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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27. 파주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2011년 헤이리 갈대광장공원가에 개관, 연면적 1천600㎡… 7개 전시공간 갖춰
이수문 대표, 작가 20명 후원 상생 솔선... 매년 시대적 문제의식 담은 ‘주제기획전’, 2030년 4차 산업혁명·예술의 만남 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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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들이 정정엽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조주현기자

거대한 청동 인물상과 마주 선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White Block)을 찾은 관람객을 맞이하는 듯 두 손을 다리에 붙이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 건장한 사내의 모습이 듬직하다. 산책로를 따라 갈대광장의 연못으로 향한다. 멀리서 보면 보일까? 하얀 건축물에 담은 건축가의 생각과 설립자의 마음이 궁금하다. 연꽃이 활짝 핀 연못에서 보니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화이트블럭은 책상 위에 펼쳐 놓은 하얀 도화지처럼 푸른 나무와 잘 어울린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안이 환하다.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드러내면서도 주변 환경과 자연스레 어울리도록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의 내공이 느껴진다.

2011년에 개관한 화이트블록(대표 이수문)은 연면적 1천600㎡의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로 모두 7개의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다. 미국건축사협회로부터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박진희 SsD건축 대표가 설계한 이 건물은 전시형태에 따라 전시장의 천장이 열리고 닫히며, 변형되어 미술전시에 최적화된 전시공간이다. 미래 새로운 형식의 미술작품과 미디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트센터 화이트블럭도 2012 미국 건축가 어워즈에 수상작으로 선정된 ‘또 하나의 작품’이다. 강은영 학예실장, 김유빈 큐레이트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에 들어서니 이수문 대표가 기다리고 계신다.

■ 음악과 연극을 사랑한 끼 많은 경영인이 설립한 ‘열린 미술관’

“매년 여섯 차례 정도 전시를 열고 있다. 작품 활동이 활발한 중진 작가에게 소홀한 면이 있어 중진 작가를 대상으로 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강경구(2018), 서용선(2019) 등의 개인전 그것이다. 홍기원(2019), 이재훈(2020) 등 경기도 작가를 대상으로 한 개인전도 진행하고 있다. 작업 환경이 어려운 작가를 돕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여기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매년 작가 4명이 입주하는 스튜디오 화이트블럭이 있다. 입주 1기 한지석(2019), 4기 김건일(2020), 3기 제이미 리(2021)의 개인전을 열었다.”

학예실장이 자료를 찾으러 간 사이에 이수문 대표가 들려주는 사연이 놀랍다. 작가를 위해 천안에 작업공간을 마련해 매년 16명을 지원하고 있다고 하니 화이트블럭이 후원하는 작가가 20명이나 된다. 경기문화재단과 협력하여 경기 시각예술 창작지원 전시도 열고 있는데, 올해는 ‘생생화화(生生化化)’를 예정하고 있다. 시대적인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은 주제기획전을 열고 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화가의 자화상’(2018), ‘빛의 국면’(2018), ‘회색의 지혜’(2019),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은 2020년에는 ‘검은 해’를 기획했고, 올해는 ‘한국화의 현대적 재해석’(가제)을 기획하고 있다. 전문 비평가를 초빙하여 작가와 평론가가 비평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있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미술체험 프로그램 ‘산수에서 노닐 적에’ ‘어른을 위한 미술관’도 운영했다. 2019년에는 노혜정의 진행으로 ‘허브 드로잉 워크숍’을, 2020년에는 이정배 이진주의 진행으로 ‘화판부터 액자까지-나의 세밀화’와 조가연의 진행으로 ‘나의 풍경화-유화, 그리고 사색’을, 2021년에는 제이미 리의 진행으로 ‘Dear My -’를 진행했다.

“매년 미술대학을 졸업하는 청년이 2만3~4천 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절반이 순수미술 전공자인데 그림을 그려 먹고 살지 못한다. 작가의 작품을 발표하는 전시 공간을 마련해 주는 일만큼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사업도 필요하다. 여기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입주 작가를 위한 ‘스튜디오 화이트블럭’이 있다. 입주 작가 4명에게 1년 6개월에 걸쳐 개인에게 작업공간을 제공한다. 4년에 걸쳐 16명을 지원했다. 천안에도 공간을 마련하여 매년 16명의 작가가 입주하여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작가에게 도움이 되려면 기본적 지원이 필요하다. 작업한 것을 전시하고, 이후 활동까지 지켜보며 지원하고 있다. 아무튼 판을 벌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수문 대표의 이력도 흥미롭다. 이 대표는 경기고 재학시절에 밴드부와 연극반에서 활동하고, 서울대 공대에 진학한 후에도 연극을 계속했던 음악가이자 연극쟁이다. 군악대원으로 클라리넷을 연주하며 군복무를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단역배우로 출연했을 정도였다. 국내 주방 문화를 혁신한 전문 기업 ‘하츠’를 창업하여 크게 성공한 이 대표는 자신의 ‘끼’를 감추지 못한다. 경영인으로 분주하던 시절에 연출가 윤호진 씨와 함께 뮤지컬 본고장인 런던 웨스트엔드와 뉴욕 브로드웨이를 함께 다닌 뒤에 에이콤이란 회사를 설립해 제작한 작품이 창작뮤지컬 ‘명성황후’다. ‘무채색 작가’로 알려진 차명희 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의 현역 작가로 그의 예술적 동지다.

