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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영화…넷플릭스 ‘길복순’ [영화와 세상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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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복순'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영화는 스크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1895년 처음 인류와 만난 영화는 태생부터 혼자 존재할 수 없는 예술이었습니다. 스크린을 바라보며 반응할 사람이 없다면, 그 영화는 상영되는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편의 영화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도 없이 상영되면서 전 세계 어느 누구와도 만나는 소통의 창이 됐습니다. 영화는 영화 자체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스크린을 벗어날 때 더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영화광장’은 영화를 통해 세상을 말하고 사람을 말하는 시간입니다. 격주 토요일, 영화광장으로 모여드는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에서 눈에 띄는 장면들이 있다면, 바로 발생 가능한 미래의 ‘경우의 수’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영화는 관객들을 은근슬쩍 속인다. 길복순(전도연)은 영화 시작부터 죽는다. 길복순이 야쿠자 오다 신이치로(황정민)와 일본도로 싸우는 첫 액션 시퀀스에서 목이 잘려나가는 길복순의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건 상상 속의 시뮬레이션을 마친 뒤 생존 가능성이 낮은 선택에 베팅하지 않고, 확실한 경우의 수를 택해 최후의 승자가 되는 길복순의 모습이다.

 

길복순은 늘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생존법을 찾아낸다. 사실 그가 딛고 선 세상이 너무 각박하기에, 자타공인 청부업계 최고의 킬러 길복순은 늘 자신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을 의식해야만 한다. 길복순의 모습은 자연스레 현실 속 전도연 배우와 겹친다. 후배 연기자들이 치고 올라오는 살벌한 경쟁판에서 오랜 기간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배우 전도연 역시도 매 순간 길복순처럼 시뮬레이션을 돌렸을 것만 같다. 아니, 바꿔 말하는 게 맞다. 길복순은 전도연처럼 행동하고 있다.

 

'길복순'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길복순’은 길복순의 생각과 감정을 훑어보려고 한다. 다른 이들은 다 놓쳐도 길복순의 서사는 붙잡고자 한다. 이때 길복순에게 부여된 설정들은 대부분 배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이 지닌 특징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길복순'은 길복순의 영화라기보다는 전도연의 영화인 셈이다.

 

그래서 영화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은 단 하나다. 전도연이 나와야만 한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 역시 다수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단계부터 전도연을 염두에 둔 채 작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길복순이 킬러이자 평범한 엄마를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현실 속 연기자와 엄마를 오가는 전도연의 흔적이 고스란히 반영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길복순’이 굳이 액션 영화일 필요가 있었을까? 사실 액션 영화에선 배우의 액션 소화력에 따라 영화가 뿜어내는 매력이 달라지는데, 이 영화 속 전도연이 보여주는 액션은 디렉팅의 문제인지 액션 구성의 문제인지 특별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 속 나열되는 액션은 장르의 쾌감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의 조형에 크게 관여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길복순'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전도연이 촬영해야만 그 존재가치를 얻는 영화인 ‘길복순’은 사실 액션만 놓고 보면, 꼭 전도연이어야만 하는 당위성을 관객에게 어필하는 데엔 실패한다. ‘길복순’의 액션은 키아누 리브스가 육중한 몸을 이끌고 숨 가쁘게 찍은 ‘존 윅’ 시리즈나 톰 크루즈가 부상위험에 노출되면서도 대역 없이 촬영에 임했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보여줬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키아누 리브스가 아닌 존 윅의 액션을 상상할 수 없고, 톰 크루즈가 아닌 에단 헌트의 액션을 상상할 수 없다는 데에 대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길복순의 액션 만큼은 전도연의 것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 

 

그래서 ‘길복순’에서 나열되는 무색무취 액션 장면이 오히려 전도연과 길복순이 놓인 피비린내 풍기는 경쟁사회를 은유하는 장치가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길복순’의 세계관은 다른 킬러 영화들처럼 다소 황당무계한 측면이 있지만, 그조차도 어쩌면 전도연과 길복순을 오가는 어떤 존재가 딛고 선 세상이 얼마나 각박한지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닐까. 길복순의 삶은 그만큼 고달프고, 전도연 역시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관객들은 영화가 끝나갈 즈음, 딸을 바라보는 길복순의 표정에서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