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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때문에 죽나, 미래가 깜깜해서 죽지" [현대판 낙인, 신용 불량①]

금융채무 불이행자, 작년 상반기 기준
전국 77만7천여명·평균 빚 1억2천만원
가족명의도용·카드빚 등 사연 가득
빚의 굴레 벗도록 제도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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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빚 때문에 죽나, 미래가 깜깜해서 죽지”

 

 

③ 사람 많은 남부, 열악한 북부…'경기도 채무 상담' 1위 지역은?

 

④ 경기도 빚 상담 64% ‘40대 이상’…5년간 파산·회생도 3천명↑

 

⑤ “신용 불량, 금융복지 개념으로 다가가야”

 

 

빚은 돌고 돈다.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출 기준을 풀면, 서민의 채무 규모가 커지고, 사회적 금융 불균형이 확대되면서, 다시 경제 성장을 발목잡는 식이다.

 

시장 논리상 어느 정도의 빚은 필요하다. 하지만 감당 불가능한 빚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빚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개선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나랏돈으로 그릇된 빚을 탕감해줘야 한다는 게 아니다. 다만 재정적인 늪에 빠진 이들을 제도적으로 갱생시키는 길을 마련하자는 이야기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는 고물가·고금리 시대, 경기일보는 <현대판 낙인, 신용 불량> 시리즈를 통해 전국 최초로 금융채무 불이행자를 지역에 맞춰 집중 조명해봤다. 편집자주

 


 

 

#1. 살고 싶었지만, 살고 싶지 않았다

 

집을 뛰쳐나왔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 했을 때도,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아버지가 수차례 사업을 부도냈을 때도, 고된 외로움 속에서 꿋꿋하게 버텨온 보금자리였는데 더 이상은 그 집에서 살아날 자신이 없었다.

 

계기는 4년 전이던 2020년, 갓 성인이 된 A씨에게 들어온 ‘채권 추심’이다. 한평생 남의 돈을 빌려본 적이 없던 A씨는 미성년자 신분을 떼자마자 본인에게 거액의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천500만원의 금융채무 외에도 부가세·소득세 등 5억원에 달하는 체납세금이었다.

 

알고 보니 아버지가 A씨 이름으로 개인사업자 명의를 몰래 변경해 자영업을 운영해왔고, 거래처에게 잘 보이기 위해 매출을 거짓으로 부풀렸다고 한다. 그 ‘뻥튀기 실적’에서 비롯된 빚이 총 5억2천500만원이었다. 죄를 진 건 아버지인데, 빚을 진 건 A씨였다.

 

불안한 딸을 달래던 아버지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 외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이 와중에도 이자는 빠르게 늘었다. A씨는 살고 싶단 마음으로 무작정 도망쳤지만 끊임 없는 빚 독촉이 월세 단칸방까지, 아르바이트 자리까지, 동네 골목길까지 쫓아왔다. 결국 A씨는 집을 버린 데 이어 스스로의 목숨도 버리기로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A씨는 “법률구조공단, 신용회복위원회, 개인 변호사·법무사 등을 만나 여러 번 상담했지만 아무도 해결책이 없다고 했다. 제 명의로 정당하게 책정된 세금에 대해 ‘부당하다’, ‘억울하다’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제 인생은 답이 없었고 희망찬 미래를 꿈 꿀 수도 없었다”고 전했다.

 

70세를 앞둔 ‘그’는 과거 IMF 한파로 무너진 뒤 2010년 하남에서 다시 일어나고자 했다. 하지만 3년 뒤 본인이 새로 꾸린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청춘도, 열정도 빚에 뺏겨 희망이 없었다던 그는 지난해 경기도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를 방문해 금융복지서비스 등을 안내 받고 재기에 성공했다. 현재는 지하철 5호선 한 역사의 ‘시니어 승강기 안전단’에 소속돼 승강기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사진은 ‘그’의 지난해 모습. 경기도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 제공

 

#2. 청춘 저당 잡은 IMF, 앞날까지 막을 줄이야

 

몸무게가 38㎏까지 줄었다. 7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월급도, 6천100만원의 원금과 이자도 50대 중반에 들어선 B씨의 삶을 메마르게 쪼아댔다.

