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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듣는 부의 품격] 인공폭포·인공암벽 전문 시공 윤복모 미주강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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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청소년 등을 대상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윤복모 미주강화㈜ 대표가 아너 소사이어티 조형물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학교 대신 공장으로 발걸음을 향해야 했던 설움을 알아요. 그래서 학업에 뜻있는 학생들이 저와 같은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하남에서 인공폭포·암벽 등 조형물을 설계·시공하는 윤복모 미주강화㈜ 대표(63)는 지난해 7월 경기도 263번째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 입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다. 인천 강화군 서도면 시골마을 청년에서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는 친환경 경관시설물을 만드 는 CEO가 된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갈 희망이 후학 양성에 있다고 보고, 장학사업 등 다채로운 나눔을 펼치고 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을 나눔이 필요한 이들과 나눠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는 윤 대표로부터 행복의 가치와 이웃사랑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Q 지난해 7월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소회를 전해달라.

A 우리 주변에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웃을 돕는 훌륭한 분들이 많다. 제가 대단한 일을 한 것이 아닌데 이렇게 과분한 칭찬을 받아 오히려 부끄럽다.

주변을 둘러보면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웃사랑을 실천하시는 분들을 있다. 저도 언제가 꼭 기회가 오면 나눔에 동참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특히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는 청소년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접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나눔에 동참하게 됐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당시에 “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지키려고 연연하고 싶지 않다. 꼭 도움이 필요한 분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Q 강화도 시골 청년에서 사업가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을 소개해달라.

A 저는 강화군 서도면의 시골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당시에 공부가 좋았고 성적도 괜찮았다. 그래서 학업에 대한 꿈을 갖고 좋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다. 당시만 해도 학업을 이어가고 싶으면 강화 본토나 인천으로 나와야 하는데 저처럼 연고가 없고 집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결국 당시 학교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오토바이 헬멧 공장에 취업하게 됐다. 공부를 할 수 없으니 기술을 배워 성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 기간 공장 운영방식 등 다양한 것을 습득하며 저 나름대로 성장하는 시기를 보냈다. 그리고 군대 입대 후 전역해서 1985년에 공장을 세웠다. 합성수지(FRP) 건축자재 욕조 등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차츰 사업을 키워나갔다.

이후 1980년대 후반에는 경관시설 쪽에 미래가 있다고 판단하고 이쪽으로 방향을 돌렸고 지속적인 연구와 기술개발 끝에 이 분야를 선도하는 기술력을 갖게 됐다. 처음 혼자 운영하던 사업은 수십명의 직원을 채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Q 미주강화(주)는 오늘날 세계의 표준을 만드는 경관시설 제조 기업으로 성장했다.

A 세계 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세계 곳곳을 돌며 선진기술을 배우고 습득한 것이 오늘날의 미주강화를 만든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제가 처음 이 분야에 뛰어들었을 때만 해도 경관시설물에 대한 KS 성능 기준도 없었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기술 매뉴얼도 없었다. 그래서 임직원이 함께 힘을 모아 ‘우리가 만드는 것이 표준이 된다’라는 생각으로 유럽 미국 일본 등 세계 선진국을 돌며 기술을 습득했다.

제가 이처럼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부했던 건 기술자로서 자존심이었다. 1990년대 국내 한 놀이시설 테마파크에서 워터파크를 조성하기 위해 인공암석 등 여러 기술을 도입했는데 국내 기술은 단 한 건도 채택되지 못했다. 그만큼 세계의 벽은 높았다. 기술자로서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이후 유럽 미국 일본 등의 경관시설 기준을 찾아 우리 기술과 비교했고 세계 유명 기업을 찾아 노하우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끈질긴 노력 덕분에 특허받은 ‘친환경 인조암’ 등 친환경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다양하게 개발할 수 있었다. 이제 우리는 글로벌 기준에도 전혀 밀리지 않을 정도로 인정받고 있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선행을 실천한 윤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Q 모교 학생들을 위한 장학사업 등 특히 청소년 지원에 관심이 많은데.

A 서두에 밝혔듯, 학창시절 배움을 중단했던 설움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안겨주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저는 가슴 한켠에 배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특히 40대 초반까지 중학교 졸업이 학력 전부인 저를 무시하는 듯한 눈초리를 느낄 때면 너무나 속이 상했다.

그래서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공부를 하기로 결심하고 고졸 학력인정 검정고시에 도전했다. 출근을 해야 하니 새벽 6시부터 과외선생님께 강습을 받는 등 틈나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아 한 번에 합격했다. 이때 느낀 건데 나이를 먹고 공부를 하려니 정말 힘들더라.(웃음) 나름 학창시절 공부를 잘해서 쉽게 공부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0년 넘게 책을 놓다가 다시 붙잡으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때 절실히 느꼈다. 배움은 때가 있다고… . 제가 자라나는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는 이후 대학에 들어가 조경학을 전공했고 석사와 박사과정까지 모두 마치며 그토록 염원했던 학업에 대한 열망을 채울 수 있었다.

Q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희망찬 내일을 설계할 수 있도록 전하고 싶은 말은.

A 저는 강화도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우리가 자라날 때의 농·어촌 생활은 매우 어렵고 척박한 환경이었다. ‘누구나 꿈을 갖고 태어난다’라는 말이 있지만 정작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기가 너무 힘들었다. 요즘 청소년들도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수없이 고뇌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제가 세상을 조금 더 살아본 선배로서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끝까지 포기하지 마라”이다. 긍정적인 생각은 행동을 변화시킨다. 생각과 행동은 자신의 미래를 바꾼다. ‘어렵다’ ‘안된다’라는 부정적인 생각보다 ‘가능하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충분히 자신이 목표로 삼았던 것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의지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우리 청소년들이 희망찬 미래를 그려가길 바란다.

Q 독자들이 나눔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한 말씀 부탁한다.

A 코로나19 장기화로 모두가 어렵다. 우리 회사도 코로나 발생 후 매출이 감소하는 등 쉽지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나눔은 어려울 때 더 큰 빛을 발한다. 우리 사회가 끈끈한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어려울 때 서로 돕는다면 더욱 건강하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리라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사회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기부문화도 세계 선진국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한다. 내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누는 국민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서로 함께 웃고 격려하며 더 힘찬 내일을 만들어가는 대한민국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아너 소사이어티란? 

사랑의열매의 고액 개인 기부 프로그램으로, 1억원 이상 성금 기부 또는 약정(5년 이내)한 사람들이 가입하는 클럽.

이광희기자/사진=윤원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