물, 말린 과일 같은, 100년 전에도 팔았을 상품들을 여전히 팔고 있었다. 영험한 월하노인이 연을 찾아준다는 하해성황묘에는 여행자들이 모여 향을 사르고 있었다. 저녁 무렵 디화제를 찾아가면 붉은 등이 켜진 상점들 사이로 퇴근을 서두르는 이들이 지나갔다. 종로의 피맛골도, 을지로의 골목도 다 사라져 버리고 오직 개발이라는 이름의 폭력만이 승자가 되는 서울의 도심이 생각나 부러움이 밀려 들었다. 옛것이 함부로 밀려나지 않고, 자연이 마구잡이로 파헤쳐지지 않는 이 나라는 작지만 큰 나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