 

그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임대주택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충분한 사람이었다. 지자체도 집요하게 권유하고 설득하며 “복지 서비스를 제발 좀 받으시라”고 했다.

 

하지만 본인이 외면했다. 주거 지원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서류상 주소지와 실제 거소지가 일치해야 하는데 이를 감춰왔기 때문이다. 거소지가 드러났을 때 빚쟁이가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추심 공포’, 그리고 ‘한없이 낮아진 자존감’ 탓이었다.

 

B씨의 거소지는 화성시 향남읍의 한 고시원. 이웃은 온통 이주노동자로 일상의 편안한 대화조차 통하지 않았다. 밥을 사먹을 돈이 없기 때문에 삼시세끼는 그림의 떡이었다. 굶고, 기운 없이 일하고, 쓰러지고, 다시 굶고, 또 일하고, 그 지난한 하루하루를 반복했다.

 

B씨가 가진 빚의 출처는 1998년 IMF(외환위기)다. 정확히는 ‘카드 대란’ 무렵이다. 당시 정부는 IMF 후폭풍을 해결하기 위해 내수 진작·세수 확보 차원에서 카드 발급 기준을 완화했고 그 여파로 4년 만(2004년)에 국내 신용불량자가 750만 명을 돌파했다. 그 중 1명이 바로 B씨였다.

 

B씨는 “저는 유복하던 가정이 무너지면서 어린 나이부터 일을 시작했다. 당시 가깝게 지낸 유일한 동료가 ‘카드를 빌려달라’ 해서 빌려줬는데 그 친구가 제게 피해를 입히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제가 쓴 적 없는 해묵은 카드 빚이 아직까지 남았다. 사람들이 빚 때문에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미래가 깜깜하니까 죽고 싶어 한다는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앞선 사진에 소개된 ‘그’는 예상치 못한 공장 화재로 빚 더미에 올랐다. 손해 배상으로 생긴 빚은 물론이고 집마도 경매로 넘어가면서 떠돌이 아닌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런 ‘그’가 법원으로부터 채무를 최종 면책 받고 마침내 악성 부채에서 해방됐을 때의 자료 사진. 경기도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 제공

 

현행 제도에선 A, B씨와 같은 이들을 ‘금융채무 불이행자’(과거 신용불량자)라고 일컫는다.

 

보통 50만원 이상의 금액을 3개월 이상 연체하거나 50만원 미만이라도 3개월 이상의 연체를 두 번 이상 한 사람을 뜻한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전국 77만7천200여명, 1인당 평균 빚은 1억2천40만원이다.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과연 이뿐일까. 각 지역엔 얼마나 존재할까. 이들의 빚은 온전한 개인의 잘못일까.

 

박정만 경기도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장(변호사)은 “상담 현장에서 볼 때 빚의 한계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굳이 죄가 있다면 ‘열심히 살고자 한 죄’ 또는 ‘무엇인가 새롭게 시도해보고자 한 죄’가 전부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빚을 갚지 못하는 순간 그 자체로 혹독한 윤리적 체벌을 가한다”며 “자본주의가 실패의 양분을 먹고 성장의 꽃을 피우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재기의 전제인 빚 문제 해결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인식이 저변에 확대되고, 제도이용을 포기시키는 각종 규제와 편견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에 등장한 사례는 지난해 경기도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 남부권역(수원, 용인)센터와 북부권역(고양)센터 등을 통해 상담 받은 실제 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상담관들의 전언을 통해 신상 보호 차원에서 내용 일부를 각색했음을 알립니다. 여타 상담자들의 자세한 채무 상황과 해결 과정 등은 경기일보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으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