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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문법] 패권 시대의 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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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베네치아로 불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에서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미국으로서는 맞는 말이지만 푸틴의 주장은 사실이다. 봉건제가 군사력으로 경제력을 축적하고, 경제력이 군사력 확장의 경제적 토대가 돼 팽창을 추구하는 체제라면, (상공업자가 주도한) 자본주의는 (자본과 군사력)의 결합에 의한 제국 건설(탐욕의 팽창)이라는 차이를 갖는다. 자본주의 제국을 만든 영국 패권의 기반이 파운드와 군사력이었듯이 미국 패권의 기반은 달러와 군사력이고 20세기 미국의 패권은 1·2차 세계대전, 특히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입증했다. 미국 패권의 또 다른 축인 달러 패권은 IMF와 세계은행을 설립한 브레튼우즈 체제였고, 달러 가치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달러를 기축통화로 받아들였다. 즉 미국 경제의 절대적 경쟁력과 그에 따른 무역흑자 구조의 덕택으로 1달러=360엔, 1달러=4.20마르크 등 각국의 통화가치를 달러에 고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미국 패권은 역설적으로 미국 패권의 정점이었던 2차 세계대전 이후 도전을 받기 시작했다. 2차 대전 이후 동서 진영 구분에 의한 냉전 질서가 구축된 것은 핵 시대의 도래에 의한 것이었다. 즉 미국과 소련 모두 핵을 보유함으로써 군사력에 의한 패권 완성은 불가능한 프로젝트였고, 미국 군사력 패권의 1차 위기는 (무승부로 끝난) 한국전쟁에서 그리고 2차 위기는 (미국에게 패배를 안긴) 베트남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패권의 경제적 토대인 달러의 힘도 경제력의 다원화에 따라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1차 위기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질서로 만든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에서 비롯한다. 산업화의 확산에 따라 일본과 서유럽 주요국이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축소하면서 미국은 1971년부터 무역수지 적자국으로 전환하는 등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주는 것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해외로 달러가 유출됐다. 금태환 정지 선언은 달러 가치의 안정성을 무너뜨린다. 이때 발생한 것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달러 가치 폭락에 따라 (손실을 보는) 석유 등 1차 상품 공급국가들의 상품가격 정상화가 인플레와 경기침체를 유발한 것이다. 미국은 달러의 기득권(기축통화 발권력)을 이용해 달러 가치의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않는 변동환율제로 바꾸면서 금융적 이해(월가의 이익 중심)로 국제통화질서와 경제체제를 재편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금융투자 수익으로 메꾸고 금융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등 미국을 세계의 투자수도로 건설하겠다고 대내외에 천명한다. (금융 가치의 논리로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고, 워싱턴이 월가에 의해 지배되는) ‘금융화’가 진행된 배경이다. 즉 70년대 금리의 급격한 인상으로 달러 가치를 회복시켜 인플레를 진정시킨 후 금융은 경제 운용의 중심이 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1980년대 이후 대부분 경기침체감사가 금융위기발이었기에 인플레 하락 속 침체였다. 경기침체 때마다 (금융 부양을 의미하는) ‘연준 풋(Fed Put)’을 동원할 수 있었던 이유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그린스펀 풋’, 금융위기 때의 ‘버냉키 풋’(‘헬리콥터 벤’), 금융위기 이후의 장기간 초금융완화를 유지한 ‘옐런 풋’ 등이 그것이다. 파월도 2018년 연속 4차례, 총 1%p 인상한 후 월가가 발작(?)을 일으키자 2019년 금리를 3차례, 총 0.75%p 인하하면서 금융완화(‘파월 풋’)에 동참했지만, 주지하듯이 ‘파월 풋’은 팬더믹 이후 진가(?)를 드러냈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랠리가 이어진 배경이다. 군사력만으로 할 수 없었던 패권 완성을 레이건이 군비경쟁으로 소련을 해체시킨 것도 달러의 힘이었다. (단일시장 형성을 의미하는) 세계화는 그 결과물이다.

이처럼 ‘연준 풋’은 미국 경제의 구원투수이자 (군사력과 더불어) 미국 패권을 완성시켜준 전가의 보도였다. 그런데 이 연준 풋이 오미크론발 공급망 교란과 중·러를 배제한 공급망 구축(탈세계화) 앞에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부터 보여준 오락가락 모습이나 인플레 통제 능력에 대한 의구심 등 연준이 신뢰를 잃어버리는 배경이다. 문제의 근원은 미·러 패권 충돌(워싱턴의 정치실패)에서 비롯한 인플레이션을 연준이 해결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기축통화로서 달러 신뢰 확보의 전제조건들인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간 딜레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정치실패발’ 물가안정을 위해 필요한 급격한 금리 인상은 금융안정을 희생해야 하는 반면, 금융안정을 챙기려면 물가안정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달러 신뢰의 추락이 불가피함을 의미한다. 군사력에 의한 패권 추구가 달러 패권을 위협하는 것으로, 푸틴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는 막을 내렸다고 말한 이유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