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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자! 미래유산] ⑦화성 ‘남양고등학교’, 전쟁 통에 주민이 돌을 날라 지은 교육시설

-한국전쟁때 건립된 지역 첫 학교 건물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선정에 개축·훼손 위기
-동문회 “의미 있는 문화유산 보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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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에 위치한 남양고등학교.

여러분은 근대건축물을 어떻게 보시나요. 누군가는 미래유산으로 보고, 누군가는 흉물로 볼 테죠. 견해가 서로 다른 까닭에, 그동안 수많은 근대건축물이 보존이냐, 철거냐기로에 서서 온갖 수난을 겪어내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건 개중에 문화재로 가치가 높은 것들이 소실됐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귀중한 근대문화유산을 앞으로 얼마나 더 허무하게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그래서 시작합니다. 꼭 지켜야 할 미래유산을 찾아가는 여정을. 1876(개항기)에서 1970년 사이에 지어진 경기도의 근대건축물을 중심으로 문화재로 등록되지는 않았지만, 미래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들을 발굴해 보존 대책을 찾아보려 합니다. 선조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그대로 우리도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길 바라며.

편집자주

 

화성시 남양읍에는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돌을 날라 손수 지은 교육기관이 있다. 바로 남양고등학교.

교육의 불모지였던 동네에 건립된 첫 공립학교였으며, 지금도 당시 본관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지역 정서의 뿌리가 된 이곳이 이제는 노후되어 개축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키자! 미래유산> 일곱 번째는 훼손 위기에 처한 남양고 옛 본관을 재조명한다.

 

배움의 집념이 탄생시킨 돌교실

▲ 인조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 바라본 남양고 옛 본관은 장방형의 단층 건물이다.

지난 7일 남양고를 찾아 남양읍 교육 역사의 발자취를 들여다봤다. 여느 학교처럼 3~4층 높이의 '자형' 교실 건물과 기숙사, 체육관 등이 널찍널찍 자리 잡은 모습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평범한 학교 풍경을 보다 보면, 현대식 교실 앞 중앙에 658크기의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남양고의 보물, 옛 본관이다.

돌로 지어져 돌교실이라 불리던 본관 건물에서 남양고의 역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기록은 많지 않다. 준공 표지판마저 없어 착공일과 완공일도 알 수 없다. 한국전쟁 때 지어졌다는 사실만 중견 관리자나 알고 있는 정도다. 교내에서는 본관을 기억하는 이들이 없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지만, 다행히 공사에 참여했던 주민이 근처에 살고 있어 만날 수 있었다.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본관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지어졌다.

▲ 6.25전쟁 때 본관 건물 공사에 참여했던 남양3리 주민 홍영표씨는 지게를 지고 석산에서 돌을 날랐던 과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홍영표(82·남양3리)씨는 “6.25 전쟁나고 여기 일대 교육시설이 아예 없었어. 그때 면장이 정영덕씨 였는데 그 양반이 학교를 설립하자고 마을 사람을 불러 모은 거야. 이 동네 저 동네 어른이고 학생이고 죄다 부역으로 가서 학교 건설에 참여하게 된 거지. 신남리에 있는 석산에 지게 지고 가서 돌을 날라 지었거든. 공사는 몇 년 걸렸어. 말도 마. 나도 아버지랑 가서 돌 날랐는데 엄청 힘들었어. 내가 열세살 때쯤이었을 거야라며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홍 씨가 언급한 면장은 남양고 설립자와 일치한다. 정문 오른편에는 설립자를 기리는 '송호 정영덕 선생 송덕비가 세워져 있다. 남양면장으로 활동하면서 주민들과 협심해 학교를 지은 정영덕에 관한 이야기는 <남양 중·고등학교 50년사>에도 기록돼있다.

▲ (위)남양고 정문 오른편에는 주민과 함께 학교 건물을 설립한 정영덕 선생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아래) 남양리 송호지학장학재단에는 정영덕 선생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이 걸려있다.  

내용에 따르면 1950331일 정영덕은 사립학교를 세우기 위해 역원을 구성했으나, 재단의 열악성 때문에 공립학교인 남양고등공민학교(중학교 다닐 시기를 놓친 사람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학생들을 가르칠 건물이 없어 인근 다른 기관 건물을 차용해 운영했다.

같은 해 625일 한국전쟁이 발발했지만 정영덕은 교육열이 더욱 불타올라 마을 주민들과 함께 제대로 된 학교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전쟁 와중에도 주민들은 동네에 학교 건물이 생긴다는 기쁨에 한마음 한뜻이 되어 흙 한짐, 돌 한짐씩 날라 초창기 석조 건물(본관)을 짓는데 공헌했다.

▲ 남양리 송호지학장학재단에 걸려 있는 50년대 본관 건축 작업 모습이 담긴 사진.

완공 후 1953422남양중학교로 개교했다. 남양고등공민학교 학생 187(2학년 147, 3학년 40)을 편입시키고, 1학년 120명을 새로 모집해 총 307명이 입학했다. 당시에는 서신, 송산, 마도, 비봉, 팔탄, 장안 지역에서 모두 남양으로 중등교육을 받으러 왔다.