2. 수준 높은 예술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아트샵이 운영되고 있다. / 3.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카페에선 미술작품 감상뿐 아니라 개방적 공간 구성을 통해 관람객이 자연 속에서 휴식을 즐기실 수 있도록 했다./ 4. 화이트블럭 정원에 놓인 평화의 상징 그리팅맨. / 5. 창 밖으로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 여성주의 작가 정정엽의 ‘걷는 달’

강성은 학예실장의 안내로 정정엽 작가의 스무 번째 개인전 ‘걷는 달’이 열린다. 전시는 ‘걷는 달’, ‘얼굴 풍경 2’, ‘붉은 드로잉’ 등 세 가지 주제로 나눠진다. 민중미술 작가이자 여성주의 작가로 알려진 정 작가는 팥과 콩, 나물과 싹튼 감자, 벌레와 나방 같은 소외되고 연약한 존재들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다. ‘걷는 달’에서는 만난 그림은 쓸쓸하고 고독하다. 죽은 새와 나란히 누워 있는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이다. 붉은 외투를 입고 바닷가 모래밭을 걷는 여성도 작가 자신일 것이다. 몸빼바지를 입고 줄지어 걸어오는 할머니들의 파마머리와 발걸음이 당당하고 유쾌하다.

‘얼굴풍경 2’에선 작가의 자화상을 포함해 사진가 박영숙, 여성학자 김영옥, 시인 김혜순, 미술가 윤석남의 초상화, 여성학자 임옥희, 제주에서 농사짓는 최복인, 정의기억연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쉼터인 서울 마포구 ‘평화의 우리집’ 쉼터에서 18년간 일한 고 손영미 소장,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다 숨진 최옥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심미자, 영화비평가 권은선의 초상이다. 여인들의 초상은 모두 붉은색이다. 머리에 휘어진 철근이 나무처럼 어지럽게 돋아 있고, 콘크리트는 금가고 부서져 내리고 있다. 그런데도 눈을 감은 여인의 표정이 너무나 평안하다. 강 실장의 설명을 들으니 작가의 초상이란다. 작가가 내게 무엇을 말하려는지 가슴을 열고 한참 바라본다. 어두운 시대를 뚫고 고난의 세월을 견뎌낸 여성의 상처투성이 가슴을 들여다본다. ‘붉은 드로잉’은 2006년 아르코미술관에서 열린 ‘지워지다’ 전에서 선보였던 사회의 무관심과 폭력으로 사라지는 여성들을 그린 드로잉 작업과 신작 드로잉을 보여준다. 붉은색은 쉽게 잊히는 여성의 삶을 증언하기 위해 작가가 선택한 색이다.

‘걷는 달’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그림 옆에 붙어 있는 작가의 말을 빌린다. “어두운 밤, 홀로 작업실 주변을 산책한다. …바람도 달도 별도 모두 나 하나를 위해 존재한다. 달은 나를 따라 걷는다.” 정정엽의 ‘걷는 달’은 달빛 아래 자유롭게 걷고 싶은 작가 자신과 다른 여성들과의 연대를 그려낸 전시로 10월 31일까지 열린다.

2011년 4월에 개관한 아트센터 화이트블럭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 중심인 갈대광장에 자리하여 자연과 건축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주현기자

■ 시선이 머무는 곳, 오래 머물고 싶은 곳

미술관을 둘러보며 이 대표가 들려준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지난해부터 10년 후 2030년의 미술관을 준비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을 구상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예술도 변하기 마련이다. 인공지능 로봇 홀로그램과 다양한 예술장르를 접목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가까운 미래에 변화할 환경에 잘 대응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고, 작가나 큐레이터가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프로 경영인의 자세일 것이다. “대표님이 멀리 내다보고 사업을 벌이기 때문에 길게 보고 일 할 수 있어 좋다.” 장 실장의 말대로 화이트블록이 멀리 오래 가는 미술관이길 바란다. 실외로 연결이 돼 있는 1층 카페는 아늑하고 편안하다. 입장료가 3,000원인데, 차를 주문하면 입장료를 대신할 수 있다. 음식과 커피 맛이 좋다는 평이 많다. 환하고 탁 트인 공간은 관람객의 마음을 넉넉하게 해준다. 파주 헤이리 화이트블록은 오래 머물고 싶은 휴식과 충전의 놀이터다.

김영호(한국병학연구소)