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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어주는 남자]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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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스테판 말라르메

 

아무것도 아닌 것, 이 거품은, 이 때묻지 않은 시는

술잔의 모습을 지시할 뿐

멀리, 해정(海精)의 떼들

수없이 몸을 엎치락뒤치락

바닷물에 든다.

오 나의 다양한 친구들아

우리는 함께 항행(航行)하나,

나는 벌써 선미(船尾)에 자리 잡고

그대들은 장려한 선수(船首)에서,

우뢰와 찬 겨울의 물결을 끊고 나간다.

아름다운 취기에 젖어

배의 요동을 두려워 않고

내 일어서 이 술잔을,

고독, 암초, 별의 술잔을 들어

우리들 돛이 받아 안은

그 백색의 모든 심려(心慮)에 인사한다.

『목신의 오후』, 민음사, 2016

거센 파도는 배를 움직이는 동력

내가 누구냐고 물을 수 있는 건 인간뿐이다. 그 물음 안에는 내가 왜 사는지, 너는 누구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등과 같은 복잡하고 골치 아픈 내용이 빼곡한데, 그러한 의문의 뿌리는 한결같이 ‘염려(念慮)’에 닿아있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핵심은 앞일에 대해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그 점을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현존재의 존재는 염려”라는 말로 요약했다. 삶 전부가 염려라 생각하면 우울하겠지만, 하이데거는 염려하기 때문에 양심에 부응하고 나아가 행동의 결단을 내린다고 설명한다. 염려함으로써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그런 면에서 자유를 동경하는 낭만주의자의 도취적(陶醉的) 정념은 염려에서 시작된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의 시 ?인사?는 시종일관 순백의 취기로 가득하다. ‘해정(海精)의 떼’로 비유된 파도가 엎치락뒤치락하며 사정없이 배를 흔들어도 화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선미의 화자와 선수의 친구들이 현실의 염려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취기”에 흠뻑 젖어 있는 저 격정의 풍경은 지극히 자유로워 보인다. 술의 ‘거품’은 “때묻지 않는 시”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 그저 ‘술잔’을 지시할 뿐이라는 시인의 비유적 설명은 취기, 즉 예술적 도취만이 삶의 심려를 잠재울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삶의 바다를 항해하다 보면 ‘고독’과 ‘암초’와 ‘별’로 비유된 근심과 고통과 동경의 감정들 마주하게 된다. 그러한 마주침은 ‘돛’, 즉 실존이라는 배를 움직이게 하는 근원이다.

심려하지 않는 자는 한 자리에 정주할 뿐 바다로 표상된 이상(理想)을 향해 모험하지 않는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신년의 도약과 모험을 위해 “백색의 모든 심려”에 인사하자!

신종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