이후 학교로서의 면모를 점차적으로 갖추어 나가자 1954123일 이 학교는 다시 남양고등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다. 개교는 같은 해 49일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절망 속에서도 배움을 포기하지 않았던 남양 지역 주민에게 남양고는 희망 그 자체였을 터다. 당장 내일의 생사도 불확실한 와중에 왜 그리 학업에 매달렸을까 싶겠지만, 생존을 위한 처절하고도 매우 현실적인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 단정하고 견고한 고전주의 건축양식 

▲ 1. 좌측에서 바라본 본관 앞 모습.  2. 일식 평기와 형태의 지붕이 잘 보이는 본관 우측면 모습. 3. 본관 중앙에 위치한 현관 포치. 4. 원기둥과 사각기둥이 지지하는 현관 포치 좌측면 모습. 5. 일정한 간격으로 하단에 뚫려있는 방형의 환기구 구멍. 6. 수직으로 긴 오르내리창인 창문.

주민의 땀방울로 탄생한 본관 외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돌의 질감이 그대로 보인다. 형태는 운동장을 마주한 긴 장방형의 나지막한 단층 건물이다. 내부는 후면에 복도를 둔 편복도식으로,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에 6개의 공간을 배열했다. 이 공간은 설립 초창기 307명의 학생이 교실로 사용했을 테지만 지금은 행정동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관 포치(돌출된 입구)는 원기둥 2개와 사각기둥 2개가 지지하는 별도 구조다. 포치 상부에는 페디먼트(삼각형으로 된 박공벽)로 장식했다. 창문은 수직으로 긴 오르내리창이다. 원래는 목재였으나 알루미늄 새시 창으로 바꾸고 철망을 달았다.

외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연통 기둥 7개와 하단에 방형의 환기구 구멍이 12개가 있다. 마룻바닥에 습기가 차지 않도록 통풍을 위해 뚫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지붕은 일식 평기와 형태지만 90년대 개보수했다고 한다.

곳곳에 금이 가고 지붕과 창문 등 일부가 변형되었지만 건물 전체의 구조는 신축 당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단정한 기둥이 반복되며 대칭을 이루어 질서정연한 고전주의 양식을 당대 사정에 맞게 절충했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개축 논란에 동문회 반발

▲ 지난해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에 선정된 남양고 운동장 한켠에는 개축 공사 기간 학생들이 임시로 사용할 '모듈러 교실'이 설치돼 있다. 

70년간 남양읍 주민들에게 배움의 터전이 된 남양고 옛 본관이 최근에는 개축하자는 움직임이 있어 논란이 됐다.

발단은 지난해 5월 교육청이 추진하는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에 선정되면서다. 그린 스마트 미래학교는 지은 지 40년 이상 된 노후 학교를 개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사업이다.

2020년 학교 측은 본관을 비롯한 4층짜리 동관 교실 건물 등 안전진단 결과 E등급(즉각 사용 금지하고 보강 또는 개축 필요)을 받자 해당 건물을 폐쇄했다. 개축 공사 기간 학생들이 임시로 사용할 모듈러 교실도 설치한 상태다.

▲ 남양고 1회 졸업생이자 총동문회장인 한성민씨가 본관 건물의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 알게 된 학교 동문회에서 본관은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남양고 1회 졸업생이자 총동문회장 한성민(87)씨는 학생들과 주민들이 2년 넘게 지게 지고 돌을 날라 직접 지은 건물인데, 그걸 없앤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건축적 가치는 별개로 하더라도 힘든 역사의 고비를 넘어 새 역사가 시작된 의미 깊은 장소다. 동문들도 본관 건물을 자랑스러워하며 아낀다. 꼭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재청 측에서도 학교를 방문해 본관 건물이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상황이 이러하자 개축 대신 리모델링 하는 방향으로 변경됐다.

김종성 남양고등학교 교감은 사실 본관을 개축해 교사동으로 만드는 것을 희망했었는데, 문화적 가치가 있다는 의견에 따라 경기도교육청에서 리모델링으로 결정해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4층 교실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본관 전경. 

문화재청 의견과 동문회의 반대가 이 건물을 살려낸 셈이다. 하지만 리모델링을 할 경우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자명하다. 한번 훼손되면 복원도 어려워 전문가도 이를 우려하고 있다.

안국진 경기도 문화재위원(수원시정연구원 박사)은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잘 남아있는 건축 요소들이 훼손되면 추후 복원 및 문화재 지정은 어려워진다. 어떤 방식으로 리모델링이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먼저 문화재 등록 신청을 통해 문화재위원회의 의견부터 들어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존치 시킬 부위와 수리할 부분 등 세세한 방침을 주기 때문에 훼손 시키지 않는 선에서 보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남양고등학교 옛 본관은 향토사적으로, 교육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아 보인다. 전쟁 당시 정부가 학교 재건에 투입할 여력이 없는 상태에서 주민들이 마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곧 닥칠 훼손 가능성을 예방해야 한다.

·사진=황혜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